이 글은 시사IN 75호(2009년 2월21일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MBC 공정방송노조(공정방송노조)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월4일 기자회견 때문이다. 공정방송노조는 이날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핵심 내용은 두 가지다. 지금까지 MBC 프로그램이 ‘불공정’했고, 소유구조도 공영보다는 민영이 낫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조선·중앙일보가 비중 있게 보도했다.

공정방송노조는 어떤 조직일까. MBC에서 부장급 이상, 보직을 맡지 않은 사람들이 가입대상이다. 다수 조합원으로 구성돼 있는 MBC노조와는 다른 조직이다. 때문에 대표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들이 발표한 여론조사는 어떨까. 이번 조사에 참여한 공정방송 노조원은 모두 81명. MBC본사에 1730여 명이 근무하는 것을 감안하면, 전체 근무자의 약 4.6%가 참여한 셈이다. 이런 내용을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한 것도 놀랍지만, 이걸 대문짝만하게 실은 조선·중앙일보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공정방송노조는 지난 2007년 11월 MBC 선임자노조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당시 이를 주목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선임자들의 권익을 대변할 공식조직이 없다는 게 출범 취지였는데, 공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MBC에서 이런저런 혜택을 충분히 받고 살았는데 ‘선임’이나 돼서 복지를 위해 별도노조를 만드는 게 온당한가 하는 의문이 이들 앞에 던져졌다.


조선일보 2월5일자 2면

존재감이 미미했던 공정방송노조를 비중 있게 만든 건 조선·중앙일보다. 노조에 부정적이고 특히 방송사의 방만 경영에 날선 비판을 해왔던 이들 신문이 ‘간부+노조’가 결합된 이들에게 호의적이라니 … 아이러니다.

조선과 중앙일보의 의도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MBC 프로그램의 불공정성과 소유구조 민영화는 이들 신문이 지금까지 주장해온 것들이다. MBC 내부에서 노조라는 이름으로 대신 주장해 주는 걸 마다할 이유가 없다. 대표성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노조라는 타이틀이다.

짚어야 할 건 공정방송노조의 의도다. 정확히 말하면 일부 집행부의 ‘정치적 의도’다. MBC 안팎에서는 오는 8월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개편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이 많다. ‘친한나라당 성향’의 이사진들이 다수를 차지할 경우 이후 단행될 MBC 인사에서 이들이 보직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이미 KBS에 비슷한 전례가 있다. 공정방송노조와 비슷한 유형인 KBS공정방송노동조합과 KBS PD협회 정상화추진협의회 인사 30여명은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국장·팀장 등 요직에 기용됐다. 한나라당 대선 승리를 논의해 파문을 일으켰던 ‘강동순 녹취록’ 당사자인 윤명식 PD. KBS 공정방송노조위원장이었던 그는 녹취록 파문으로 정연주 전 사장 시절 6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병순 사장 이후 외주제작국장으로 발탁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KBS 사례는 MBC 공정방송노조 일부 집행부에게 충분히 자극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기자회견 이후 MBC에선 비난여론이 급등하고 있고, 공정방송노조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노조 탈퇴가 이어지더니 급기야 공정방송노조원들이 집행부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집행부의 일방적 의견과 독단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게 이유다.

MBC 내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표출될 수 있고, 공정방송노조가 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사교양국 PD들의 성명처럼 “지난해부터 ‘선임자노조’는 그 존재의미를 잃어버린 채 보수언론이 공영방송 MBC의 토대를 뒤흔들 때 이용되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이를 바로 잡는 건 공정방송노조 ‘평노조원들’의 몫이다. 이들을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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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뉴스 돋보기] 정부 ‘상황 종료’와 발맞추는 방송사? 
 
 
청와대 ‘홍보지침’ 파문에 대한 청와대의 공식입장은 ‘뭉개기’다. 지금까지 각종 의혹과 파문들이 터져 나올 때 ‘뭉개는’ 걸로 재미를 좀 봤던 터라 이 ‘작전’을 쓰는 것 같다. 역시 경험은 모든 걸 압도한다.

정부․여당의 공식입장은 ‘상황 종료’다. 한승수 국무총리. 16일 국회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e메일을 보낸 행정관이 사표를 내고 정부를 떠났기 때문에 일단락됐다”고 말했다. ‘사고 친 사람’ 물러났으니 이제 그만하자. 이게 정부-여당 기류다.

