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떨기] 전략 자체를 바꿔야 한다

좀 이른 평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SBS 예능 프로그램은 지금 위기다. 그것도 프로그램 한 두 개가 문제가 아닌,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는 것 같다.

논란의 불을 지핀 건 SBS 〈하하몽쇼〉였다. 〈하하몽쇼〉는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하하와 함께 프로그램 MC를 맡고 있는 MC몽이 병역기피 논란에 휩싸이면서 출발 전부터 ‘하차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첫 회에서 표절파문으로 가수활동을 잠정 중단한 이효리를 등장시키면서 논란의 정점을 찍었다. 물론 이효리의 경우 표절파문 이전에 녹화된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지만 문제는 SBS의 태도다. 출연진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SBS는 계속 ‘고’만 외치고 있는 형국이다.

비슷한 콘셉트와 비슷한 출연진 … 물량공세가 과연 성공할까

지난 11일 첫 선을 보인 SBS〈일요일 좋다 - 런닝맨〉도 출발이 좋지는 않다. 하하는 11일 〈하하몽쇼〉에서 MC로 모습을 보이더니 같은 날 같은 방송사인 SBS 〈런닝맨〉에 또 출연했다. 10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에서 방송분량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정도다. SBS에서 하하의 콘셉트가 차별화됐으면 좋았겠지만 ‘거기서 거기다.’


〈런닝맨〉의 초대 게스트는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이효리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표절 파문 당사자였던 그녀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게 온당하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하지만 아랑곳없이(?) 방송에 등장했다. 다른 예능 프로그램은 표절 파문 이전에 녹화됐다는, 나름 이해할 만한 이유라도 있었지만 SBS 〈런닝맨〉 녹화시점은 정확히 표절 파문 이후였다. 장담하건대 이런 태도는 SBS가 됐든, 이효리가 됐든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오만한 태도로 비춰질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유재석이라는 ‘대형 카드’가 있지만, SBS가 처한 난국을 돌파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런닝맨’의 포맷이 그렇게 신선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첫 회 방영분을 두고 총평을 할 순 없지만 ‘런닝맨’은 ‘패떳2’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당분간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농촌 버라이어티와 차별화 되는 도시 버라이어티를 구현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그 취지가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이건 제작진의 책임이 크다.

도시인의 욕망의 집결체인 백화점을, 새벽 시간에 미션 수행을 위해 달리는 콘셉트는 나름 참신했지만, ‘왜 이들이 달려야 하는지’ ‘미션 수행이 대체 어떤 의미와 즐거움을 주는지’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 “대체 우리가 새벽에 왜 이러고 있냐”는 유재석의 농담이 농담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집단 출연진이 마치 유행처럼 강세로 굳어지고 있지만 최근 들어 그 증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SBS 예능 프로그램을 위기로 몰아넣는 주 원인이 되고 있다.  물론 SBS의 〈하하몽쇼〉와 〈런닝맨〉의 집단 출연진 전략을 탓할 수는 없다.

핵심은 SBS 이미지 추락 … 출연진 의존도 방식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성공한 출연진들을 대대적으로 섭외해서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겠다는 식의 ‘물량공세’ 전략은 그다지 신선한 이미지를 주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SBS 예능은 위태로울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거칠게 말해 ‘이래도 채널 돌릴 거냐’는 식인데, 문제는 이런 방식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한번 보자. 하하의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MBC 〈무한도전〉에서 형성된 캐릭터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하하가 SBS 예능 프로그램에서 MC와 출연진으로 맹활약 하고 있지만 〈무한도전〉 이미지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런닝맨〉은 유재석과 함께 출연한 데다 첫 회에서 보여준 하하의 캐릭터는 〈무한도전〉 복사판에 가까웠다. 김종국은 말할 것도 없다. 〈런닝맨〉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유재석과 이효리 등과 짝을 이룬 〈패떳〉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프로그램 콘셉트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상황에서 출연진마저 겹칠 경우 시청자들은 등을 돌린다.

