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3/11 기자의 감수성 vs 블로거의 감수성 by 곰도리
  2. 2010/03/09 ‘김재철 MBC사장 인선안’이 의도하는 것 by 곰도리
  3. 2010/03/07 토요타와 삼성 그리고 언론 by 곰도리
  4. 2010/03/05 김재철 사장, MBC노조와 합의 시도한 이유 (3) by 곰도리

이 글은 시사IN 130호에 실린 글입니다.

맨 앞에는 금메달리스트들이 앉았다. 앞줄 가운데에는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의 모습이 보였다. 두 번째 줄에는 은·동메달 리스트가 자리를 잡았고, 마지막 줄에는 코치들이 앉았다. 3월2일 있었던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선수단 귀국 기자회견장 풍경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누리꾼들이 주목한 이는 곽민정 선수였다. 곽 선수는 이번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13위를 차지하며 ‘제2의 김연아’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녀는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앉지도 못하고 단상 옆에 그냥 서 있었다. 카메라와 기자들의 시선은 메달리스트들에게 집중됐다. 하지만 필자는 텔레비전 화면 언저리에 서 있는 곽 선수의 모습에 자꾸 눈길이 갔다. 카메라 풀 샷 장면에서 가끔 그녀의 서 있는 모습이 나왔다. 기자회견이 끝날 때까지 곽 선수에게 질문하는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 따르면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온 그녀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고 한다. 고개를 푹 숙인 채 힘들어하던 곽 선수는 회견이 끝날 무렵 결국 자리에 앉아버렸다. 이 모습은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시청자와 누리꾼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1등만 기억하는 언론’이 되려는가    

“메달리스트만 참석하는 기자회견인데 일부 착오가 있었다”라는 것이 기자회견을 주관한 대한체육회의 해명이다. 이해한다. 분명 착오였을 거다. 하지만 그 착오라는 말이 더 불편하게 다가왔다. 메달을 딴 선수들만 기자회견을 할 자격이 있고,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선수들은 그럴 자격이 없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봅슬레이에 출전한 선수들이 선전(19위)했음에도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날 기자회견장에 참석하지 못하는 걸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 걸까.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을 메달의 색깔에 따라 자리를 배치한 건 이날 기자회견의 최대 압권이었다. 누가 봐도 금·은·동이라는 서열을 매긴 순서라는 게 명확했기 때문이다. 올림픽에 참여한 모든 선수의 노력을 인정한다는 말은 ‘외교적 멘트’일 뿐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스포츠 관계자들의 속내가 어떤지 이날 기자회견은 정확히 보여줬다.

가장 어이가 없었던 건 국내 미디어의 반응이었다. 당시 회견에서 일부 방송 관계자들의 수준 낮은 질문은 그냥 웃어넘긴다 해도, 이런 식의 기자회견 방식에 대해 누군가는 비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이후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의 비난 여론이 들끓었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극히 일부 언론을 제외한 대다수 언론은 선수단의 활짝 웃는 사진과 메달리스트들의 답변 내용 위주로 지면과 화면을 채웠다. 메달을 딴 선수들 위주의 환영 기자회견에 대한 질책과 반성의 목소리는 오히려 블로거들과 누리꾼들로부터 나왔다. 제도권 언론인들의 시각과 감수성이 블로거들의 그것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공식 홈페이지에 한국은 종합순위 7위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국내 언론들은 여전히 종합순위 5위로 보도한다. 전체 메달 획득 수가 아닌 금메달 위주의 집계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메달 집계방식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한국이 금메달 위주의 집계방식을 선호한다는 것은 ‘1등’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이런 부분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메달리스트, 특히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 중심의 기자회견은 앞으로 계속될지 모른다. 이 말은 ‘제2의 곽민정’이 또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한 모든 선수에게 격려를 보낼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사진=조선일보 3월3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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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협상파’의 입지를 좁히지 말라

“쓰나미다.”

‘김재철 사장 인선안’에 대해 MBC 한 관계자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 관계자의 논평은 단순히 외형적 규모가 크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내용적 측면의 ‘물갈이’가 ‘쓰나미’ 같다는 얘기입니다.

‘김재철 인선안’, 그러니까 28개 관계사(지역MBC 19개, 자회사9개) 사장 가운데 21개 관계사 (지역MBC 16개, 자회사 5개) 사장을 교체하는 안을 살피면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비호남 △고려대 △최문순·엄기영 색깔 걷어내기가 그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MBC 관계자의 표현은 이 세 가지를 모두 종합한 것입니다.