정부-여당-조중동 ‘뭉개기’ … 이젠 방송사도 동참?

조중동은? 짐작했겠지만 ‘뭉개기’다. ‘홍보지침’ 파문이 확산된 이후 이들 세 신문은 이 사안을 제대로 보도한 적이 없다. 나름 열의를 갖고 피의자 강 씨 사건을 열심히 보도했는데 그것이 청와대와 경찰의 정치적 의도에 ‘놀아난’ 것으로 판명되니 ‘쪽팔려서’ 그런 것인가.

    


▲ 경향신문 2월17일자 8면.

어디까지나 선의를 가지고 해석을 하면 그렇다는 얘기인데 공감대 형성이 어려운 것 같다. 정부․여당과 조중동을 ‘암수한몸’으로 보는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암수한몸’ 대열에 동참하려는 ‘선수들’이 있다. 지상파 방송3사. ‘홍보지침’ 파문 보도에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았던 이들. ‘대충’ 여야의 정치공방으로 접근하더니 청와대 이모 행정관이 사표를 내자 입을 싹 닦는다. 16일 방송3사 메인뉴스에서 청와대 ‘홍보지침’ 파문은 사라졌다. 

그런데, 방송3사가 ‘뭉갠’ 이유는 조중동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아! 쏘리. KBS는 뺀다. 조중동과 KBS를 차별화 시키는 건, 조중동을 닮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는 KBS에 대한 모독이다. MBC와 SBS가 이 문제에 소극적인 건, 선의로 해석해서 좀 ‘머쓱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한다. 나름 열의를 갖고 피의자 강 씨 사건을 열심히 보도했는데 그것이 청와대와 경찰의 정치적 의도에 ‘놀아난’ 것으로 판명되니 ‘쪽팔려서’ 그런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KBS의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애도’가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

정부-여당이 ‘뭉개고’ 조중동도 ‘뭉개고’ 방송3사까지 ‘뭉개면’ 이제 남은 건? 짐작하는 것처럼 경향과 한겨레 정도다.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으나 의혹제기를 하는 주체는 거의 남지 않은 셈. ‘용산참사’와 ‘홍보지침’ 파문은 조중동과 방송3사의 ‘지원’으로 이렇게 묻힐 것 같다. 이명박 정권. 참 억세게 운 좋은 정권이다.

    


▲ 2월16일 KBS <뉴스9>

그런데 16일 방송3사 뉴스 가운데 KBS의 김수환 추기경 선종 리포트는 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KBS는 이날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뉴스9>에서 13꼭지로 전했다. 단신(하나의 리포트로 계산해서) 포함 전체 31꼭지 가운데 13꼭지. 같은 날 MBC가 <뉴스데스크>에서 7꼭지로, SBS가 <8뉴스>에서 5꼭지로 보도한 것과 비교해보면 ‘엄청 많은’ 비율이다.

KBS의 김 추기경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일까.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보도량은 많은데 정작 내실은 적다. MBC와 SBS가 김 추기경의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과 인권운동, 한국 민주주의에 남기고 간 발자취를 주목한 반면 KBS는 이 부분은 ‘두루뭉실’하게 넘기고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쪽에 비중을 둔다. 노태우 비자금 파문이 터졌을 때 그에게 돌을 던질 자가 누가 있느냐는 발언을 대표 발언으로 갑자기 소개하는 대목에선 맥락 없이 거두절미하는 편집의 폭력을 본다.

그래서였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전하는 KBS뉴스가 불편하게 여겨졌던 건. 청와대 ‘홍보지침’ 파문은 뭉개고, 김 추기경 관련 리포트로 ‘도배질’을 하는 KBS를 보면서 또 다른 형태의 ‘홍보지침’ 파문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도배질’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의도는 의심받지 않았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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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풍경] ‘정치적 저의’ 경계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다 
 
 
‘리크게이트’ 사건을 기억하는지. 지난 2005년 당시 주디스 밀러는 뉴욕타임스 기자였다. 밀러는 미 중앙정보국 비밀 요원의 신분을 누설한 이른바 ‘리크게이트’ 보도와 관련해 재판을 받다가, 취재원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요구를 거부, 구속수감 됐다.

