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주의 책] ‘나 같은 배우 되지 마’ 외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 (신경민 / 참나무)

   
▲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 (신경민 / 참나무)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는 저자가 MBC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로 일했던 2008년 3월 24일부터 2009년 4월 13일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자신의 앵커시절 ‘경험담’을 기록했다면 이 책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겁니다.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는 찬반으로 극명히 나뉘었던 자신의 클로징 멘트를 ‘천천히, 성찰적으로, 자신의 눈을 통해’ 되짚어보고 있는 그런 책입니다. 방송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책은 점점 정파적으로 가고 있는 한국 언론의 현주소는 물론 앵커가 처한 현실과 방송 저널리즘의 상황을 ‘날 것 그대로’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는 데요, 저는 이런 저자의 시선이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찬반 논란을 빚었던 그의 클로징 멘트와 상당히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과 솔직한 견해를 거침없이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고 재벌과 군의 문제점까지 거침없이 쏟아내는 그를 보면서 <뉴스데스크>에서 클로징 멘트를 하던 신경민 앵커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어떤 면에서 보면 실제보다 이미지가 과장되게 부풀려진 면도 있고, 본의 아니게(?) ‘진보주의자’로 평가받은 면도 있습니다.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는 신경민 전 앵커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나 같은 배우 되지마’ (류승수 / 라이프맵)

   
▲ ‘나 같은 배우 되지마’ (류승수 / 라이프맵)
류승수라는 배우를 아십니까. 연기자의 꿈을 가진 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서 일당 5만 원짜리 엑스트라로 영화판에 뛰어들었습니다. 단역을 마다하지 않았고 조연을 거쳐 이제 주연까지 맡았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배우’를 드디어 류승수라는 이름 앞에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 됐습니다. <나 같은 배우 되지 마>의 저자 배우 류승수는 이 책에서 그동안 자신이 직접 부딪히며 터득한 ‘배우’라는 직업의 모습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담아 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우리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종횡무진 누비며 전 국민의 주목을 받고, 일반 직장인 연봉의 몇 배나 되는 돈을 CF 한 편으로 벌어들이는 사람들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그런 모습들이 정말 실제 배우들의 삶과 얼마나 일치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웬만한 고소득 전문직을 제치고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직업으로 떠오른 지 오래인 배우라는 직업 - <나 같은 배우 되지 마>에서 저자 류승수는 그런 현실은 대다수 배우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배우 류승수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건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라는 겁니다. 현실 - 어쩌면 추상적일 수도 있는 이 단어를 류승수는 정말 ‘리얼하게’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배우의 꿈을 꾸는 사람들 그리고 연기 지망생들에게 희망마저 꺾게 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긴 합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제작 현장 그대로의 모습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차분하게 들려주는 책이 드물다는 걸 고려하면 이 책은 매우 의미 있는 책입니다. 배우가 직접 썼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밥상혁명’ (강양구·강이현 / 살림터)

   
▲ ‘밥상혁명’ (강양구·강이현 / 살림터)
이 책은 세상을 바꾸는 21세기 생존 프로젝트라는 거대한 ‘담론’을 겉표지에 담고 있지만 내용은 소박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실험 - 저자들은 그것이 ‘밥상혁명’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문제의식은 소박하지만 이들이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소박하지 않습니다. 특히 저자 강양구·강이현 씨가 <밥상혁명>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한국 사회 특히 그 중에서 한국 언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혹시 기억하시는지. 지난 2003년 9월 10일, 멕시코 칸쿤에서 세계화에 항거하며 목숨을 끊은 농민 이경해라는 이름을. 이 씨의 죽음은 다른 나라에서는 ‘농민운동의 순교자’로 주목하고 있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영국의 <더 가디언> 등 해외 언론은 그의 삶을 통해 한국 농촌의 절망적인 현실과 비참한 상황을 조명했지만 국내 대다수 언론은 단순 사건기사로만 취급했습니다.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이들이 외면 받고 가격이 폭등함에도 정부는 사실상 농업을 포기하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상황 - 저자들이 이 책을 위해 세계 곳곳을 누비게 된 이유입니다. <밥상혁명>이 주목하는 건 ‘로컬푸드’와 ‘식량주권’입니다. 때문에 이 책 곳곳에는 미국, 영국, 일본, 캐나다,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서 농민장터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실이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또한 저자들은 한국 정부를 비롯해 세계 각국 정부가 강조한 ‘식량안보’ 개념으로는 현재 먹거리와 관련해 벌어지고 있는 세계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모던 스케이프’ (박성진 글, 강상훈 김상길 김영경 이주형 사진 / 이레)

