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2/25 경향신문 비판하는 여러분, 어떤 신문을 보십니까 by 곰도리
  2. 2010/02/21 MB시대, ‘리영희’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는 by 곰도리

이 글은 <시사IN> 128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난 경향신문을 정기구독 한다. 한국에서 양심적인 매체라고 생각하는 언론에 힘을 보탤 수 있는 방법이 정기구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달에 구독료 15,000원을 지로로 납부한다. 그리고 민주언론시민연합에 매월 1만원의 회비를 낸다. 한국 언론을 바로 세우기 위해선 언론시민단체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마포공동체라디오에 매월 5천원의 회비를 자동이체 한다. 소규모지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동네 라디오방송의 필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한겨레와 <시사IN> <한겨레21>도 정기구독을 하고 싶다. 이들 매체들이 한국에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괜찮은 매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 난 정기구독 밖에 없다고 본다. 안타까운 건, 내가 받는 월급으로 이들 매체를 모두 정기구독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신문은 회사에서 보고, 주간지는 종종 서점이나 가판대에서 사서 본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여유가 되면 모두 정기구독 할 생각이다.


개인적인 얘기를 길게 꺼낸 이유는 최근 경향신문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삼성을 비판한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칼럼이 실리지 않으면서 경향신문에 대한 비판여론이 증가하고 있다. 경향에 쏟아지는 비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경향마저 자본권력 삼성에 굴복하는가”로 정리된다. 이 같은 비판 온당한가. 그렇다. 그동안 정치와 자본권력에 대한 경향의 논조 등을 생각하면 충분히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런 점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에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경향에 쏟아지는 비판에는 정작 핵심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난 그 핵심이 ‘비판만 하고, 실천에는 무관심한 소비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김상봉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이번 경향신문 논란은 “현재 이 땅의 진보언론들이 처해 있는 어려움의 원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독립 언론’ 경향에서마저 삼성과 이건희 회장을 비판하는 기사나 칼럼을 접하기 어렵다고 개탄한다. 맞다. 그게 한국 언론이 당면한 현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언론만의 잘못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상당한 책임이 있는 건 부인할 수 없지만, 난 소비자들도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본다.

사실 이 같은 논란이 발생하지 않기 위한 해법은 의의로 간단하다. 많은 언론 소비자들이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매체를 정기구독 해주면 된다. 물론 신문 판매망이 거의 붕괴되다시피 해 구독자가 늘어도 재정에 도움이 안 된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광고 비중을 줄이고 독자들의 구독료로 운영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첫 걸음은 구독이다. 정기구독 하나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순 없지만 그것 없이는 결코 문제 해결을 위한 출발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 언론 소비자인 여러분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경향을 비판하는 여러분은 어떤 신문을 정기구독 하고 있는가. 뉴스는 모두 인터넷에서 공짜로 볼 수 있는 상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최소한의 독립 언론에 필요한 재원확보 마련에는 무관심하면서 정치와 자본권력에 당당히 맞서라고 소리만 지르고 있는 건 아닌가. 지난 몇 년간 경향신문에 삼성 등이 광고를 거부하면서 재정 압박이 상당했을 때 언론 소비자들인 여러분은 무엇을 했는가 등등.

이번 논란과 관련해 경향신문 내부에서 아무런 비판이 없었다면 ‘경향을 위한 변명’ 따위의 글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경향의 젊은 기자들이 사내에 항의 대자보를 붙이고 “삼성에 대한 편집방침이 무엇인지 밝혀줄 것”을 경영진과 간부들에게 요구하는 걸 보면서 마음을 바꿨다. 경향은 아직 내부 자정능력이 있는 언론사이고, 그런 언론사는 비판 이전에 격려가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향 내부가 아니라 언론 소비자들의 무지와 무관심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경향신문 기자들이 총회를 개최한다. 그 결과와 상관없이 난 언론소비자들의 문제는 계속 남을 거라고 본다. 무엇을 해야 할까. 김상봉 교수의 지적처럼 “경향신문을 비난하기보다는 도리어 진정한 독립 언론의 길을 걷도록 더 열심히 돕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이지 않을까. 경향신문을 비판하는 것에 그쳐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에세이스트 김현진 씨의 말처럼 “가장 강력한 연대는 입금”이다.

<사진=경향신문 2월24일자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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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

[주목! 이 주의 책] ‘현장의 역사다’ 외

‘리영희 프리즘’ (고병권, 김동춘 외 / 사계절)

‘지식인’ 리영희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르겠다. 젊은 세대부터 이른바 기성세대에 이르기까지 리영희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 지 솔직히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책 <리영희 프리즘>은 내게 흥미를 준다.