당시 ‘리크게이트’ 사건은 ‘주디스 밀러 논쟁’으로 이어졌고 취재원 보호와 언론자유 논란에도 불을 붙였다. 일부 언론은 주디스 밀러를 언론자유의 상징으로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취재원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언론은 …

하지만 ‘리크게이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취재원 보호에서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됐다. 이 논쟁의 결말은 밀러가 28년 간 몸담아 왔던 뉴욕타임스를 떠나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그’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경향신문 2월16일자 4면.

‘주디스 밀러 논쟁’은 기본적으로 언론의 취재원 보호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만은 볼 수 없다. 백악관이 이라크 핵 물질 구입 시도 의혹을 부인한 당시 조지프 윌슨 전 이라크 주재 미국 대리대사를 곤경에 처하도록 하기 위해 그의 부인이 CIA 비밀요원이었다는 정보를 언론에 ‘고의적으로’ 흘렸다는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논쟁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뉴욕타임스와 밀러 기자를 향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취재원 보호인가”라는 반론이 계속 제기됐다. 백악관의 ‘정치적 의도’에 밀러와 뉴욕타임스가 ‘농락당한’ 것 아니냐는 혹평도 나왔다. 뉴욕타임스와 밀러는 취재원 보호라는 원칙을 내세웠지만 당시 언론계 안팎에서는 오히려 ‘뉴욕타임스가 백악관의 정치공작성 폭로’에 대한 기사를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대다수 언론의 피의자 강씨 얼굴공개, 정말 공익을 위한 것이었나

청와대의 ‘홍보지침’ 파문을 보면서 ‘주디스 밀러 논쟁’을 떠올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조선․중앙일보의 피의자 강 씨 얼굴공개와 대다수 언론의 연쇄살인 관련 집중 보도의 이면에 청와대의 ‘홍보지침’ 파문과 경찰의 언론에 대한 ‘친절한 취재협조’가 있었던 건 아닌지 계속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 1월31일자 1면.

결과적으로 ‘연쇄살인’ 사건 파문에 대한 언론의 과도한(?) 관심으로 ‘용산파문’은 사실상 묻혔고, 이는 청와대(일개 행정관이 됐든)와 경찰의 의도와 맞아 떨어졌다. 언론 입장에서 보면 정부와 경찰의 ‘정치적 의도’에 ‘농락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물론 연쇄살인 보도를 통해 ‘용산파문’ 정국을 어떤 식으로든 전환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언론이라면 ‘농락’이 아니라 ‘성공’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조선․중앙일보의 피의자 강 씨 얼굴공개를 계속 유심히 살피게 된다. ‘용산참사’ 파문과 관련한 언론보도가 ‘연쇄살인’ 쪽으로 급격히 쏠리기 시작한 건 지난 1월31일 이후부터다. 피의자 강 씨가 부녀자 7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한 것이 1월30일. 조선․중앙일보가 강 씨의 얼굴을 공개한 날이 1월31일이다. 이후 대다수 언론이 얼굴공개 대열에 경쟁적으로 동참하면서, 뉴스가 연쇄살인 사건으로 거의 도배질이 되다시피 했다.

‘정황’을 보면 강 씨의 얼굴공개로 인한 파장이 언론보도의 쏠림 현상을 가속화시킨 셈이다.

‘정치적 저의’ 경계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

그렇다면, 청와대 ‘홍보지침’ 파문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조선․중앙의 ‘얼굴공개’를 다시 한번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대체 피의자 강 씨 사진을 조선과 중앙을 비롯한 대다수 언론은 어떻게 제공받았을까. 얼굴을 공개한 언론들 가운데 이와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밝힌 곳은 없다.

만약 경찰이 강 씨 사진을 제공한 거라면? 이는 ‘공익을 위한 얼굴공개’가 아니라 ‘경찰의 의도’에 말려들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말한다. 경찰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언론에 ‘친절히 취재협조’를 했다는 사실은 이런 의심을 더욱 확고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 중앙일보 2월16일자 8면.

그런데 안타까운(?) 건 청와대 ‘홍보지침’ 파문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이 문제와 관련해 언론 스스로 자성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연쇄살인이라는 사안의 심각성 때문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부와 경찰의 ‘정치적 의도’에 대한 경계와 의심 없이 ‘덥석’ 받아쓰기만 한 부분은 언론 스스로도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홍보지침’ 파문이 이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반성은커녕 조중동은 아예 사안 자체를 축소․외면하고, 경향과 한겨레를 제외한 나머지 언론은 정치공방 차원에서만 이를 보도한다. 역시(!) 한국 언론은 ‘부끄러움’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먼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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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다시 생각해보는 피의자 강씨 얼굴공개 사건 
 
‘용산참사’가 묻힌 건 정확히 말해 지난 1월31일 이후다. 기억하는지. 조선·중앙일보가 피의자 강 씨 얼굴을 공개한 날이 바로 이날이다. 이후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엔 용산참사 대신 연쇄살인이 주요 의제로 자리 잡았다.

