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시사IN 94호(2009년 7/4)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명박 정권은 엄기영 MBC 사장까지 ‘저항의 상징’으로 만들 태세다. 엄 사장은 자신의 퇴진을 거론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을 향해 “어처구니가 없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검찰의 <PD수첩> 수사에 대해서도 “정치적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미디어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수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강한 어조의 비판이다.
MBC 일부 구성원들은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그럴 만도 하다. 지난해 <PD수첩> 광우병 방송 이후 사과방송을 결정하고, 당시 시사교양국장과 제작진을 문책한 당사자가 엄 사장이었다. 신경민 전 앵커를 교체할 때도 정권에 굴복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랬던’ 엄 사장이 이명박 정권과 정면승부 할 태세를 보인다? 일부 구성원들의 반신반의 하는 태도는 이런 사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동안 엄기영 사장에 대한 MB정부의 판단을 두고 언론계에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임기가 남은 엄 사장을 무리하게 교체하기보다 압박 등을 통해 ‘친여권화’ 시킬 거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었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MBC 경영진의 정권에 대한 굴복적인 조치들은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됐다.
하지만 최근 기류가 바뀌고 있다. 오는 8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이 개편된 이후 바로 교체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심지어 방문진 개편 이전 강제사퇴설까지 나온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엄 사장 사퇴 발언은 이런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MBC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압박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고 단호하다. 현 경영진은 더 이상 안 된다는 판단이 확고히 선 것 같다”고 말했다. 엄기영 체제의 MBC에 대한 청와대의 판단이 끝났다는 얘기다.
청와대가 예상보다 빠르게 MBC에 대한 전면전을 감행한 이유가 뭘까. 의도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미디어법을 6월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면 MBC에 대한 ‘기선제압’은 필수적이다. 지난해 연말과 올해 초 언론노조 총파업 당시 주축부대가 MBC노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PD수첩>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 발표를 MBC 경영진 책임론으로 몰고 간다면? MB정부 입장에선 미디어법 통과와 MBC 제압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다.
사실 MB정부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사나리오는 엄 사장이 스스로 물러나 주는 것이다. 강제퇴진에 따른 여론의 부담감도 덜고 이후 예정된 방송구조 재편 일정 등도 순조롭게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다. 최근 엄 사장을 만난 방문진의 한 이사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엄 사장이 ‘끌려 나가는 한이 있어도 내 발로 걸어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란 뜻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MB정부가 의도한 대로 사태가 흘러가 주면 좋겠지만 가능성은 반반이다. 청와대가 <PD수첩〉을 매개로 미디어법 통과와 ‘MBC 장악’ 의도를 분명히 하면서, 엄 사장 교체문제는 개인의 진퇴문제 이상이 됐기 때문이다. 여론전에서 유리할 것이란 장담도 없다. 명심하자. 엄기영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MB정부가 생각하는 것 이상일 수 있다. 여기에 탄압받는 언론인으로서의 ‘투사’ 이미지가 더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엄기영 사장의 행보를 주시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위) 엄기영 MBC사장 / (아래) 한겨레 6월29일자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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