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진담] 그들의 ‘중도실용’은 성공할까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됐을 때 성공하기를 바랐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은 개인적인 차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가 무사히 국무총리 인준을 통과하는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개인 차원의 성공이라면 그는 벌써 성공했다고 보는 게 옳다.

내가 말하는 성공은, MB정부의 노선이 정치적 수사가 아닌 ‘실질적인 중도실용 노선’으로 가도록 하는 걸 말한다. 정운찬은 그런 역할을 일정부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가 MB정부가 방향전환을 하는데 있어 가교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했을 때 민주당에 적절한 자극을 주면서 환골탈태를 도울 수 있다고 믿었다.

정운찬 총리가 MB정부 ‘개혁’을 견인할 수 있을까

지금 보면 참 순진한 생각이었다. 국회 인사청문회 이전부터 제기된 ‘그’에 대한 갖가지 의혹 - 그 의혹들을 보면서 “대체 정운찬 총리가 MB정부에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을 종합하면 그는 ‘총리 후보자’가 아니라 ‘범법 의혹자’라는 단어가 더 적합했다.

소득세 탈루, 인세 수입누락, 병역기피, 위장전입, 모 기업체 대표로부터 용돈(?) 1000만원 수수 등 여러 의혹이 불거졌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명된 건 없었다. 자신이 한 말을 연이어 뒤집기도 했고, 증빙자료는 내지 않은 채 무조건 “믿어 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건 청와대의 반응이다. MB정부가 정운찬에 기대한 게 있다면 그의 ‘개혁성’과 ‘도덕성’일 것이다. 그것이 실질적으로 필요했든 아니면 외형적인 장식품이었건. 그렇다면 정운찬의 장점은 청문회 과정을 통해 상당부분 증발한 셈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계속 ‘고고고’를 외쳤고 결국 29일 한나라당 단독으로 총리 인준안을 통과시켰다.

정운찬 카드를 통해 MB정부가 얻고자 한 건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정운찬 ‘그’는 대체 MB정부에서 무엇을 실현하고자 했던 걸까. ‘망가진 정운찬’을 보며, 그가 국무총리라는 자리를 ‘어떤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의 자리보존’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이내 측은한 마음이 들었고 ‘그’에 대한 기대를 접기로 했다. 그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그게 도움이 된다고 봤다.

엄기영 사장의 ‘우향우’ 행보

엄기영 MBC 사장의 최근 행보도 정운찬 국무총리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엄 사장은 청와대와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자신의 사퇴를 압박할 때만 해도 “끌려 나가는 한이 있어도 내 발로 걸어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결사항전’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방문진이 ‘조건부 재신임’ 결정을 내린 이후 지나치게 최대주주를 의식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실 이런 우려는 방문진이 엄 사장 유임 조건으로 단체협약 개정과 구조조정을 포함한 개혁을 요구할 때부터 제기됐다. 엄 사장이 어느 수준까지 방문진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노조가 이를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가 - 이것이 최대 관건이었다.

하지만 엄 사장은 노조와 방문진의 입장을 중재한 ‘중도노선’이 아닌 ‘우향우’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방문진 일부 이사가 요구하고 있는 〈PD수첩〉 재조사에 응하고, 극우 보수 단체들이 문제 삼은 일부 프로그램 진행자를 사내 인사로 교체하겠다는 의사를 엄 사장이 사내외에 수차례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엄 사장의 조급증도 사태를 악화시키는데 한 몫 하고 있다. MBC는 지난 18일 노사 동수가 참여하는 ‘MBC 미래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경영진이 노조와의 합의 없이 미래위원회 논의 사항을 사내외에 공표하자 노조가 강하게 반발했다. 