물론 유재석이라는 ‘카드’가 있다. 그런데 ‘유재석 카드’가 〈런닝맨〉을 통해 빛을 발하는 게 아니라 SBS 예능 프로그램을 둘러싼 논란이 유재석을 에워싸는 형국이라는 게 문제다. SBS 예능 프로그램을 둘러싼 온갖 논란이, 새로 출발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부정적 이미지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패떴2〉의 갑작스런 종방이 그렇고, 〈강심장〉의 선정성 논란이 그렇다. 〈스타킹〉 출연진 논란도 예외일 수 없다.

그렇다. 지금 SBS는 월드컵 단독중계에 따른 비난에다 이른바 ‘장사’가 되지 않으면 최소한 ‘설명’ 같은 절차도 없이 프로그램을 그냥 없애버리는 이미지까지 계속 덧씌워지고 있다. 여기에 출연진과 관련한 온갖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단 ‘고고고’를 외치는 듯한 SBS의 태도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SBS의 지금과 같은 전략이 과연 얼마나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물론 〈런닝맨〉의 시청률이 지금보다 나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악화된 SBS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에는 아무리(?) 유재석이라도 무리인 듯 싶다. 

그래서 SBS는 지금 총체적 위기다. SBS의 강점인 예능이 위기라는 건, SBS가 위기라는 말과 같다. SBS가 한 두 개 프로그램이 아닌 채널 이미지 자체를 수정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꿔야 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런 ‘인해전술’과 ‘물량공세’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그건 한 방송사의 실패가 아니라 예능과 예능인의 실패로까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디 SBS가 시청률보다는 자신들의 브랜드 이미지에 애정을 가지기를 바란다.

곰도리

< SBS '런닝맨' SBS>

[수다떨기] 이효리 방송출연 논란을 보며

1.

솔직히 이효리보다는 방송사가 더 욕(?)을 먹어야 한다. ‘표절 파문’에도 불구하고 ‘이효리 상품성’에 더 방점을 찍고 방송을 내보내기로 결정한 건, 방송사이기 때문이다. 녹화 시점이 표절 파문 이전인지 아니면 이후인지 여부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찌됐든 방송을 내보내야 하는 시점은 표절 파문이 불거진 이후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하하몽쇼〉 첫 회는 도대체 뭘 보여주고자 했는지가 애매모호할 정도로 콘셉트가 엉망이었다. 표절 파문에 휩쓸렸지만 이효리에 기대어 가겠다는 심산이었을까. 지난 4일 방송된 SBS 〈하하몽쇼〉 ‘이효리 편’ 논란의 1차적 책임은 SBS에게 있다.

물론 반론도 제기된다. 이효리 스스로 방송 출연을 고사했어야 했다는 게 그것이다. 이 반론을 펴는 쪽은 ‘이효리 편’이 표절파문 이전에 녹화된 것이라 해도 ‘그’가 가수로서 활동중단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에 더 무게를 싣는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정리하면 녹화 시점이 표절 파문 이전이라 해도 이에 상관없이 본인이 방송 나가는 걸 ‘거부’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글쎄, 솔직히 후자의 지적과 관련해 이해하는 면이 있지만 그건 본인보다는 방송사가 판단할 영역이지 않을까 싶다. 설사 본인이 ‘거부 의사’가 있었다고 해도 문제는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본인이 거부할 의사가 있었는지 ‘사실 확인’도 해야 하지만 설사 그런 의사가 있었다고 해도 프로그램 녹화는 이효리 혼자서 한 게 아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한 것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방송불가’가 쉽지 않다.

어찌됐든 편성권은 방송사에게 있다. 방송을 할 지 여부는 방송사가 1차적으로 결정한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SBS의 ‘이효리 편’ 방송 강행은 〈하하몽쇼〉를 띄우기 위한 무리수였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지난 4일 방송된 SBS 〈하하몽쇼〉 ‘이효리 편’ 논란의 1차적 책임은 SBS에게 있다.