‘김재철 인선안’의 문제점


이번 인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영평가를 무시했다는 겁니다. 지역MBC 사장 인선에서 성과나 경쟁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건 누가 봐도 납득하기 힘듭니다. 특히 일부 지역MBC 사장의 경우 임기동안 상당한 경영성과를 냈음에도 이번 인사에서 교체됐습니다. 상을 줘도 모자랄 판에 사실상 ‘경질’을 당한 셈입니다.

‘경영평가 무시’와 한 축을 이루는 게 ‘보은인사’입니다. 공정방송노조 활동으로 징계를 받은 정수채 전 위원장이 이번에 MBC 프로덕션 이사로 선임된 것 대표적입니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MBC 프로덕션 사장에 공정방송노조 출신 윤혁 제작본부장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경영성과는 무시하고 ‘측근들’은 중시한다? 이번 인사를 두고 원칙과 기준이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입니다.

사실 전, 이번 인사에서 원칙과 기준 이런 것보다 ‘승자 독식주의’의 문제점을 말하고 싶더군요. 비호남과 고려대 출신 부각도 문제로 볼 수 있지만 저는 이보다 ‘최문순·엄기영 사람 걷어내기’가 더 문제라고 봤습니다. 물론 인사권은 사장에게 있습니다. 새로운 사장이 되면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사람을 기용하는 게 당연하지요.

하지만 그 인사권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최소한의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아니 원칙과 기준 이런 말보다 저는 ‘상식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누가 봐도 경영성과가 뚜렷한 사람을 내치고 ‘정치 색채’가 뚜렷한 사람을 기용한다는 건, 상식보다는 당파성이 작용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최문순·엄기영 체제’에서의 김재철 사장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런 ‘상식’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 김재철 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 ‘최문순·엄기영 체제’에서 김재철 사장이 코드가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 지역MBC 사장으로 재직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상식의 힘’이 작용했기 때문 아닐까요. 김재철 사장만이 아니라 이번에 사장 후보로 거론됐던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런 ‘혜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전임 사장들은 ‘노선’은 달랐지만 인사에 있어 최소한의 ‘균형’은 유지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 ‘김재철 인선안’에서 이런 최소한의 균형은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물론 일부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만, 크게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게 MBC 안팎의 전언입니다.

이번 인선안이 ‘김재철-이근행 조건 합의 이후’에 나왔다는 점을 주목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른바 노조가 속은 것 아니냐는 것이죠.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만. 앞으로 MBC노조의 행보를 일단 지켜보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MBC노조가 원칙과 기준을 버리고 김재철 사장과 무턱대고 타협할 거라고 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MBC노조의 건강성을 저는 믿습니다.

김재철 사장은 무엇을 의도했을까

개인적으로 김재철 사장이 무엇을 의도했는지가 더 궁금하더군요.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제가 보기에 노조와 방문진을 동시에 달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희만-윤혁 본부장’을 원위치 시키는 카드를 통해 노조와 대화를 시도하면서 이번 인사를 통해 ‘정권과 방문진을 비롯한 보수층 달래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것이지요.

지난 8일자 조선일보 사설을 보면 짐작하겠지만 보수층 일각에서 김재철 사장의 최근 행보를 못마땅해 하고 있는 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김 사장 입장에선 이들을 달래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문제는 김재철 사장의 이런 ‘줄타기’가 MBC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솔직히 이번 인선안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원들을 설득할거라면 가능성이 낮다고 말하고 싶네요. 앞서 언급했지만 기준과 원칙도 없는, 더구나 전임 사장들에 비해 ‘그다지 상식적이지도 않은’ 인사를 가지고 MBC 구성원들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왕 노조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생각을 했다면 좀 더 전향적인 방식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파국을 막는 최선의 방책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맨위=지난 8일 열린 방문진 이사회 모습 / PD저널>
<사진 중간=김재철 MBC사장 / PD저널>
<사진 아래=조선일보 3월8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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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보기] ‘토요타의 어둠’ (창해)

<토요타의 어둠>(창해)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두 가지다. 토요타의 본질에 대한 고발과 언론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특정 기업의 본질이 세상에 알려지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으면 정반대의 상황이 된다. 언론이 돈이나 광고 등을 이유로 그 역할에 충실하지 못할 경우 본질이 허상에 가려지게 된다는 얘기다. <토요타의 어둠>은 후자와 관련된 얘기를 하고 있다.