   
▲ ‘모던 스케이프’ (박성진 글, 강상훈 김상길 김영경 이주형 사진 / 이레)
<모던 스케이프>는 ‘일상 속 근대 풍경을 걷다’는 부제가 설명해 주듯,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예전 모습’들을 정밀하게 포착한 책입니다. 근대라는 단어는 현대나 포스트모던과는 전혀 다른 의미죠. 흔히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가교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됩니다. 어쩌면 근대라는 시간은 우리가 남들에게 내세우기도 좀 그렇고, 오히려 감추고 싶은 그런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모던 스케이프>에 담긴 ‘우리의 근대적 모습’은 그렇게 밝지만은 않습니다. 우리에게 근대는 식민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고, 군사독재 정권의 잔재와 아픔이 남아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물론 ‘현대’인 지금에도 근대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죠.

사실 <모던 스케이프>가 주목을 끄는 건 우리네 일상에 아직 남아 있는 근대의 모습을 그냥 담기에만 그친 게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근대의 모습을 담아냈다는 겁니다. 근대를 무조건 철폐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여기면 그것은 은폐와 외면대상으로 전락합니다. 저자는 기형적일지라도 우리네 일상에 녹아 있는 근대의 모습 또한 우리가 안고 가야 할 현재적 모습이라고 강조합니다. 근대를 기념물이 아닌 일상으로서 바라볼 필요가 있고, 그 일상적인 모습을 차분한 시선을 통해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죠.

‘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 (조현연 / 후마니타스)

   
▲ ‘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 (조현연 / 후마니타스)
오늘날 한국의 진보정당들은 대중에게 희망과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냉정히 말해 그렇지 못합니다. 진보정당도 그렇고 ‘그들’이 표방한 가치와 언어 역시 대중들에게 희망의 언어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보가 위기라는 말도 나오고 민주주의가 위기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의 저자 조현연 씨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진보운동의 이론과 실천적 고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한국전쟁 이후 진보 정당 운동 역사를 총괄적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특히 1987년 이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렇다고 이 책이 진보정당의 역사를 살펴보는 책은 아닙니다. 현재 진보정당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거를 살펴보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죠.

저자는 진보정당의 역사를 ‘역사적 단절기-정치적 모색기-정치적 실험기-독자적 정립기-새로운 모색기’ 등 다섯 시기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 정치사에서 진보정당 운동의 역사는 제대로 주목받지도 못했고 대접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진보정당의 역사가 짧아서 그런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반공 체제와 결합된 오랜 권위주의 독재 권력 하에서 지속적인 탄압을 받은 건 맞지만 진보정당의 역사까지 짧은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그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도 담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에 진보정당의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 대안이 담겨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위기의 민주주의 시대’에 왜 정당정치와 진보정당에 주목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만큼은 이 책을 통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희망의 역사’ (장수한 / 동녘)

   
▲ ‘그래도, 희망의 역사’ (장수한 / 동녘)
<그래도, 희망의 역사>는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일반적인 역사책은 아닙니다. 시대순으로 나열돼 있지도 않다는 점도 그렇고, 저자가 ‘의도적으로’ 균형성을 강조하려 한 것도 이런 느낌을 갖게 합니다.

저자는 지금껏 승자의 시각, 강대국의 시각, 보수주의자들의 시각에만 갇혀 있었던 역사 읽기의 편협함을 버리고, 좀 더 시야를 넓혀보자고 강조합니다. 이를 테면 이런 겁니다.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세계가 자본주의 제도를 채택하면서 미국을 자신들의 모델로 삼는 것은 의미 있는 시도이지만, 미국식 자본주의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의 삶의 실상은 외면한 채 미국이 발표하는 수치만 주목하는 것은 한쪽 시각만 중시하는 역사 읽기일 뿐이라고 거지요. 오늘날 심각한 빈부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불씨로 작용하고 있음에도 역사책은 이런 현실을 외면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사실 저자가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들은 좀 독특합니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라는 음악에서 출발해, 맥주가 보편적인 음료로 자리 잡고 있던 도시에 커피가 수입, 유통되고 시민들이 기호식품으로 즐기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당시의 문화와 시를 곁들여 흥미진진하게 소개하는 그런 식입니다. 지금까지 단일된 시각으로 풀어냈던 역사 서술방식을 다양한 시선을 통해 소개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잠깐 독서

   
‘강은 흘러야 한다’ (김상화 / 미들하우스)

정부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즉 4대 강을 정비하겠다고 나섰다. 여야 간 치열한 공방이 진행 중이고, 많은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들이 강에 손을 대지 말라며 반발하고 있다. 여기에 보태 누구보다 크게 ‘강은 흘러야 한다.’라고 외치는 이가 있다. 바로 이 책 ‘강은 흘러야 한다’의 저자 김상화다.