가장 먼저 강 씨의 얼굴을 공개한 조선·중앙은 1월30일까지 사회면에 한 두 개씩 강 씨 관련 보도를 했다. 하지만 1월31일 이후 1면을 포함해 여러 건의 관련 기사를 실으며 적극적인 보도를 이어갔다.

피의자 강 씨 사진, 어떻게 ‘제공’ 받았을까

물론 언론보도의 쏠림은 연쇄살인 피의자 강 씨가 부녀자 7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강 씨의 얼굴공개로 인한 파장이 이 같은 쏠림을 가속화시킨 건 분명하다. 이후 대다수 언론이 너도나도 얼굴공개 대열에 경쟁적으로 동참하면서, 뉴스가 연쇄살인 사건으로 거의 도배질이 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 1월31일자 1면.

당시 의문을 가지긴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여러 가지 ‘함축적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대체 피의자 강 씨 사진을 어떻게 제공받았을까 하는 것. ‘사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경찰로부터 제공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경찰 외에 강 씨 사진을 확보할 수단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심히 살폈다. 경찰이 연쇄살인 피의자 강 씨 사건에 대해 유독 언론에 친절을 베풀었다는 보도를. 기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했듯 이런 ‘대형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은 기자들에게 말을 최대한 아낀다. 하지만 이번 연쇄살인 사건의 경우 이 법칙을 따르지 않았다. 왜일까. 만약 경찰의 이 같은 친절에 강 씨 사진제공도 포함됐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할까. 경찰의 친절과 언론보도 그리고 강 씨 사진공개가 ‘별개’의 사건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다.

조중동의 ‘청와대 홍보지침’ 파문 축소, 어떻게 볼까

유심히 살핀 건 또 있다. 군포 연쇄살인사건을 통해 용산참사를 덮으려 했다는 청와대 ‘홍보지침’ 파문에 대한 조중동의 보도태도. 이번 ‘홍보지침’ 파문은 청와대와 정부 여당 그리고 경찰의 대응을 고려했을 때 단순히 청와대 행정관 개인적 차원으로 보기가 어렵다. 정부가 조직적 차원에서 개입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메가톤급’ 사안이다. 정권 차원에서 진행된 ‘조직적 민심왜곡’이라면 연쇄살인 사건은 그 비중에 있어 이번 파문과는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 경향신문 2월14일자 3면.

하지만 이 논란과 파문을 조중동은 축소·외면하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을 고려한 의도적인 축소·외면일까.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그보다는 조중동 스스로 군포 연쇄살인사건을 앞세워 ‘용산 참사’를 덮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나라당이 2월 임시국회가 ‘용산 국회’로 연결되는 걸 막기 위해 고의적인 무대응으로 일관할 때 조중동, 보조를 맞췄다. 그리고 일찌감치 용산참사 문제를 전철연 문제로 국한시켰다. 책임론에 있어서도 정부·여당 쪽과 비슷한 입장을 견지해왔다. 정부·여당의 ‘전략’과 조중동의 관심 이동이 묘하게 일치한 셈이다.

조선·중앙의 피의자 강 씨 얼굴공개를 다시 주목한 것도 이런 배경을 전제로 한다. ‘용산참사’ 정국을 연쇄살인사건으로 전환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던 이들 신문의 ‘얼굴공개’가 가지고 있는 함의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청와대 ‘홍보지침’과 조선 중앙의 ‘얼굴공개’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함수 -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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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관계’인 동아 중앙에만 없는 이재용 전무 사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수천억원대 재산분할 이혼 소송을 당했다. 이혼 문제는 개인의 사생활 영역이긴 한데 삼성이 한국을 대표하는 그룹이라는 점, 이재용 전무에 대한 세간의 관심 그리고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재산분할 소송이라는 점에서 언론의 관심이 뜨겁다.