2.

사실 지금 여론의 질타는 SBS 〈하하몽쇼〉에 집중되고 있지만 같은 날 KBS 2TV에서 방송된 〈야행성〉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이효리는 4일 SBS 〈하하몽쇼〉에 이어 같은 날 저녁 KBS 2TV 〈야행성〉에도 출연했다. 이날 방송된 〈야행성〉의 녹화 시점이 언제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하하몽쇼〉와 마찬가지로 표절파문 이전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후일수도 있다.

문제는 녹화된 시점이 아니라 방송된 시점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어찌됐든 방송을 내보낸 시점은 표절 파문이 불거진 이후다. 그것도 SBS 〈하하몽쇼〉가 오전에 방송되고 난 이후 인터넷이 한번 들끓은 후였다. 하지만 KBS는 〈야행성〉 ‘이효리 편’을 그대로 방송했다. 언론노조 KBS본부의 파업 때문에 별다른 ‘대안’이 없었을 수도 있고, 이효리의 상품성을 그만큼 높이 평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야행성〉은 자칫 KBS와 이효리를 동시에 죽일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이날 〈야행성〉에서 MC들이 일반시민들에게 ‘한국 최고의 여가수는 누구?’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효리”라는 답변을 끌어(?)내기도 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정말이지 표절 파문을 생각했을 때 부적절한 장면이었다. 이효리를 생각(?)했다면 이건 ‘걸렀어야 했지만’ KBS는 이 부분을 그대로 내보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지난 4일 방송된 SBS 〈하하몽쇼〉와 KBS 〈야행성〉 ‘이효리 편’ 논란의 1차적 책임은 SBS와 KBS에게 있다.

3.

그럼 이효리 ‘책임’은 없는 것일까. 물론 있다. SBS 〈하하몽쇼〉와 KBS 〈야행성〉은 일단 녹화 시점 등을 고려했을 때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치자. 하지만 오는 11일 SBS에서 새롭게 전파를 타는 주말 버라이어티 ‘런닝맨’은 녹화 시점이 정확히 표절 파문 이후였다. 물론 가수로서의 활동과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별개의 사안일 수도 있다. 이효리가 가진 예능의 장기와 상품성을 고려하면 ‘그’의 예능 출연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게 이상할 수도 있다.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행동하는 게 더 프로답고 ‘쿨’하게 대처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미 SBS 〈하하몽쇼〉와 KBS 〈야행성〉의 녹화를 마친 상태였다면 SBS ‘런닝맨’ 출연은 하지 않는 게 더 적절했을 것 같다. 그건 ‘쿨’ 이전에 ‘예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표절 파문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가수활동을 당분간 접겠다고 선언한 사람이 지녀야 하는 ‘자세’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표절 파문과 관련해 이효리를 '피해자'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견해를 보이는 이들도 많다. 이효리는 지금까지 어려움이 발생할 때마다 나름 ‘쿨 한 태도’를 바탕으로  정면돌파를 해왔는데 이런 점이 지금의 ‘자신감’을 형성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때가 있고 상황이 있는 법이다. 지금 이효리에게 필요한 건 ‘쿨’이 아니라 ‘예의’다. 

곰도리

<사진(위) = 지난 4일 방송된 KBS 2TV '야행성' 화면캡쳐>
<사잔(아래) = 지난 4일 방송된 KBS 2TV '야행성' 화면캡쳐>

수덕사 산채비빔밥

수다떨기 2010/01/30 21:08 Posted by 곰도리
수덕사 도토리묵과 산채비빔밥. 차만 없었다면 막걸리 한잔 걸죽하게 하는거였는데 아쉽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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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수다떨기 2010/01/26 00:13 Posted by 곰도리
가끔 차한잔이 필요할 때가 있다 간식거리가 하나 있으면 금상첨와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취중진담] 폭설 이외에 생각해야 할 것 
 
1.