김상화는 ‘낙동강 공동체 대표’, ‘한국 강 살리기 네트워크 공동대표’, ‘운하백지화국민운동 공동대표’ 등의 직함에서 알 수 있듯 강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낙동강을 35년간 짝사랑해왔다고 밝힌다. 35년간 낙동강의 발원지 태백에서 부산의 낙동강 하구까지 1,300리 길을 도보로 1,370차례 답사한 이다. 이보다 강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런 그가 전면적으로 정부의 4대 강 사업을 비판하고 나섰다.

   
‘생각하는 글쓰기’ (최종규 / 호미)

일년 동안 천여 권에 이르는 책을 읽어내는 독서가이자 헌책방 순례자인 최종규 씨가 펴낸 책이다. 모두 108개의 꼭지를 엮은 이 책은, 꼭지마다 여느 책에서 뽑은 짤막한 보기글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보기글은 글쓴이가 책을 읽다가 뽑아 둔 ‘살려 쓰면 좋을 우리 말’이 들어 있는 글이다. 그러면서 보기글에서도 아쉬운 대목이 있으면 반드시 더 나은 낱말이나 표현으로 손보고 바로잡았다.

별 생각 없이 쓴 일본식 한자말이나 외래어를 꼬집는 보기글도 더러 소개하고 있다. 지나친 한자말이나 일본 말투, 번역 말투에 물든 사람한테는 다소 불편하고 입에 쓴 지적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말과 글을 살리는 일이 바로 우리 생각과 마음, 우리 넋과 삶을 살리는 일이라는 글쓴이 생각이 책 곳곳에 배어 있는 보약 같은 글이다.

   
‘지상 최대의 쇼’ (리처드 도킨스 / 김영사)

이 책은 그 자체로 아주 잘 쓰인 진화론 입문서이다.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아직도 ‘신의 망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반박하기 위해 진화의 증거를 확고하게 밝히는 <지상최대의 쇼>를 출간했다. 이 책은 도킨스의 열 번째 책이다. 이 책은 진화가 사실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갔다. 전작들은 모두 진화를 명백한 사실로 가정하고 그 작동법에 관한 이론을 논했다면, 이 책에서는 ‘진화를 뒷받침하는 증거, 진화가 과학적인 사실이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다루고 있다.

도킨스의 책을 읽은 재미는 내용뿐만이 아니다. 그의 글은 무신론자부터 수도사에 이르기까지 21세기를 사는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중요한 과학서이자 위대한 문학 작품 이상이다. 세계적인 석학답게 과학과 종교, 철학과 역사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과 교양, 현란하고 도발적이면서 어려운 것을 끝까지 풀어내는 집요한 문체가 여전하다.

   
‘사부님 싸부님 1 2’ (이외수 / 해냄)

불안한 시대를 건너기 위한 몸부림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심리학 서적들에 열광하는 이때, 미물의 생애를 통해 본 에세이가 출간해 독자들의 마음에 쉼터를 제공한다. 대한민국 강원도 어느 두메산골의 작은 웅덩이에서 돌연변이로 태어난 올챙이 한 마리가 ‘싸부님’으로 변신해 도(道)를 들려주는 책 <사부님 싸부님>은, 소설가 이외수가 등단 이후 장편소설 3편과 소설집 1편을 세상에 내놓은 다음 야심차게 벌인 새 프로젝트다.  “소설가가 왜 만화를 그리냐?”는 선배 작가들의 질타에 시달리게 한 문제작임에도 불구하고, 1983년(영학출판사) 첫 출간 이후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1991년(예문각), 1996년(금문서관), 2002년(자인)에 개정 출간되었고, 드디어 출간 27년 만에 판형을 축소하고 컬러링을 첨가해 새로이 세상에 나왔다.

‘외뿔’ (이외수 / 해냄)

   
열등감에 휩싸여 고독해 하는 하찮은 물벌레의 이야기 <외뿔>은 천하만물의 진리와 사랑도 진정한 깨달음이 없다면 욕망과 허영에 불과함을 일깨우는 책이다. 소설가 이외수가 <사부님 싸부님>(1983년) 출간 이후 18년 만에 내놓은 우화 에세이다. 뾰족하게 깎은 연필로 그리고 볼펜으로 덧그린 까닭에 1천 장의 파지를 만들어내며 문자 읽기를 넘어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안겨주는 이 책은 2001년 첫 출간 당시 10만 부 이상 판매되면서 독자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새 출간을 위해 스토리 전개에 어우러지게 판형을 조절하고 컬러링 작업으로 단장했다.