관심이 뜨겁긴 한데, 온도차는 좀 다르다. 기사의 방점도 다르다. 13일자 아침신문에 나타난 언론의 삼성전자 이재용 전무 이혼소송 보도 ‘감상법’은 언론과 재벌의 혼맥관계가 보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중앙일보 2월13일자 12면

이재용 전무의 사진이 없는 동아 중앙일보

오늘자(13일) 아침신문들 가운데 이재용 전무 사진이 없는 곳은 동아 중앙일보다. 중앙일보가 삼성과 ‘특수관계’라는 건 이미 알려진 내용이다. 동아일보는 고 김병관 전 회장의 차남이자 김재호 사장의 동생인 김재열씨가 이건희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씨와 결혼했다. 역시 삼성과 ‘특수관계’다. 동아 중앙일보에 왜 이재용 전무 사진이 없는지 짐작이 간다.

경향신문과 국민일보, 세계일보 등은 ‘나름’ 이 문제를 주요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사건 기사’식의 접근방식을 보이고 있다. 이 전무의 부인인 임세령씨가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임씨가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장녀라는 점, 천문학적인 재산분할 소송 때문에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 대중적인 관심을 반영한 기사로 분류가 가능하다.

   

 
▲ 조선일보 2월13일자 9면.

삼성과 ‘대립적 관계’를 보였던 한겨레는 이 사안을 사회면(1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비중은 실었으나 사안을 이혼소송과 재산분할 문제로 국한시켰다. 조선일보는 9면 하단에 이 기사를 ‘짧게’ 배치했다. 대다수 신문이 이재용 전무 사진을 게재했지만 조선은 임세령씨 사진도 함께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 “삼성 후계구도에 영향 미칠 수도”
한국 “삼성, 실적 악화 이어 내우 겹쳐”

    


▲ 서울신문 2월13일자 6면.

서울신문과 한국일보 등은 이 사안을 비중 있게 다뤘다. 서울은 1면과 관련기사 6면에, 한국일보는 13면과 21면에 다뤘다. 이 두 신문이 관심을 모으는 건 이혼소송과 함께 삼성을 중심축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서울신문은 6면 <삼성-대상 ‘화려한 결합’ 11년만에 끝내 파탄 왜?>에서 “임씨가 청구한 5000억원대 재산분할 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일 경우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에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점쳐진다”면서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이 전무의 도덕성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보도했다. 이번 소송이 자칫 경영권 승계 논란으로까지 번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한국일보는 <실적 악화 이어 삼성 ‘곤혹’>에서 “세계적인 경기 침체 영향으로 실적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는 삼성으로서는 예상치 못했던 내우까지 겹치면서 곤혹스런 표정”이라면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번 파문이 최근 대규모 사장단 인사와 조직개편으로 새 출발을 다짐하고 나선 삼성에게 자칫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데에 있다”고 전했다.

사실 삼성 이재용 전무 이혼소송은 사생활 영역이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 재벌간 그리고 언론사주간 혼맥도가 뒤엉켜 있는 복잡한 문제이기도 하다. 단순히 ‘개인’과 ‘개인’간의 이혼소송으로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언론의 삼성전자 이재용 전무 이혼보도 ‘감상법’을 한번 감상해 보는 것도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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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우리가 듣고 싶었던 얘기는 …

신해철씨의 ‘입시학원 광고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PD저널>의 민임동기라고 합니다. 저는 편집국장을 맡고 있고, 해당 기사는 김도영 기자가 썼습니다.

김도영 기자가 처음 기사를 들고 왔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 했습니다. 저의 첫 반응이 “이 사람 신해철 맞아?”였거든요. 그래서 후배기자에게 ‘얼굴과 이름이 도용당했을 가능성’을 조심스레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지요.

개인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논란’은 단순히 신해철씨가 입시학원 광고에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가할 수 없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하지만 전 후배 기자의 문제의식도 나름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기사를 출고하라고 했습니다.

인터뷰를 거부한 신해철씨

후배기자의 문제제기를 여기서 다시 언급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건 이미 신해철씨도 알고 있고, 인터넷에서 논란이 확산되면서 많은 의견들이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죠.


신해철씨가 전속모델로 활약하고 있는 한 대형학원의 일간지 광고.