엄 사장의 이 같은 행보는 정운찬의 행보와 ‘상황과 조건은 다르지만’ 많은 부분 닮아 있다. 엄 사장은 방문진으로부터 ‘조건부 유임’을 받았지만, 엄밀히 말해 MBC노조와 시민사회로부터도 ‘조건부 신임’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노조와 시민사회가 엄기영 사장 결사반대를 표명했다면 그가 현재 MBC 사장직을 유지하고 있을 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노조와 시민사회의 조건부 재신임은, ‘그’가 MBC 사장으로 있을 경우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는 최소한의 기대와 믿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엄 사장이 처한 ‘딜레마’를 고려하되, 최소한의 원칙은 지켜주기를 바랬던 것 - 바로 그것이었다. 정연주 전 KBS사장이 공개편지를 쓴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 사장은 이런 기대와는 다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모양새다. 정운찬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것처럼 이제 ‘그’에 대한 기대도 접어야 하는 걸까. 아직 미련은 조금 남겨 두련다. 대신 “이런 식이라면 대체 엄 사장은 무엇을 위해 공영방송 MBC의 수장이라는 중차대한 직책을 지키고 앉아 있는가”라는 노조의 성명서를 다시 한번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을 전해 본다.

MBC의 ‘우향우’는 굳이 ‘그’가 아니어도 할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진짜 중도실용적인’ 모습을 그에게 기대하는 건 무리인 걸까. 

<사진(위)> 경향신문 9월22일자 1면
<사진(아래)> MBC 노사가 지난 18일 미래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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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

이 글은 ‘시사IN’ 106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방송가에 휘몰아치던 태풍이 갑작스레 훈풍으로 바뀌고 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국무총리로 내정된 이후부터다. MB정부가 이른바 ‘서민친화’를 표방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런데 이 훈풍의 위력, 예상보다 크고 파괴력이 세다. 대통령 지지율을 훌쩍 상승시키더니, 방송가를 지배했던 파업, 투쟁, 해임과 같은 단어도 슬쩍 사라지게 만들었다. 2기 MB정부 중도노선이 언론계에 미치고 있는 변화는 눈으로 감지된다.

훈풍의 시발점은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다. MBC 최대주주인 방문진은 9월9일 임시이사회에서 엄기영 사장에 대해 ‘조건부 재신임’ 결정을 내렸다. 엄 사장 해임카드를 강하게 밀어붙였던 방문진의 이전 태도를 감안하면 갑작스런 기류 변화다. 방문진의 독자적 판단과 결정이었을까. MBC 안팎에선 배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EBS 사장 재공모도 기류변화의 대표적 사례다. 9월14일 5명의 최종 후보가 공개됐을 때 EBS 안팎에선 부실 인사 논란이 불거졌다. 공영방송 사장으로 적합한 인물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재공모 요구가 잇따랐고, 결국 방통위는 이달 15일부터 21일까지 후보자 재공모를 실시하기로 했다.

방통위의 EBS 사장 재공모는 이례적이다. 결과적으로 언론계의 목소리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지만 시민단체의 평가는 다르다. 이들은 ‘사장 선임에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는 신호를 누군가 보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무리한 선임→노조,시민단체 반발→극한 대립’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중도를 표방한 2기 MB정부 노선과 배치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은 ‘누군가의’ 전략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MB정부의 중도노선은 언론계에 고민거리를 던졌다. 언론운동진영 입장에서 MB정부에 대처할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걸 시사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해법 마련이 쉽지 않다. 동력도 예전 같지 않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정부를 상대로 전면적인 투쟁을 벌이기는 더 어렵다. 더구나 지금 추세라면 MB의 중도노선은 상승세를 탈 가능성이 많다. 이런 분위기에서 예전과 같은 투쟁일변도 전략이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사실 MB의 중도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건 이를 표방한 배경이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1년이 넘도록 진행된 KBS와 YTN에 대한 MB정부의 장악시도를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순 없다. 하지만 뉴스와 프로그램이 일정부분 ‘순치된’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MBC가 홀로 버티긴 했지만 방문진의 요구를 감안해야 하는 엄기영 사장의 향후 행보를 고려하면 지금까지의 기조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지 불투명하다. 최근 단행된 보도국 부장단 인사를 두고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냉정히 말해 이 모든 상황은 MB정부가 중도를 표방하더라도 언론계의 ‘자발적 순치’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 이제 게임은 끝난 걸까. 그렇지 않다. ‘자발적 순치’에 저항하는 건, 살아남은(?) 언론인들의 몫이다. 상투적 정권 비판은 접고 자신이 서 있는 자리, 현장에서의 ‘일상적 투쟁’에 좀 더 집중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누군가의 말처럼 기동전에서 진지전으로 방향 전환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진검승부는 지금부터다.