작가는 도의 본질을 묻는 화두인 “어디로 가십니까”를 모든 국민이 일상적인 인사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이 미국풍양속(美國風良俗)으로 되어버린 이 시대를 비판하고, 주인공인 도깨비 몽도리가 내려앉은 춘천시 의암호 물속 세상을 통해 욕망과 허영에 빠진 인간 세상의 축약판을 드러낸다. 또한 재산, 권력, 학벌, 신분, 외모 등을 좇아 발버둥치는 이들에게 물살에 자신의 전부를 내맡기는 물풀의 흔들림을 빌려 진정한 사랑과 깨달음이 합일에서 탄생됨을 깨우쳐준다.

‘초국적 기업에 의한 법의 지배’ (수전 K. 셀, 남희섭 옮김 / 후마니타스)

   
이 책의 원서는 지재권에 관한 국제규범이 세계무역기구 체제로 편입된 이후(즉, 트립스 협정이 체결된 이후) 이에 대한 저항운동이 부분적 성과를 내던 시점(2003년)에 출간되었다. 트립스 협정의 체결 과정뿐만 아니라 트립스 협정으로 대표되는 ‘지재권 최대주의’의 저항운동이 태동하고 전개되는 과정을 체계적이고 이론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전통적으로 지재권은 법학의 영역이었고 일부 경제학자들의 연구 대상이었는데, 이 책은 지재권을 정치학·사회학의 틀로 해부함으로써 새로운 학문적 지평을 열었다는 의의도 가진다. 이 책은 트립스 협정의 성립 과정은 물론 한국 사회의 지재권 제도가 그동안 겪은 변화 과정을 분석하는 데에 훌륭한 방법론을 제시해 주며, 지재권 제도의 향후 변화를 단순히 ‘예측’하는 것을 넘어서 지재권 제도의 개혁을 어떻게 ‘기획’할 것인지를 안내하는 실천적 함의도 있다.

1990년대부터 권리 보호를 일방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된 한국의 지재권 제도,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저작권 침해 단속, 공공연구 성과와 대학교수의 연구물을 특허로 사유화하는 사회, 저작권 침해로 3회 이상 적발되면 인터넷 계정이 삭제되고 해당 게시판까지 폐쇄되는 이른바 ‘저작권 삼진아웃제’의 도입, 피투피(p2p)와 같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가 부담해야 하는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엄격한 저작권 보호 의무,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 전략의 하나로 추진되는 지재권 보호의 강화 등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현상들을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우리가 경험적이고 현상적 수준에서 파악하는 것 이면에 어떤 기제가 작동하고 있으며, 이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어떻게 모색할 것인가? 이 책은 이를 위한 이론적, 실천적 지식을 제공한다.

‘기후변화의 정치학’ (앤서니 기든스 / 에코리브르)

   
<제3의 길>로 널리 알려진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이 책에서 하나의 역설로 시작한다. 그것은 지구온난화로 야기되는 위험은 결코 손에 잡히지 않으며 일상생활에서 거의 감지될 수 없기에 그 잠재력이 제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우리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뿐이라는 것이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후변화 문제는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지 못하며 늘 뒷전으로 밀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역설은 사람들의 행동을 마비시키거나 억제하는 데도 영향을 미치는 중심적인 개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말은 사람들이 수없이 그 심각성을 듣더라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기후변화의 정치학’이 출발한다.

기든스는 “현재 우리는 기후변화에 대한 그 어떤 정책도 갖지 못했다”고 선언하면서 현실론에 근거하여 논의를 진행한다. 물론 기후변화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개혁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존재하는 조직과 기구들을 무시할 수 없으며 또한 민주주의 전통을 중시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국가(state)의 역할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국가의 의미는 다양한 수준의 공권력을 의미하는데, 중앙정부와 지역정부, 지방정부 등을 모두 아우른다. 그리고 지구화 시대에는 그런 공권력이 정치학자들이 이른바 ‘다층적 거버넌스’라 일컫는 다양한 수준에서 발휘되는데 위로는 국제무대에서, 아래로는 지역과 도시와 지방에 이를 수 있음을 역설한다.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서동진 / 돌베개)