난 서울시 구로구에 산다. 참고로 서울시 구로구에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쓴 글도 있다. ( 졸고 : 서울시 구로구에 산다는 것) 지금까지 구로구에 살면서 불편하거나 서럽거나(?) 이런 걸 느낀 적은 거의 없다. 사람들이 구로에 산다고 하면, 묘한 시선을 보내곤 하는데 그게 가끔 불편하긴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가 사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0년 만의 폭설’을 경험하면서 구로구가 아니라 서울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공포’를 느꼈다. 난 구일역(인천 방향으로 구로역 다음)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이번 폭설로 ‘서울 공화국’ 사회에서 살고 있는 ‘주변부 인생’의 서러움도 느낀 것 같다. ‘서울공화국’의 폐해를 고스란히 입는 쪽은 결국 서민들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서울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는 ‘주변부 시민’ 말이다.

   

 
▲ 경향신문 2010년 1월5일자 1면

각설하고. 서울은 비정상적인 사회다. 나도 먹고 살기 위해 ‘서울 회사’를 출퇴근 하고 있지만, 이번 폭설을 경험하면서 ‘이건 사람 사는 도시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서울 중심주의’ ‘서울 공화국’을 분권화 시키려는 노력을 정부 차원에서 하지 않으면 비대해진 서울은 사람들을 더욱 황폐화 시킬 것 같다. 내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틀 동안의 상황을 보면서 난,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단 1월4일과 5일 나의 출퇴근 기록을 보자. 다음과 같다.

2.

1월4일 월요일 출근

구일역 도착 : 8시

구일역에서 지하철 탑승 : 9시15분
목동 사무실 도착 : 10시 10분

출근 총 소요시간 : 2시간 20분
(참고로 자동차로 출근하면 10-15분 걸림)

1월5일 화요일 출근

구일역 도착 : 8시

구일역에서 지하철 탑승 : 9시10분
사무실 도착 : 9시 45분

출근 총 소요시간 : 1시간 55분

1월5일 화요일 퇴근

목동 사무실 출발 : 6시40분
지하철 탑승 : 6시46분
신길 도착 : 6시55분

신길에서 인천행 탑승 : 8시 (1시간 5분 기다림)

인천행 지하철에서 질식사에 압사 위협에 시달림
옆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 하나 죽어야 정신차리겠냐”며 절규(?)

집 도착 : 8시 25분

퇴근 총 소요시간 : 1시간 45분

3.

물론 이는 나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내용이다. 뉴스가 아니라는 얘기다. 4일과 5일 이틀 동안 아예 퇴근을 안 한 사람도 있다. 제설 작업에 동원된 공무원들은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분들의 어려움과 노고를 이해한다. 내가 말하려는 건 그런 얘기가 아니다.

 

   
▲ 한겨레 2010년 1월5일자 2면

2시간 20분에 걸쳐서 출근을 하고 (자동차로 15분 거리를!!!), 2시간에 걸쳐 퇴근을 하면서 “내가 대체 여기서 뭐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인천행 열차가 연착 또는 지연되면서 정차하는 역마다 아수라장이 되고, 밀고 밀리는 상황의 연속 -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터지는 상황. 지하철 안에 들어갈 공간이 있건 말건, 사람이 압사를 하건 말건, 일단 자기는 들어가고 보겠다는 사람들의 ‘미친 듯한 표정과 눈길’을 보면서 - 여긴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다들 평소에 점잖고 멀쩡하던 사람들이 ‘괴물’이 되어 버린 건 아닐까. 진이 다 빠져 버린 채 터벅터벅 출퇴근을 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모든 상황이 폭설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난 아닌 것 같다. 물론 세계 다른 도시에서 이 같은 폭설이 내리면 교통대란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서울처럼 ‘이런 식의 대란’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같은 시간대에 수백만 명이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향하는 한국이라는 사회. 그리고 같은 시간대에 퇴근하기 위해 또 다시 수백만 명이 지하철을 타고 수도권에 위치한 집으로 가는 사회. 이건 정상이 아니다. 많은 미디어는 이틀 동안 내린 폭설과 교통대란, 서울시와 자치단체의 제설작업 미비를 질타하지만, 난 이런 측면 외에도 ‘서울공화국’이라는 극도의 일극적인 상황이 이런 대란을 불러 왔다고 믿는다. 왜 사람들과 미디어가 이 점을 주목하지 않는지 이상할 정도다.