일본 언론에게 토요타가 성역이 된 이유

일본 언론에서 토요타는 성역이다. 토요타 기업에 관련된 문제나 비리가 불거져도 일본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뭘까. 광고 때문이다. <토요타의 어둠>이 전하는 내용을 일부 추리면 다음과 같다.

“유가증권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3월 결산의 토요타 단일기업 광고선전비가 1,054억 엔으로 2위인 마쓰시타(831억 엔), 3위인 혼다기켄공업(815억 엔)을 제치고 이미 10년 이상 전부터 수위를 지켜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토요타 비판기사를 실어 이루어지는 부수의 증가와 토요타 한 회사에서 계속 받는 광고수입을 저울질해 보면 리스크가 적은 광고 쪽으로 기울게” 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토요타의 어둠>이 고발하는 토요타와 일본 언론의 관계는 한국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 책이 일본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의 얘기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대기업이나 광고주를 의식해 기업 관련 비리나 문제점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것은 솔직히 일본보다 한국 언론이 한 수 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토요타의 어둠’이 한국 기업의 어둠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외면 받은 ‘토요타의 어둠’

<토요타의 어둠>은 많은 점에서 <삼성을 생각한다>(김용철 변호사, 사회평론)를 떠올리게 한다. <토요타의 어둠>이 일본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기까지의 과정과 국내에서 <삼성을 생각한다> 출간 이후 벌어진 과정이 흡사하기 때문이다.

<토요타의 어둠> 서두에는 이 기획을 책으로 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저자들’의 노력이 담겨 있다. ‘저자’는 많은 출판사와 잡지사에 출판을 위한 의사타진을 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출판사들 또한 토요타의 광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책에 언급된 것처럼 <토요타의 어둠>의 집필은 원래 <도요게이자이신보사>의 기획회의를 통해 처음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 책의 장별 구성도 <도요게이자이신보사> 편집자가 만든 내용 그대로이다. 그런데 이 기획은 최종 결재기관인 임원회의에서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유가 뭘까?

<도요게이자이신보사>가 예전 기사에서 토요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는데, 소송을 당하기 직전이기 때문에 임원들이 토요타를 자극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요게이자이는 일본 대형 출판사 가운데서 나름 원칙을 지키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이 이럴 정도면 다른 출판사들은 …? 결국 이 책은 토요타와는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비즈니스가 출판을 결정하면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언론으로부터 외면 받은 ‘삼성을 생각한다’


<삼성을 생각한다>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출판사는 <삼성을 생각한다>는 광고를 언론에 실을 수가 없었다. 해당 언론이 진보냐 보수냐에 상관없이 광고 자체를 싣는 게 불가능했다. 거의 모든 언론이 광고주인 삼성을 의식해 광고 게재를 꺼렸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에서 토요타가 성역인 것처럼 삼성 역시 한국 언론에서 성역에 가까운 대접을 받고 있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두고 경향신문과 오마이뉴스에서 벌어진 일련의 논쟁은 삼성과 한국 언론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가지 특이한 건 <삼성을 생각한다>가 언론의 외면을 받고 있음에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누리꾼들이 ‘언론을 통한 광고 게재 불가’ 소식을 인터넷과 트위터를 통해 알리기 시작하면서 ‘자발적 책 사기 운동’이 벌어졌고, ‘김상봉 교수의 칼럼 게재 불가’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책 사기 운동’ 참여도는 더욱 높아졌다.

<시사IN> 고재열 기자의 소개로 트위터를 시작한 출판사 사회평론은 <삼성을 생각한다>로 짧은 시간동안 가장 많은 팔로워를 만드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는 언론에 단행본을 광고하지 않고도 서점가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토요타의 상황, 한국 기업과 얼마나 다를까

<토요타의 어둠>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토요타 사원의 직장환경 실태와 토요타자동차의 실제 결함률이 99.9%에 달한다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는 글로벌 기업 토요타가 추진해왔던 효율성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토요타의 효율성이란 다름 아닌 직원들의 ‘엄청난 과로’와 ‘사내 복지 축소’ 등을 바탕으로 얻어낸 성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효율성의 지나친 추구는 품질경시 풍조를 만연케 한다. 그리고 품질저하는 반드시 안전사고 발생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 현재 토요타자동차에 대한 국제적 리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런 품질경시가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토요타가 엄청난 비용을 언론 홍보와 광고에 쏟아 부으면서 정작 품질개선에는 뒷짐을 지고 있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언론책임론이 불거지는 이유다.