   
이 책은 최근 20여 년간 한국사회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해 무엇보다 이런 ‘주체성의 체제’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1980년대의 ‘산업구조조정’에서부터 1990년대의 ‘유연화’에 이르는 경제적 변화. ‘민주화’ 이후 문민정부에서 참여정부까지 추진됐던 정치적 개혁과 혁신. 그리고 1990년대 ‘신세대 혁명’에서 정점을 이뤘던 ‘자기표현’의 문화.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어떻게 포착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러한 흐름이 바로 ‘자기계발하는 주체’라는 새로운 주체화 방식에 있음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일상에서 강박적으로 자기계발 서적을 소비하는 개인의 모습을 지난 20년 사이 일터에서 등장한 유연하고 경영자적인 노동주체와 연결시키고, 이를 다시 새로운 권력의 형태가 주조해내는 자율적인 시민의 모습과 연결시킨다. 지난 20년간 한국사회에서 어떤 주체화의 권력(통치성)이 등장했는가를 분석하는 이 ‘주체성의 계보학’은 그런 점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탐색, 구체적이면서도 이론적인 탐색이라 할 수 있다.

   
‘인도에 갈 때는 숟가락을 가져가세요’ (대연 / EASTWARD)

인도는 천차만별의 이야기가 있는 나라다. 인도의 전통과 문화, 종교를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인도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 또한 인도의 한 부분만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경험되거나 꼭 알아 두어야할 내용들을 글로 쓰려고 많은 애를 썼다. 인도에 관한 많은 책들이 지나치게 주관적인 관점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인도를 처음가는 분이거나 이미 인도를 다녀본 분이거나, 이 책이 인도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 책에는 짧지만 네팔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인도와 네팔이 같은 나라와 다름없는 종교와 문화,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고 언어의 뿌리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네팔도 여행하기에 네팔의 이야기도 함께 실었다.

   
‘이종기 교수의 술이야기’ (이종기 / 다할미디어)

문명의 탄생과 함께 한 몇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불이다. ‘술’ 또한 인류 문명의 발생과 함께 사람과 동고동락했다. 종교 의례에서 술은 중요한 도구로 쓰였고 현대 사회에서 술은 친교의 목적은 물론 대표적인 기호품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종기 교수의 술 이야기>는 양조학을 전공한 저자가 술의 역사와 세계적인 술을 소개한 책이다.

책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술의 문화사에 대한 기술이 등장한다. 나머지 한 부분은 세상에서 유명한 술에 대한 소개다. 와인, 맥주, 위스키, 브랜디, 한국의 술, 중국의 술, 일본의 술이 소개된다. 이 외에도 보드카, 럼, 데킬라, 리큐르 등의 술이 다뤄지는데 다양한 삽화가 동원되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진보의 미래’ (노무현 지음 / 동녘)

노무현 대통령은 책에서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만원 버스’를 예로 들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진보주의자는 차가 아무리 비좁더라도 “같이 타고 가자”라고 말하는 사람이고, 보수주의자는 “비좁다, 늦는다, 태우지 마라”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곧 진보의 가치는 자유, 평등, 평화, 박애, 행복을 강조하고, 보수의 가치는 시장과 경쟁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진보의 핵심은 ‘복지’와 ‘분배’다. 그러나 이 핵심 가치를 말하려고 하면, 늘 보수주의의 ‘경제 성장’이라는 단어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곧 보수의 가치로 인해 진보의 가치가 등한시된다는 것이다. 특히 ‘선진국 진입, 세계 몇 위 국가’ 등과 같은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하는 성장 일변도의 정책이 진보의 핵심 가치를 가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는 어떻게 자신의 정책을 펼쳐 가야 하는가? ‘어떤 성장인가?’라는 말은 하지 않고 ‘성장’만을 외치는 보수주의를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책에서 보수와 진보의 이런 논쟁을 정면에서 다루고자 한다. 문제는 결국 ‘돈이냐, 사람이냐’라는 단어로 요약되는데, 우리가 지금 너무 ‘돈’에만 매몰되어 있어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의 가치를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정치를 다시 되살려야 하고, 민주주의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걸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말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책에서 보수주의의 공격에 휘말려서 진보적인 정책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진보의 가치를 제대로 말하자고 제안한다. 곧 진보가 민주주의의 희망이며 대안이라고 시민들에게 정확히 말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감독을 위한 영화 연기 연출법’ (주디스 웨스턴, 권경원 옮김 / 비즈앤비즈)

감독이 알아야 할 연기 지식을 상세히 설명한 책이다. 배우의 연기를 중심으로 배우 캐스팅에서 리허설, 촬영에 이르기까지 영화제작의 전 과정을 기술했다. 또 시나리오를 다루는 방법과 배우에게 효과적인 지시를 내리는 방법 등 연출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내용을 담았다.