<사진>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0일 남대문시장을 방문한 모습.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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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


* 이 글은 <시사IN> 103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인기리에 방영됐던 MB정부의 야심작 ‘언론장악 시즌1’이 종영했다. ‘시즌2’가 개막했지만 ‘시즌1’에 비해 흥행 가능성은 낮다. 일찌감치 캐스팅 논란이 불거진 데다 대본의 완결성을 두고 평론가들의 혹평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주연배우들의 연기력 논란에 전편의 막장드라마 성격까지 고스란히 답습한 점도 흥행 부진을 예고한다.

‘언론장악 시즌2’는 YTN에서부터 시작됐다. ‘제작사’ MB정부는 구본홍 전 사장 대신 사실상 무명에 가까운 배석규 YTN 전무를 주연배우(사장 직무대행)로 기용했다. 파격이었다. 그래서일까. 배석규 직무대행의 오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멀쩡한 보도국장을 갑자기 교체하더니 보도국 취재기자 5명을 지역으로 ‘보복성’ 발령 내고, <돌발영상> 팀 인사를 단행했다. 급기야 용역을 앞세워 노종면 YTN노조위원장을 비롯한 해직자 6명의 회사 출입을 봉쇄하기까지 이른다. 마치 막장드라마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겠다는 기세다.


‘시즌2’의 또 다른 주인공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다. 새로운 이사들로 구성된 ‘연출자’ 방문진은 MBC 보도프로그램과 경영진에 불만을 쏟아내며 주연배우 엄기영 사장 교체를 시도하고 있다. 주연배우 교체는 연출자의 권한이지만 문제는 이들의 주장이 대부분 MBC 선임자 노조나 보수언론, 뉴라이트 등 보수단체들에서 제기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점이다. 엄기영 사장 교체에 부정적 여론이 많은 것도 논란이다. ‘특정 제작사’의 입장을 고려한 무리한 교체 시도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시즌2’의 세 번째 주인공은 KBS다. KBS는 새로운 주연배우를 캐스팅 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언론장악 시즌1’의 핵심 주연으로 맹활약한 이병순 사장이 최근 내외부로부터 혹평을 받으며 하차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병순 사장은 ‘시즌2’에서도 주인공을 맡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하지만 내외부의 혹평과 함께 KBS의 신뢰도와 영향력 지표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결과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단적인 예가 <시사IN>이 최근 실시한 매체신뢰도 조사다. 이 조사에서 KBS(29.9%)는 MBC(32.1%)에 이어 2위를 차지했는데 2007년 같은 조사에서 KBS는 43.1%로 1위를 차지했다. 본인이 주연을 맡은 이후 KBS가 종합 순위에서 밀리면서 신뢰도도 큰 폭으로 하락한 셈이다. 이병순 사장이 ‘시즌2’에서 주연을 계속 맡을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는 이유다.

‘언론장악 시즌2’의 흥행 참패는 ‘제작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 MB정부 탓이 크다.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은 신인을 무리하게 ‘YTN 주연급 배우’로 기용해 논란을 자초하더니, 괜찮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MBC 주인공’은 무리하게 하차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대본이라도 탄탄하면 모르겠는데 ‘시즌1’과 특별한 차별화 없이 그냥 막장드라마를 고스란히 답습하는 모양새다. 어쩌면 흥행 참패는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엄밀히 말해 MB정부의 ‘언론장악 시즌1’도 다소 흥행은 했을지 몰라도 실패라고 보는 게 옳다. 1년이 넘도록 방송사 장악을 시도했지만 제대로 ‘장악된’ 곳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주연배우만 바뀐 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는 YTN과, 나름 성공적으로 장악했다고 평가받았던 KBS의 최근 상황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이는 ‘MBC 장악시도’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걸 시사하고 있다. ‘언론장악 시즌2’는 깃발을 올리지 말아야 했다.

<사진설명> 지난달 27일 오전 8시 전국언론노조 YTN 지부 조합원들이 YTN 정문 앞에서 배석규 사장 직무대행의 최근 행보를 비판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YTN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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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