4.

물론 이 상황 극복을 위한 대안이 내겐 없다. 나도 먹고 살기 위해 서울을 벗어나긴 힘들다. 다른 사람들의 상황도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을 이런 식으로 계속 방치하는 건 정말 아닌 것 같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이 정말 시급한 것 같다.

서울과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고, 서울·수도권 거주자를 위해 주택을 계속 건설하고, 또 서울·수도권 거주자를 위해 새로운 교통로를 뚫는 방식으론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확신이 생긴다. 폭설로 지옥 같은 출퇴근을 경험하면서 ‘서울공화국’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게 됐다. 대한민국 서울은 정말, 정상적인 도시가 아니다.

[일상나누기] 커피전문점에서 벌어진 ‘풍경들’

요즘 <개그콘서트> ‘남성인권보장위원회’(남보원)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저도 재미있게 보고 있는 데요, 오늘(25일) 그 위력(?)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물론 주관적인 느낌일 뿐 객관적인 건 아닙니다. 하지만 같이 동반했던 제 아내도 비슷한 느낌을 가진 걸 보면, 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

일요일, 아내와 함께 영화(굿모닝 프레지던트)를 보기 위해 한 극장을 찾았습니다. 시간이 좀 남아서 커피를 한 잔 마시기로 했는데, 아주 재미있는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우선 우리의 ‘풍경’.

아내 : 주문을 자기가 했으니 진동 울리면 내가 갈게.
나 : 하하. 개콘 ‘남보원’의 영향력이 정말 이 정도로 큰 건가.

실제 아내는 진동이 울리자 본인이 직접 커피를 가지러 갔습니다. 그 전까지는 주로 계산도 제가 하고, 가지러 가는 것도 제 몫이었거든요. ^^. 글쎄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행동에 그렇게 큰 의미 부여를 한 적은 없어서요. 하지만 분명한 건, 제 아내가 개콘 ‘남보원’을 본 이후 ‘그런 행동’에 의미부여를 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그냥 그렇게 우리끼리 ‘키득키득’ 대고 있는데, 그 풍경은 ‘우리만의 풍경’이 아니더군요. 그 커피전문점에 있는 커플 손님들 대부분이 계산은 남자가 하고, 진동이 ‘드르륵’ 울리면 일제히 여자들이 커피를 들고 오는 겁니다. ^^. 그 광경을 지켜본 아내의 한 마디, “저 사람들도 개콘 ‘남보원’ 영향 받은 모양이다.”

사실 <개그콘서트> ‘남성보장인권위원회’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보는지 몰라도, 저의 경우 남자들이 어느 정도로 유치(?)해 질 수 있는지 - 그 극단의 형태를 반어적으로 보여준다고 봅니다. 예전 같으면 ‘찌질이-소심남’이라고 놀림을 받았을 법한 그런 행동들을 ‘남성 권익’ 보장이라는 미명 하에 당당히(?)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남자들’의 유치함과 어이없음에 그냥 웃음을 짓는 거죠.

그런데 이런 현상들이 개그 소재로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은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경제적 어려움이 주된 원인이 아닐까요. 해마다 취업난이 가중되는 상황은 ‘전통적인 남녀관계’ (본질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바뀐 것은 없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드러난 그런 관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데이트 비용적인 측면에서 말이죠. ^^.