배우 캐스팅에서부터 리허설, 촬영에 이르기까지 영화제작의 과정을 연기를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시나리오를 다루는 법, 배우에게 지시를 내리는 효과적인 방법 등 감독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 실려 있어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배우들의 배역에 대한 연기훈련과 극중 인물로의 몰입 등 연기 과정 전반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한다. 감독으로서 연기를 보지만, 감독과 배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연기기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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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

이 글은 시사인 91호(2009.6.13)에 기고한 글입니다.

“로고를 가리고 다니는 요즘 참 ….”

최근 만난 KBS PD가 한숨 쉬며 내뱉은 말이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쫓겨나고, 서울광장과 대한문 앞에서 시민들에게 취재거부 당하는 작금의 상황에 대한 푸념이다. 지난 5월29일 서울광장 인근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를 지켜본 한 지인은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KBS 기자들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적대적이었다”고 전했다. 봉하마을에서 가장 수난을 당한 건 조중동 기자들이지만, 서울광장 부근에서 조중동보다 더한 수모를 당한 언론사는 KBS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KBS 기자·PD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KBS 노동조합·PD협회·기자협회가 성명을 냈다. 이들은 KBS의 신뢰도 추락을 우려했고, 조문객 인터뷰 누락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보도·편성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 특히 KBS PD협회는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이병순 사장 퇴진운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늦게나마 ‘KBS 보도정상화’ 작업에 나선 이들에게 격려를 해주는 게 도리일 것이다. 하지만 온전히 지지를 보낼 수는 없다. 시민들로부터 ‘돌을 맞는’ 현재 KBS 상황이 일부 간부들과 경영진만의 책임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까지 일선 기자·PD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스스로 자기검열을 해오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문제의 원인을 간부들에게 돌리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정권이 바뀌고 보수적 인사들로 간부들이 구성됐다고 해서 KBS의 문제가 모두 그들로부터 비롯되는 건 아니다.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부터 책임이 자유로운 언론은 없다. 검찰과 함께 ‘박연차 게이트’ 수사방향을 사실상 이끌었던 조중동부터 경향․한겨레에 이르기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책임론에서 자유롭진 않다. KBS가 수난을 당하고 있지만, MBC 역시 노 전 대통령 보도에 있어 본질적인 차이는 없었다. 검찰이 찔끔찔끔 흘리는 수사내용을 덥석 받아 보도했고, 본질과 상관없는 ‘파파라치 보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반성이나 자성이 없었던 것도 KBS만의 행태는 아니었다.

KBS의 유일한 실수(?)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대다수 언론처럼 ‘노비어천가 보도’를 쏟아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왜 유독 시민들의 비난은 KBS로 집중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언론계 인사들의 반응은 대략 이런 것이다. “KBS가 이렇게 빠르게 무너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참여정부 5년 동안 상대적인 자율성을 확보했던 KBS가, 정권이 바뀐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예전 모습으로 돌아간 것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KBS 구성원들도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KBS의 한 기자는 “노 전 대통령을 애도하는 많은 시민을 보며 ‘노빠들’이 준동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KBS 간부들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일선 기자․PD들과의 간극이 너무 크고 이것을 좁히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 간극을 좁히는 건 ‘당신들’의 몫이지 우리가 대신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KBS 기자·PD들의 투쟁을 온전히 지지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이 교체 대상으로 언급한 간부들이 바뀌면 문제가 해결이 되는 걸까.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명심하자. KBS의 변화는 사장과 간부들이 아니라 일선 기자와 PD들의 문제의식과 ‘조그만 실천’에서부터 시작된다. 문제는 바로 ‘당신들’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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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당신을 지지했고, 성공을 기원했던 한 사람입니다.
때론 '비판자'가 되기도 했고, 가끔은 실망도 크게 했었지만,

이제 부질 없는 짓(?)이 됐습니다.

인터넷과 방송에서 수많은 말들과 언어들이 넘쳐나지만, 
아무런 감동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저의 침묵도 좀 길어질 것 같습니다.

지금 어디에 계실지 모르겠지만,
어디에 계시든 편안한 휴식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

미안합니다.

그냥 그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Posted by 곰도리

이 글은 시사인 85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방 안에서 비서와 대화하거나, 마당을 서성이는 모습이 국민의 알권리에 속하느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항변이다. 이 항변은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진을 친’ 기자들을 향해 있다. 이해한다.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찰 대상이 되고 있으니 “최소한의 사생활을 돌려 달라”는 호소가 나올 법도 하다. 엄밀히 말해 전직 대통령이 방안에서 대화하고, 혼자서 마당 서성이는 게 국민의 알권리와 무슨 상관인가. 언론은 전직 대통령 비리 의혹을 ‘파파라치 수준’으로 전락시켰다.

