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진담] 사이코패스와 악의 평범성 

“아돌프 아이히만은 독일의 나치스 친위대 중령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수 백만의 유태인을 학살한 혐의를 받은 전범이다. 그는 독일이 패망할 때 독일에서 도망쳐 아르헨티나에 정착했지만 1960년 이스라엘 비밀조직에 체포됐고 1962년 5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미국의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1963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뉴요커>라는 잡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이 재판과정을 취재한 아렌트는 이 책에서 아이히만이 유태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렌트가 송고한 이 기사는 곧 미국 전역에 걸쳐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악의 화신으로 여겨졌던 인물의 ‘악마성’을 부정하고 악의 근원이 평범한 곳에 있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아이히만이 평범한 가장이었으며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모범적 시민이었다고 하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 그는 평소엔 매우 ‘착한’ 사람이었으며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매우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한국인을 위한 교양 사전> 중 ‘악의 평범성’에서 인용, 강준만/인물과 사상사)

한나 아렌트 “악의 근원은 평범한 곳에 있다”

연쇄살인 용의자 강모씨. 언론과 전문가들은 그를 사이코패스라 말한다. 사이코패스 -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일컫는 이 말은 주로 사이코패스와 일반 사람들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할 때 쓰인다. 사이코패스 징후나 증상은 통상 이렇게 나타난다고 한다. 사기나 절도, 잦은 이직, 성적 문란, 가정에서의 무책임, 방화, 동물학대, 거짓말 등등.

언론은 통상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회적 병리현상 - 이를테면 연쇄살인, 아동 성폭력, 유아살해,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 가정폭력, 집단 성폭행 등이 발생할 때마다 가해자를 일반인과 다른 분류로 취급해왔다. 주로 정신병자 아니면 사이코패스라 단정하며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정상적인 부류가 아니라 매우 돌출적인 인물이란 점을 부각시켰다. 이번 연쇄살인 용의자 강모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로 ‘단정되는’ 사람들은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일까. 쉽게 단정 지을 일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아이히만도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전범이었지만 동시에 평범한 가장이었고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모범적 시민이었다. 더구나 평소엔 매우 ‘착한’ 사람이었으며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매우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정신병자나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주변에서 매우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이미 ‘위험 사회’ 속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연쇄살인 사건을 개탄하면서 용의자 강모씨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낸다. 언론도 이런 분위기에 용의자 얼굴공개 등으로 가세한다. 이해한다. 가족 잃은 슬픔을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희생자 가족의 슬픔과 분노는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갑자기 등장한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항상 ‘위험 사회’ 속에 살아왔고, 그것에 대단히 무감각한 채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해왔다.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가 <다시, 마을이다-위험 사회에서 살아남기>(또하나의 문화)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는 “타인에게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무고하게 죽임을 당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위험사회’ 속에서 살고” 있고,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끔찍한 사건의 범인이 되는 것을 끊임없이 목격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성폭행 사건의 85%가 피해자 주변의 아는 사람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은 ‘2007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여성부) 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소녀가장과 정신지체아를 집단 성폭행한 ‘아저씨들’은 사이코패스나 정신병자가 아니라 ‘평범한’ 이웃집 주민들이었다는 것도 이미 여러 차례 언론보도를 통해 확인됐다. 밀양에서 발생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집단 성폭행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강력 범죄가 워낙 일상적으로 발생하다보니 지하철 성추행 사건의 대부분이 멀쩡한 회사원과 화이트칼라, 전문직 종사자라는 것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닐 정도가 돼버렸다.

이것 뿐인가. 운동선수에 대한 폭력, 군대 내에서의 구타, 학교에서의 폭력·살인 사건, 성범죄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기사 등도 우리는 거의 일상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건의 가해자는 대부분 ‘누구의 이웃이며 남편이며 외삼촌이며 동네 이웃’일 가능성이 높다. 저 멀리 다른 세계에 사는 ‘우리와는 다른’ 사이코패스들만이 흉악범죄를 저지르진 않는다는 얘기다.

우리도 사이코패스가 될 수 있고, 그런 환경 속에 살고 있다

사이코패스를 우리와 다른 ‘특별한 존재’로 구별 짓고 그걸 전제로 해법을 모색할 경우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사이코패스적인 사회를 살아 왔고, 그것에 상당 부분 익숙해진 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범죄 정도의 차이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지만, 지금까지 문제가 제대로 해결된 적이 있었던가.

용의자나 가해자 ‘개인’을 단죄하는 것이 이번 사건의 최종결론이 돼선 안된다는 것을 새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를 ‘위험 사회’로 만든 원인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짚어가는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어떤 가해자’를 처벌하더라도 ‘제2의 사이코패스’는 또 다시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이 말은 우리도 언제든지 ‘주변 환경이나 상황적 요인’에 따라 사이코패스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명심하자. 악의 근원은 평범한 곳에 있다.

<사진(위) 한국일보 2월2일자 3면 / (아래) 조선일보 2월2일자 11면>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곰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