신해철씨는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인터뷰를 하는 게 온당한지 △지금까지 나를 비판해왔던 언론은 괜찮은데 <PD저널>이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 건 불쾌하다며 인터뷰를 거부했지요. 그리고 당분간 ‘침묵’하겠다는 말도 덧붙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신해철씨의 불쾌한 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침묵’하겠다는 부분은 선뜻 동의를 못하겠습니다. 신해철씨가 공인이라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대마초 논쟁 당시 매니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MBC <100분 토론>에 나가는 ‘용기’를 보였던 신해철씨가 ‘이런 정도’의 사안에 침묵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공개편지’를 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왜 우리가 신해철씨 인터뷰를 하려고 했는지 분명히 말씀드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신해철의 ‘쾌변독설’과 대부광고에 대한 생각

사견이지만 신해철씨가 입시학원 광고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건 신해철씨가 <쾌변독설>에서 “연예인이 대부업 광고에 출연하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 없다”고 언급한 것과 깉은 맥락입니다. 대부업 자체가 불법이 아닌데 연예인들이 그 광고를 한다는 것 자체만을 가지고 비난할 수는 없죠. 충분히 공감합니다.

마찬가지로 신해철씨가 <쾌변독설>에서 언급한 겸손과 미덕에 관한 부분도 전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언급했죠.

“그러니까 연예인이 대부업 광고를 보고 ‘내가 공인의 성격을 띠고 있으니까 이런 건 하면 안 되지 않겠나’ 라고 하는 건 미덕이니까 칭찬할 수는 있어도 그렇지 않다고 해도 비난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그렇다고 대부업 광고에 나와서 너희들 몽땅 망하라고 했나요? 그런 건 아니잖아요. (웃음)”

대부업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부정적인 것과 연예인이 대부업 광고에 출연하는 것은 분리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남이 미덕을 가지고 있으면 칭찬을 해주면 되는 거지, 미덕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서 손가락질까지 해서야 되겠느냐”는 신해철씨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얘기입니다.

신해철씨의 평소 소신과 입시광고 그리고 …

다만 이런 의문은 들었습니다. 평소 대부업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표방한 연예인이 어느 날 갑자기(!) 대부업 광고에 출연했다면? 대체 이건 어떻게 봐야 할까. 대부업에 대한 자신의 소신이나 생각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소신과 상관없이 ‘이런 광고’에 출연할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다른 이유’가 있었다면 대체 어떤 이유였을까. 소신이 바뀌었다면 왜 바뀐 것일까.

궁금한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쾌변독설>에서 신해철씨는 초등학생까지 과외를 하고 학원을 보내는 것에 대해 “억지로 성적을 일정 수준 맞춰놓는다고 해서 공부로 성공할 수 있느냐” “우리 집은 애 학교 안 보내려면 안 보낸다는 결론이 났다. 학군 같은 것도 상관없고 학원도 안 보내려고 한다”는 발언을 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생각’이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평소 신해철씨의 인터뷰나 주장에 공감해 왔던 후배기자는 나름 배신감(?) 때문에 비판하는 기사부터 쓰긴 했지만, 적어도 그 문제의식만큼은 공감했습니다. 그래서 기사출고를 허락했던 거구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신해철씨가 인터뷰를 거부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와 <PD저널>을 포함해서 신해철씨의 대답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우리’의 지적이 지나쳤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시고, 네티즌과 블로거들의 지적이 과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신해철씨의 솔직한 생각이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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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

[취중진담] 민주노총 성폭력 파문에 대한 단상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진보진영과 시민단체의 반응은 대략 이런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은 진보진영과 시민단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성폭력’ 파문과 관련해 시민단체 성명서 하나 찾기가 쉽지 않다. 이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해 못하는바 아니다. ‘그들’이 언급한 대로 이명박 정권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악재가 터졌으니 매우 곤혹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같은 상황인식은 ‘그들’의 진보성이 얼마나 가벼운지, ‘그들’이 정서적으로 얼마나 ‘보수 꼴통’들과 일맥상통하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자기성찰 기회 뺏기고 보수로부터 공격받는 ‘진보’

동아일보 육정수 논설위원이 9일자 칼럼(<횡설수설 - 민노총 성폭력 파문>)에서 지적했듯이 “이번 파문의 초점은 민주노총의 도덕성 상실에 있다.” 이게 핵심이다. 성폭력과 성희롱 사건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지금까지 계속 발생해 왔다. 성폭력과 성희롱은 한국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졌던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적어도 진보라면 더구나 진보적 사회단체라면 성폭력․성희롱 사건에 대한 해결방식은 ‘남달라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해결방식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진보가 왜 진보인가. 보수와 달라야 하는 게 진보다. 하지만 진보진영 역시 성희롱․성폭행 사건을 해결하고 재발을 막으려는 노력보다 진상을 덮는데만 급급했다. 변상욱 CBS 대기자의 지적처럼 “오죽하면 ‘운동사회 내 가부장성과 권위주의 철폐를 위한 여성활동가 모임’까지 결성되었겠는가.” 변 기자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이번 파문과 관련해 진보진영이 곱씹어야 할 부분이다.