그런데 <토요타의 어둠>이 고발하고 있는 내용을 한국에 적용시켜도 크게 무리는 없다. 한국의 독자들은 이 부분을 주목해서 읽어야 한다. 이를테면 토요타와 하청업체의 관계, 하청업체 사원들에 대한 괴롭힘과 가혹한 근무, ‘내부고발자’에 대한 미행과 도청, 노동조합에 대한 색안경과 탄압, 관리감독을 해야 할 공무원들의 미온적 태도 등이 한국의 상황과 많이 닮아 있다는 얘기다.

특정 기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하청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부당한 처사는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내부고발자’에 대한 미행과 은근한 협박,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탄압, 관리감독을 해야 할 공무원들의 미온적 태도는 일본이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기도 하다. 언론홍보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 또한 우리의 얘기다. 그런 점에서 <토요타의 어둠>은 한국의 ‘자본과 노동 그리고 언론’의 불공정한 관계를 보여주는 반면 교과서 역할을 한다.

나는 과연 떳떳한가

지금까지 ‘옳은 말’을 하긴 했지만 사실 <토요타의 어둠>을 읽을 때 내내 불편한 마음이었다. 언론계에 종사하고 있는 입장에서 ‘나는 과연, 내가 몸담고 있는 매체는 과연 이 책에 언급된 언론과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내내 주변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누군가 내게 비슷한 질문을 했을 때 ‘그럴 수 있다’는 답변을 흔쾌히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살림살이 어렵기는 내가 속한 곳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이 <삼성을 생각한다> 광고 게재를 ‘거부’했을 때 이들 언론사를 비판했다. 일리 있는 비판이다. 하지만 비판에만 그쳐서는 곤란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비판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토요타의 어둠>과 <삼성을 생각한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책을 읽고 토요타와 삼성에 대한 비판에 열을 올린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최소한 책을 직접 사서 보든지 아니면 자본과 광고주의 입김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 언론’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나서든지 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툭 까놓고 말해 기업 입장에서 광고하기 싫은 매체에 광고를 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 소비자 역할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정치와 자본권력에 독립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언론이 광고주의 눈치를 보면서 광고 게재를 거부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선 소비자들의 진전된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예전에도 한번 언급했지만 비판만 하는 건, 독립 언론에 필요한 재원확보 마련에는 무관심하면서 자본권력에 당당히 맞서라고 소리만 지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토요타와 삼성 그리고 모두를 위한 ‘비판’

<토요타의 어둠>과 <삼성을 생각한다>는 어쩌면 해당 기업 입장에선 달갑지 않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기업이건 견제장치가 없을 때 장기적으로 위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받아들일 부분도 있지 않을까.

견제 받지 않는 조직이 나중에 어떤 어려움에 처하는 지는 작금의 토요타가 분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토요타와 삼성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다른 기업은 물론이고 진보 보수를 망라한 모든 조직에 적용될 수 있는 원칙이기도 하다. 조직의 발전을 위해선 ‘비판과 견제’는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사진=미디어오늘 2월10일자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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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책으로 세상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요타와 삼성 그리고 언론  (0) 2010/03/07
Posted by 곰도리

[포커스] MBC사태를 보는 몇 가지 시선

묘한 형국이 됐습니다. ‘아군’이라 여겼던 사람들이 싸우고 ‘적군’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합의를 시도합니다. MBC 사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김우룡)와 김재철 MBC사장 그리고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이근행, MBC노조)는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복잡한 함수처럼 보이지만 MBC 사태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각각이 처한 입장을 살피고, 그 입장에 따른 딜레마가 무엇인지를 헤아리면 이해가 빠르다는 얘기입니다. 현재 MBC 사태를 불러온 당사자가 누구인지도 명확히 드러납니다. ‘MBC 함수’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김재철 MBC사장이 ‘본부장 사퇴’를 약속한 이유

많은 사람들이 김재철 MBC사장이 MBC노조와 합의를 시도한 이유를 궁금해 합니다. 방문진이 선임한 황희만 보도본부장, 윤혁 제작본부장에 대한 사퇴를 노조에 약속하면서까지 김 사장이 노조를 설득하려는 이유가 무얼까요.

   
▲ 김재철 MBC 사장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에서 열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PD저널
노조와의 합의 없이 얽혀 있는 MBC사태의 해법 마련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노조에 의해 출근을 못하고 있는 김재철 사장 입장에서 ‘난국’을 가장 빠르게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요? 공권력 동원일 겁니다. 출근 저지에 동참한 조합원들을 경찰을 동원해 끌어내고, 총파업에 돌입한 노조 집행부에 대한 강경방침을 밝히면 일이 쉽게(?) 풀리겠지요.