뭐 예를 들면 이런 거죠. 경제도 이렇게 어려운데, 데이트 비용은 모조리 남자가 내야 하나? 여자가 좀 내면 안되나, 뭐 이런 거. 예전 같으면 남자의 자존심 등등을 들먹이며 ‘씨알도 먹히지 못할 소리’였지만, 지금은 많은(?) 남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들이 옳냐 그르냐, 이런 문제에 대한 판단은 잠시 유보하겠습니다. 이건 가치판단적인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현실적인 측면’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인 듯 해서요.

개인적으로 이런 측면보다는 다른 면에 좀 더 주목을 하고 싶습니다. 기존의 ‘남자다운’ 행동이라는 것에 대한 우회적 비판 - 사실 저는 이 부분에 더 눈길이 가거든요. 뭐 예전엔 뭐든 남자가 해야 되고, 남자가 적극적이어야 하고, 사소하거나 자잘한 것들은 불만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는 것이 ‘남자답다’라고 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을 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싫은 건 싫다고 하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가급적 감정이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얘기를 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봤습니다. 그게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개콘 남보원’은 어쩌면 ‘찌질이’ ‘소심남’일 수도 있는 남자들의 속마음을 보여줌으로써 남성들의 행태를 비꼬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남자들의 권익보호를 표면적으로 내세우지만 ‘폼생폼사’ 잡는 남자들을 은근 슬쩍 비판하고 있는 건 아닐까 -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남성들의 허위의식을 공개함으로써 여성들로 하여금 ‘아! 남자들도 속으로 저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는 걸 여성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 저는 그런 식으로 자꾸 해석이 되더군요.

그래서 매주 ‘남보원’에서 새로운 내용이 개그로 다뤄질 때마다,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다만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지나치게 미시적인 부분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건 좀 우려가 된다는 거지요. 남성들의 ‘찌질한’ 속마음을 세상에 공개한 것까지는 좋은데, 아직도 여전히 본질적인 측면에서 남녀관계는 바뀐 게 없습니다. 바뀐 것 보다는 바꿔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제도적 측면 못지 않게 남성들의 성찰이 우선되어야 할 부분도 많고요.

그런 측면까지 들춰냄으로써 세상의 모든 남성들을 움찔하게 만드는 - 그런 ‘남보원’ 개그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요. 물론 판단은 제작진의 몫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기대를 가지고 앞으로 계속 ‘남보원’을 시청하렵니다. ^^.

<사진=KBS 개그콘서트>  KBS

정운찬과 엄기영의 ‘닮은 꼴’

수다떨기 2009/09/29 07:07 Posted by 곰도리

[취중진담] 그들의 ‘중도실용’은 성공할까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됐을 때 성공하기를 바랐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은 개인적인 차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가 무사히 국무총리 인준을 통과하는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개인 차원의 성공이라면 그는 벌써 성공했다고 보는 게 옳다.

내가 말하는 성공은, MB정부의 노선이 정치적 수사가 아닌 ‘실질적인 중도실용 노선’으로 가도록 하는 걸 말한다. 정운찬은 그런 역할을 일정부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가 MB정부가 방향전환을 하는데 있어 가교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했을 때 민주당에 적절한 자극을 주면서 환골탈태를 도울 수 있다고 믿었다.

정운찬 총리가 MB정부 ‘개혁’을 견인할 수 있을까

지금 보면 참 순진한 생각이었다. 국회 인사청문회 이전부터 제기된 ‘그’에 대한 갖가지 의혹 - 그 의혹들을 보면서 “대체 정운찬 총리가 MB정부에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을 종합하면 그는 ‘총리 후보자’가 아니라 ‘범법 의혹자’라는 단어가 더 적합했다.

