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나누기] KBS 인사에 대한 ‘최소한의’ 항의
1.
몇 년 동안 출연했던 KBS 라디오 방송을 그만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방송을 그만두고 싶다”는 의사를 제작진에게 밝혔습니다.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PD가 이번 KBS 인사에서 ‘보복성 인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보복성 인사’와 저의 방송출연 ‘중단’이 직접 상관은 없습니다. KBS가 10월에 가을개편을 앞두고 있긴 하지만 제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어떻게 될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가을개편에서 ‘살아남을’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제가 맡은 코너 역시 그대로 갈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일 방송을 끝으로 정리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왜냐구요? ‘보복성 인사’라는 게 너무나도 뚜렷한 상황에서 제가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어떤 사안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좀 우습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2.
KBS 사원들의 자발적인 모임체인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이 지난 8월11일 KBS 본관 앞에서 출범식을 가졌다. ⓒPD저널
KBS 새 사장에 이병순 사장이 선임된 이후 본부장과 팀장 그리고 평직원 인사가 이어졌습니다. 뭐 인사는 사장과 간부들의 고유 권한이니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인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보복성’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특히 평직원 인사의 경우 정도가 심합니다. KBS 중견PD 50여 명이 부당인사를 철회하라며 낸 성명서를 보면 이번 인사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 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장의 출근거부 투쟁에 앞장섰던 사람들, 불법적인 이사회 논의를 저지하기 위해 사복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던 직원들, 코비스(사내게시판)를 통해 회사를 걱정하는 글을 올렸던 사람들, 사원행동의 대의에 공감하고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번 보복인사의 희생자들이다. 말로는 화합과 동참을 말하면서 등 뒤에서 비수를 꽂는 이번 인사는 저열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3.
제가 출연하고 있던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담당PD도 이번 인사 대상자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부분이 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평직원 인사가 그렇게 급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가을 개편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전격’ 인사를 단행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만약 프로그램에 ‘어떤 변화’를 주고 싶었다면 가을개편이라는 시기를 선택해서 자연스럽게(?)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병순 사장 체제의 KBS’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뭐가 그렇게도 급한지 낮이 아닌 ‘야밤’에, 많은 구성원들의 반발을 받을 수밖에 없는 평직원 인사를 전격 단행했습니다.
4.
곰곰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급박하게 PD를 교체해야 할 이유가 없었음에도 담당 PD가 바뀐 이유에 대해서요. 답을 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출연했던 프로그램의 PD가 바로 “사장의 출근거부 투쟁에 앞장섰던 사람들, 불법적인 이사회 논의를 저지하기 위해 사복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던 직원들, 사원행동의 대의에 공감하고 참여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같이 출연했던 모 변호사는 이미 20일 방송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더군요. 제 마음도 사실 그랬습니다만 방송에서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방송을 마치고 나서 ‘그만두겠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뭐 제가 방송출연 안한다고 KBS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럴 리는 없지요. 다만 그래도 몇 년간 함께 ‘동고동락’을 해왔던 제작진이 ‘정치적인 이유’로 저렇게 ‘짐을 싸야’ 하는 걸 보니, 마음이 착잡하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방송에 출연한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전 그렇게 KBS 방송을 그만뒀습니다. 그것이 이번 KBS 인사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항의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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