하지만 이 방법은 MBC 내부 반발은 물론 시민사회진영의 결집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장의 장벽은 쉽게 걷어낼 지 몰라도, 다른 변수에 의해 MBC 사태가 장기화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노사 양쪽 모두 상처를 입을 건 불을 보듯 뻔하고 이 과정에서 MBC가 입을 타격은 매우 클 겁니다. 이런 시나리오는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스타일인 김재철 사장도 원하지 않을 겁니다. 김 사장 입장에선 노조를 어떻게든 설득을 하는 게 사태해결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노조를 설득할 수 있는 카드가 무엇일까요. 김 사장은 ‘황희만·윤혁 본부장 사퇴’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들은 핵심 참모들이긴 하지만, 김 사장이 직접 선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무효화 하는데 따른 부담감이 크지 않습니다. 일각에선 황희만·윤혁 본부장이 김 사장과 잠재적 경쟁자라는 점에서 일석이조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어찌됐든 김 사장은 두 본부장을 ‘원위치’ 시키는 조치로 노조에 ‘성의 표시’를 하고, 이를 계기로 사태 해결을 모색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MBC노조가 김재철 사장과 합의를 시도한 이유

그럼 MBC노조가 김재철 사장과 합의를 시도한 이유는 뭘까요. 노조 역시 김재철 사장과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란 얘기입니다.

원칙적인 입장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면 이번 MBC노조의 선택이 달갑진 않을 겁니다. 총파업에 돌입하더라도 ‘낙하산 사장’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제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총파업에 돌입하는 게 MBC사태 해결을 위한 지름길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만, 제가 볼 때 총파업 돌입은 사태 장기화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재철 사장을 끝까지 반대하고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해서 사태가 제대로 해결되지는 않을 거라는 말입니다.

   
▲ 김재철 MBC사장과 이근행 노조위원장(왼쪽)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PD저널
사실 김 사장과 타협점을 찾지 않고선 노조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더구나 파업은 마지막으로 써야 할 카드입니다. 파업 돌입은 쉽지만 파업을 어떻게 접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파업에 돌입한다고 해서 MBC노조가 이번 싸움을 승리로 이끌 거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언론계와 시민사회의 연대 고리를 약해진 데다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자칫 MBC노조가 고립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김재철 사장과 타협을 시도한다면 어느 지점에서 협상이 가능할까요. 저는 ‘황희만·윤혁 본부장 사퇴’ 선에서 절충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화를 위한 출발점이 그렇다는 말이고, 이후 단체협상 개정 등과 같은 문제는 MBC노조가 싸워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김재철 사장 입성 이후 벌어질 경영진과의 싸움이 ‘진짜 싸움’이 될 지도 모릅니다. 원칙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물론 아쉬움은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있는 싸움판에서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MBC 사태의 진원지 방문진, 김재철 사장과 타협 가능할까

결국 문제는 방문진으로 귀결됩니다.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 김재철 사장이 자신들에게 반기를 드는 현재의 상황 - 방문진으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일각에선 김재철 사장 입성을 위한 방문진 고도의 전략이라는 해석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저는 과연 방문진이 그 정도의 정치력을 가지고 있는지 솔직히 의문입니다.

방문진이 MBC사태를 어떻게든 해결하려 한다면 김재철 사장의 카드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금 방문진 모양새가 볼썽사납게 됐기 때문입니다. 한번 보세요. ‘황희만·윤혁 본부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엄기영 전 사장을 퇴진시킨 게 방문진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직접 후임으로 선출한 김재철 사장이 사태해결을 위해 두 본부장 사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방문진이 그동안 얼마나 사태를 꼬이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방문진이 ‘생각’이 있다면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김재철 사장과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현실적으로 사태해결을 위한 첫 걸음일수도 있는 ‘잠정 노사합의안’을 거부했을 때 져야 할 정치적 책임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저는 지금 상황에서 MBC노조의 선택에 대한 실망과 비판보다, 방문진과 김재철 사장간의 ‘라운드 대결’을 주목해 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방문진이 ‘어떤 선택’을 하든 ‘곤혹스런 상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방문진은 김재철 사장의 ‘대화와 타협 정신’을 배우는 게 어떨까 싶네요. 진정으로 하고픈 충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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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