그런데 이 ‘파파라치 행진’이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노 전 대통령 검찰 소환 때 방송사들이 헬기를 띄워 생중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남 김해에서 서울까지 노 전 대통령이 탑승한 차량을 추적해 방송하겠다는 발상이 웃긴다. 노 전 대통령이 특급 연예인 정도 되나. 이번 사안을 방송사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지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쯤 되면 뉴스가 아니라 ‘뉴스쇼’다. 언론은 노무현이라는 상품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정치적 혹은 상업적)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비리 의혹 검증과 규명은 뒷전이다.

검찰 수사는 한편의 코미디에 가깝다. 검찰은 수사 진행 상황을 매일 브리핑하고 언론은 이를 경쟁적으로 보도한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발 언론보도’를 확인한 후 자신의 홈페이지와 측근을 통해 반박한다. 지루한 공방이 계속되면서 권력형 비리의혹은 막장드라마로 성격이 바뀐다. 각본 검찰, 연출 언론, 출연 노무현과 참여정부 인사들이다. “매일매일 진행 상황을 브리핑하는 이런 수사 방식은 처음 봤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검찰을 향해 쓴소리를 할 정도다.

사실 검찰을 향한 쓴소리는 언론이 먼저 제기했어야 했다. 피의사실 유포금지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비정상적 검찰 수사에 대해선 한 마디 할 법도 한데, 언론은 눈 딱 감고 막장드라마의 ‘전국방송화’에만 열을 올린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건가. 언론의 관심은 대중적 호기심 언저리에만 머물러 있다.

막장드라마 각본이 탄탄한 것도 아니다. ‘박연차 게이트’는 참여정부 인사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권 인사들의 연루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초대형 사건이다. 하지만 검찰은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인사들은 주연급으로, 이명박 정부 인사들은 조연 아니면 엑스트라로 등장시켰다.

이명박 정부 인사들의 비중 있는 출연을 기대하고 있는 시청자들 입장에선 실망스런 일이지만, 연출을 담당한 언론은 각본 수정을 요구할 생각이 없다. ‘한물 간 줄’ 알았던 노무현과 참여정부 인사들만으로 흥행이 잘되고 있는데, 굳이 ‘출연료 많이 드는’ 이명박 정부 인사들까지 주연급으로 등장시킬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같은 거물급들은 이번 드라마에서 카메오로 출연하는데 그쳤다.

엄밀히 말해 이번 사건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전방위적 로비의혹이 핵심이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인사들을 제외한 나머지 정관계 ‘실세’들의 이름은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졌다. 언론계 역시 박연차 로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수면 위로 떠오르진 않았다.

지나간 권력은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지만 살아있는 권력은 권력일 뿐이다. 박연차 로비 의혹과 관련한 노무현 전 대통령 보도는 언론의 이 같은 속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사진=동아일보 4월27일자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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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

이 글은 <시사IN> 71-72 합본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KBS 휴먼다큐 ‘현장르포 동행’을 위한 변명
[기고] 민임동기 <PD저널> 편집국장

KBS 휴먼다큐 <현장르포 동행>이 논란에 휩싸였다. 1월8일 방송된 ‘신년기획 - 동행1년, 희망을 만난 사람들’ 때문이다. 1년 간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사람들의 현재 모습에서 희망을 전하려 했던 게 프로그램을 기획한 기본 취지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의 선행 장면이 등장하면서 ‘정권 홍보방송’ 아니냐는 비난이 제기됐다.

논란이 된 장면은 최승매씨와 관련된 부분이다. 지난해 12월23일 청와대가 어려운 이웃을 초청한 자리에 최씨가 참석했고, 이명박 대통령의 축사와 “초청받아 영광스럽다”는 최씨의 인터뷰 내용이 이어졌다. 지난해 ‘40대에 낳은 딸을 업은 채 노점상을 하던 최씨의 사연’이 방송된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편지와 김윤옥 여사의 후원이 있었다는 부분도 나왔다. “대통령 할아버지처럼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최씨 큰 딸 이수진양의 발언도 소개됐다.


네티즌들의 반발은 거셌다. ‘5공 시절 땡전뉴스를 보는 것 같다’ ‘PD는 딴나라당으로 동행하라’는 비난이 <동행> 게시판을 가득 메웠다. 언론시민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도 1월12일 발표한 논평에서 “‘비정치적’인 프로그램마저 ‘변질’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동행> 제작진에 우려를 표명했다.