“터지는 사건들도 문제고 대응하는 자세도 늘 문제다. 환경운동 지도자 강제 성추행 사건 때도 ‘왜 여학생이 서울서 부산까지 따라 갔느냐, 성추행 유발이 문제다, 개인의 일탈 문제다, 운동권 문제가 아니다’라고 둘러대다 여론의 질타를 받았듯이 늘 개인적 사과와 가해자 개인의 사퇴로 마무리 짓고 끝내려한 처리 방식과 문화가 결국 오늘의 민주노총 사건을 만들게 된 것이다.”

사건 발생 이후 대국민사과까지 2개월이나 걸렸다. 이것 자체도 문제지만, 2개월이란 시간이 걸린 뒤에 민주노총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입장’이 … 참 가관이다. 이걸 보고 있자니 그들이 비판하는 이명박 정권이나 민주노총이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민주노총이 공식적으로 그 어떤 입장이나 사실 확인도 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사건 관련 내용과 피해자 관련 정보 및 내용이 무분별하게 보도되면서 사실이 아닌 내용이 기사화되고 있는 점에 대해 모든 법적대응을 하기로 했다.”

민주노총과 이명박 정권의 차이가 무엇일까

피해자의 ‘항변’을 외면해오다 그 피해자를 대신해 인권단체가 나서고, 그렇게 여론화가 돼서야 마지못해(?) 기자회견을 열었던 민주노총. 그런데 법적대응 운운하더니 정파간 갈등으로 상황을 돌리려다 온갖 치부만 다 드러낸다. 용산 철거민 참사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사안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뻘짓’을 계속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시민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명박산성’ 쌓아놓고 ‘마이웨이’를 부르짖는 MB정권과 민주노총의 ‘뻘짓’이 대체 뭐가 다른 걸까.

민주노총이 이렇게 헤매고 있으면 다른 시민단체라도 나서야 하는데 좀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최연희 의원 성추행 파문을 비롯해 MB의 ‘마사지 걸’ 발언 그리고 교단에서 각종 성추문 등이 터져나왔을 때 했던 그 강도 높은 비판은 다 어디로 갔나. 그렇게 같이 헤매고 있다 보니 정작 보수신문으로부터 세게(!) 한방 맞는 거 아닌가. 내 보기에 맞아도 별로 할 말 없는 것 같다.

“사건이 일어난 지 두 달, 민주노총이 사실을 알고 집행위원회에 보고하기까지 한 달 이상 걸리는 등 석연찮은 점이 많지만 대다수 시민단체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즉각 집중 성토와 행동에 나섰던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 성추행사건 때와는 판이한 태도다 … 그 많은 시민단체가 이런 중대 사안에 성명서조차 내지 않고 있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 더구나 일부 단체는 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피해자를 압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적인 진보단체의 핵심부라는 점, 집에까지 쫓아가 벌인 추악한 의도, 부적절한 사건처리 과정으로 볼 때 여타 성추행사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세계일보 2월9일자 사설 <민노총 ‘성폭력’에 침묵하는 시민단체>)

“이번 사건은 작년 12월 6일 발생한 이후 대국민사과까지 2개월이나 걸렸다. 민노총 측이 범인은닉 혐의를 혼자 뒤집어쓰도록 피해자를 어르고 달랬다니 어이가 없다 … 전교조는 또 왜 침묵을 지켰을까. 민노총, 전교조 모두가 스스로 진상을 밝히지 않으면 그들의 도덕성에 입은 상처는 영원히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동아일보 2월9일자 30면 ‘횡설수설-민주노총 성폭력 파문>)

‘한심한’ 민주노총이고 ‘답답한’ 시민단체다.

<사진 (위) 경향신문 2월9일자 1면 / (중간) 동아일보 같은 날짜 30면 /  (아래) 세계일보 같은 날짜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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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