<리영희 프리즘>은 <대화>에 비해 훨씬 대중적이다. <대화>가 대담이라는 형식을 통해 선생의 삶과 철학, 사상 등을 폭넓게 집대성했다면 <리영희 프리즘>은 다양한 필진이 바라본 ‘지식인’ 리영희의 삶에 비중을 뒀다. 필자마다 리영희 선생을 바라 본 시각도 다르고 ‘그’가 자신에게 미친 영향의 강도 역시 다르다. 책을 읽으면서 그 차이를 솔솔 느끼는 것도 제법 재미있다.

<리영희 프리즘>은 ‘지식인’ 리영희의 팔순(2009년 12월 2일)을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기획되었다. 이런 기획의도라면 통상 일종의 ‘헌사’ 비슷한 그런 분위기로 가기 쉬운데 <리영희 프리즘>은 그런 헌정 도서와는 거리가 있다. 단순히 리영희가 그동안 한국 사회에 끼쳤던 의미 등을 조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 자’가 바라본 리영희 그리고 ‘각 자’가 생각하는 지식인 리영희의 힘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대중적이지만 <리영희 프리즘>이라는 책이 가진 힘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직업이 기자라서 그런 지 안수찬 기자(한겨레)가 쓴 리영희 선생 글에 오래 동안 눈길이 갔다. ‘리영희와 기자 - 진짜 기자의 멸종’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는데, 안 기자는 “언론인 리영희는 진정한 특종 기자”라고 평가했다. 출입처 시스템에 ‘지배’되지 않았던 리영희. 술 대신 책을 파고든 ‘기자’ 리영희.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날 한국 언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뚜렷이 알 수 있었다. 왜 지금은 리영희 같은 기자가 없는 것일까. <리영희 프리즘>을  읽고 난 후 이 질문이 오래 동안 떠나지 않았다.

‘현장은 역사다’ (정문태 / 아시아네트워크)

이 책의 저자 정문태 씨 앞에는 몇 가지 수식어가 붙는다. ‘전선기자 정문태’ ‘분쟁지역 전문기자 정문태.’ 정문태 기자는 국제 언론을 통틀어 가장 많은 최고위 정치가들을 인터뷰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가장 많은 전선을 뛴 기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대략 40여 개에 이르는 전선을 뛰면서 50여 명에 이르는 대통령, 총리, 혁명 지도자들을 인터뷰한 이력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현장은 역사다>는 정문태 기자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7개국에서 지난 1994년 2009년까지 취재한 기록들을 엮은 책이다. 아시아 각 국의 역사적 순간을 직접 현장에서 확인한 사실들을 집대성한 내용이 <현장은 역사다>에 잘 정리돼 있다.

사실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다른 데 있다. 대다수 국내 언론이 잘 다루지 않았던 아시아 뉴스메이커들을 볼 수 있다는 것. 서구 중심적인 국내 언론의 보도 특성상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지도자들이나 뉴스메이커들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런 현실을 고려했을 때 이 책은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등을 재조명해 볼 수 있게 만드는 교과서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저자의 밀도 있는 취재, 집요한 인터뷰, 날카로운 질문 등을 통해 독자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사건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아시아 뉴스를 아시아의 손으로’란 구호 아래 아시아의 진보 언론인들을 엮어낸 ‘아시아네트워크’ 실험은 한국 언론이 시도하지 못했던 소중한 경험으로 평가받고 있다.

‘핀란드 교사는 무엇이 다른가’ (마스다 유리야, 최광렬 옮김 / 시대의 창)

요즘 교육과 관련해 국내 언론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국가는? 신문을 꼼꼼히 읽는 독자라면 핀란드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한국 교육의 대안=핀란드 교육’이 된 듯하다. 그런데 언론은 핀란드 교육의 내용적 측면보다 ‘세계 1위 교육’에 더 방점을 찍고 있는 것 같다. 핀란드 교육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사회상황과 분위기, 철학 등에 주목하기보다는 ‘세계 1위’ 핀란드 교육을 어떻게 한국에 접목시킬 것인가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

<핀란드 교사는 무엇이 다른가>는 그런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왜 핀란드 교육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지를 세세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핀란드 교육의 힘은 교사의 역량에서 시작된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 책을 읽다보면 내가 한국인이라 그런지 몰라도 먼저 회의감이 든다. 경쟁을 최우선으로 하는 그래서 오로지 경쟁 밖에 모르는 한국이 과연 자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핀란드 교육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계속 들기 때문이다. 교육을 바꾸기 위해선 교육제도 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철학과 사상 등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 정비가 동반되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과연 그런 ‘개혁’이 가능할까, 이런 의문이 든다.