소득세 탈루, 인세 수입누락, 병역기피, 위장전입, 모 기업체 대표로부터 용돈(?) 1000만원 수수 등 여러 의혹이 불거졌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명된 건 없었다. 자신이 한 말을 연이어 뒤집기도 했고, 증빙자료는 내지 않은 채 무조건 “믿어 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건 청와대의 반응이다. MB정부가 정운찬에 기대한 게 있다면 그의 ‘개혁성’과 ‘도덕성’일 것이다. 그것이 실질적으로 필요했든 아니면 외형적인 장식품이었건. 그렇다면 정운찬의 장점은 청문회 과정을 통해 상당부분 증발한 셈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계속 ‘고고고’를 외쳤고 결국 29일 한나라당 단독으로 총리 인준안을 통과시켰다.

정운찬 카드를 통해 MB정부가 얻고자 한 건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정운찬 ‘그’는 대체 MB정부에서 무엇을 실현하고자 했던 걸까. ‘망가진 정운찬’을 보며, 그가 국무총리라는 자리를 ‘어떤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의 자리보존’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이내 측은한 마음이 들었고 ‘그’에 대한 기대를 접기로 했다. 그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그게 도움이 된다고 봤다.

엄기영 사장의 ‘우향우’ 행보

엄기영 MBC 사장의 최근 행보도 정운찬 국무총리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엄 사장은 청와대와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자신의 사퇴를 압박할 때만 해도 “끌려 나가는 한이 있어도 내 발로 걸어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결사항전’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방문진이 ‘조건부 재신임’ 결정을 내린 이후 지나치게 최대주주를 의식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실 이런 우려는 방문진이 엄 사장 유임 조건으로 단체협약 개정과 구조조정을 포함한 개혁을 요구할 때부터 제기됐다. 엄 사장이 어느 수준까지 방문진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노조가 이를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가 - 이것이 최대 관건이었다.

하지만 엄 사장은 노조와 방문진의 입장을 중재한 ‘중도노선’이 아닌 ‘우향우’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방문진 일부 이사가 요구하고 있는 〈PD수첩〉 재조사에 응하고, 극우 보수 단체들이 문제 삼은 일부 프로그램 진행자를 사내 인사로 교체하겠다는 의사를 엄 사장이 사내외에 수차례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엄 사장의 조급증도 사태를 악화시키는데 한 몫 하고 있다. MBC는 지난 18일 노사 동수가 참여하는 ‘MBC 미래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경영진이 노조와의 합의 없이 미래위원회 논의 사항을 사내외에 공표하자 노조가 강하게 반발했다. 

엄 사장의 이 같은 행보는 정운찬의 행보와 ‘상황과 조건은 다르지만’ 많은 부분 닮아 있다. 엄 사장은 방문진으로부터 ‘조건부 유임’을 받았지만, 엄밀히 말해 MBC노조와 시민사회로부터도 ‘조건부 신임’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노조와 시민사회가 엄기영 사장 결사반대를 표명했다면 그가 현재 MBC 사장직을 유지하고 있을 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노조와 시민사회의 조건부 재신임은, ‘그’가 MBC 사장으로 있을 경우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는 최소한의 기대와 믿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엄 사장이 처한 ‘딜레마’를 고려하되, 최소한의 원칙은 지켜주기를 바랬던 것 - 바로 그것이었다. 정연주 전 KBS사장이 공개편지를 쓴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 사장은 이런 기대와는 다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모양새다. 정운찬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것처럼 이제 ‘그’에 대한 기대도 접어야 하는 걸까. 아직 미련은 조금 남겨 두련다. 대신 “이런 식이라면 대체 엄 사장은 무엇을 위해 공영방송 MBC의 수장이라는 중차대한 직책을 지키고 앉아 있는가”라는 노조의 성명서를 다시 한번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을 전해 본다.

MBC의 ‘우향우’는 굳이 ‘그’가 아니어도 할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진짜 중도실용적인’ 모습을 그에게 기대하는 건 무리인 걸까. 

<사진(위)> 경향신문 9월22일자 1면
<사진(아래)> MBC 노사가 지난 18일 미래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