핀란드에서 교사는 사회적 지위가 의사와 동등할 정도로 존경을 받고 있는 직업이다. 핀란드 교육은 ‘한 사람이라도 낙오자를 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아이들에게 ‘평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했다. 핀란드 교사는 국가의 간섭을 일체 받지 않고, 윗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조사를 당하는 일도 없다. 정부 관료들에게 아부를 할 필요도 없고,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면 된다. 교사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일제고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교육당국에 의해 교사가 해직을 당하고,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고 해서 조사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학교장의 방침을 거부하면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하기 일쑤고, 학생들의 자율권을 보장하면서 무언가 ‘다른 방식’으로 교육하려는 교사들을 배척한다. 이것이 우리네 교육현실이다.

<핀란드 교사는 무엇이 다른가>를 읽다보면 정말 부러운 생각이 든다. 그 사회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이 정말 부럽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라고 과연 권해야 하는가 - 이 질문 앞에선 솔직히 망설이게 된다. 한국의 교육이 얼마나 ‘낙후되어’ 있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부러움과 ‘낙후된 현실’ 뒤에 오는 건 한숨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 열일곱 개의 편견’ (엘렌 달메다 토포르, 이규현·심재중 옮김 / 한울아카데미)

우리는 아프리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아프리카를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 것일까. <아프리카 : 열일곱 개의 편견>은 우리가 아프리카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17가지의 편견을 하나하나 읽다보면 고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실감하게 된다. 우리는 그만큼 아프리카에 대해 무지한 셈이다.

사실 ‘우리의’ 이 같은 무지와 편견은 아프리카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시아 국가를 비롯해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항상 ‘서구의 시각’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아프리카의 편견을 극복하는 출발점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도 언급이 돼 있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가장 강력한 고정관념은 아프리카에 대한 우리의 ‘단일화된’ 관점이나 이미지이다. 아프리카인들은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생활하고 행동할 거라는 인식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아프리카 대륙은 다른 대륙보다 더 폭력적이라는 관념이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관념은 대부분 서구의 대중매체의 보도에 기반하고 있다. 서구매체의 아프리카 관련 보도의 대부분이 대재앙이나 무장투쟁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들은 아프리카의 성공 사례는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어쨌든 국내 아프리카 연구가 미미하다는 점에서 이 책 <아프리카 : 열일곱 개의 편견>은 발간 자체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세계지역에 대한 연구를 인문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대중화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언싱커블 에이지’ (조슈아 쿠퍼 라모, 조성숙 옮김 / 알마)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성공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언싱커블 에이지>의 저자 조슈아 쿠퍼 라모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의 기존 사고방식과 정책이 역효과를 불러오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대기업 총수건, 중앙은행 총재건 우리시대 지성인이라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낡은 관점과 사고방식에 예속되어 있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오판을 거듭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조슈아 쿠퍼 라모는 여전히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내린 여러 정책들은 세계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말미암아 세상을 더욱 위험하게 만드는 비극을 탄생시킨다고 지적한다. 사고와 행동의 전환을 혁명적으로 이루어내야 한다고 저자가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는 레바논에서 헤즈볼라 대원들을 만나 그들이 어떻게 이스라엘과 미국을 상대로 싸워 살아남는지를 직접 눈으로 보았다. 고르바초프에게 소련의 붕괴 이유를 물었고, 그의 생각을 들었다. 또한 전설적인 이스라엘의 정보부장 파르카슈에게 그가 어떻게 테러리스트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는지를 배웠다. 저자는 세계 최고의 투자가들을 만나 그들이 변화 가득한 실리콘밸리 안에서 어떻게 성공 가능한 사업과 회사를 찾아내어 투자를 결정짓는지 지켜보았다. 이 책은 그런 과정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한 가지 팁! 다양한 학문을 종횡무진 하는탓에 이 책은 끈기를 가지고 읽어야 한다.

‘블로거 원희룡’ (원희룡 / 삼조출판사)

<블로거 원희룡>은 특이한 책이다. 한나라당 원회룡 의원이 6년 동안 ‘블로그질’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를 담은 책이기 때문이다. 홍보용 책이라는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홍보용 책’이라고 해도 차원을 달리하는 건 분명하다. 6년 동안 자신의 블로그 활동을 책으로 옮겨 왔으니 집필 기간만 6년인 셈이다. 원희룡 의원에 대한 지지와 비판 글까지 모두 책에 담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네티즌 저자만 209명이다.

원희룡 의원이 6년간 블로그에 남긴 글은 1100여 편. 국회의원의 글은 보통 보좌관이 대신해 쓰는 게 많다. 그런데 이 책에 담긴 원 의원의 글은 모두 자신이 썼다. 거기엔 치열한 논쟁적 글쓰기부터 일상의 자잘한 내용까지 포괄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원 의원에 대한 지지여부를 떠나 국회의원 중에 일반 대중들과 이렇게 자유롭게 소통하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는 충분하다. 자신에 대한 쓴소리까지 반영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금 인터넷에서 열심히 ‘블로그질’을 하고 계시는 의원들이 몇 분 있는데 그들의 그런 활동이 이런 책으로 나오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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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