여기서 제작진을 일방적으로 두둔할 생각은 없다. 특히 청와대 행사를 제작진이 직접 찍지 않은 점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하지만 대통령 부부의 선행 장면이 소개됐다는 이유로 <동행>이 ‘정권 홍보방송’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45분 가운데 2∼3분 정도의 분량 때문에 프로그램 전체가 비난받는 게 온당한 일일까. 동의하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의 좋은 점이 조금이라도 나오면 무조건 정권 홍보방송이라는 딱지를 붙이겠다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읽히기 때문이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이들의 선행 장면이 휴먼다큐 프로그램(시사 프로그램이 아니다)에서 잠깐 소개됐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그 부분만을 집중 거론하며 해당 프로그램과 방송사를 가리켜 정권 홍보방송이라고 비난한다. 온당한 비판일까.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동행>에 쏟아지는 세간의 비난에 동의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다.

여기서 필자는 독자들에게 정치적인 시선을 걷어내고 잠깐 제작진 입장이 되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신년기획 - 동행1년, 희망을 만난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프로그램에 소개된 주인공 중 한명이 청와대에 초청이 됐다. 방송 이후 각계의 후원이 잇따랐고, 여기엔 대통령의 편지와 김윤옥 여사의 후원도 있었다. 당신이 제작진이라면 휴먼다큐 프로그램에 이 장면을 담을 것인가 아니면  버릴 것인가. 나라면 전자를 택할 것이다.

사실 <동행>을 둘러싼 논란은 이명박 정부와 이병순 사장 체제의 KBS가 짊어져야 하는 업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거부감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현재 KBS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깊은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불신과 거부감을 이해한다 해도 ‘이명박 대통령 선행 장면=정권 홍보방송’이라는 등식을 합리화 시킬 수는 없다. 그런 식의 ‘정치적 기준’을 모든 프로그램에 적용하기 시작하면 정권 홍보방송 아닌 것이 없게 된다.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이 정부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것과 휴먼 다큐에서 대통령의 선행이 잠깐 소개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정치적 열정을 다소 식히고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사진=KBS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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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

[세상풍경] 민주당 이종걸 의원의 ‘잘못’은 없는 걸까

솔직히 내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급할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이유다.

본론부터 말하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욕설파문과 관련, 민주당 이종걸 의원의 ‘잘못’은 없는 걸까. 있다. 의도가 무엇이든 한 나라의 장관을 향해 “이명박의 휘하이자 졸개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지나치다 못해 인격모독적이다. 유인촌 장관이 아니라 어떤 장관이라도 그냥 넘어가선 안될 문제다. 논리적 비판과 인격모독적 표현은 별개의 문제다.

한나라당 의원이 “노무현의 졸개들”이라고 했다면

유 장관의 해명과 한나라당의 입장을 두둔하려는 건가. 아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관련 글 : 유인촌 욕설 파문, 침묵하는 SBS) 유 장관의 욕설파문은 민주당 이종걸 의원의 거친 표현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지만, 사안의 심각성은 유 장관의 ‘욕설’에서 빚어졌다. ‘죄질’을 따져 봐도 유 장관이 더 무겁다. 공식적인 국정감사장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흥분을 참지 못해 욕설을 한다? 그의 사퇴론이 불거지는 배경이다.

정리하자. 문제는 방식이었다. 만약 유인촌 장관이 자신의 인격이 모독당한 것을 욕설이 아니라 정중하게 유감을 표명하고 정당하게 사과를 요구했다면? 지금과 같은 파문은 불거지지 않았을 게다. 오히려 이종걸 의원에 대한 비난여론이 급증했을 지도 모른다.

강조하고자 하는 건 역지사지가 필요하다는 거다.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 의원이 장관(민주당)을 향해 “노무현의 휘하이자 졸개”라는 표현을 썼다면 그 장관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 것이고, 민주당의 대응은 또 어땠을까. 이건 안 봐도 비디오다. 유념하자. 역지사지!

민주당 이종걸 의원의 ‘잘못’은 지적하지 않는 경향 한겨레

이 대목에서 언론보도는 여러모로 유감이다. 지난 24일과 25일 유 장관 욕설 파문은 빼고 민주당 이종걸 의원 발언만 전한 SBS는 26일이 돼서야 관련 내용을 <8뉴스> 리포트로 전했다. 지난 25일자 서울신문 세계일보 중앙일보도 유 장관의 욕설 파문만 생략한 채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문제는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경우 ‘정반대 양상’을 보였다는 점이다. 특히 27일자에서 관련 내용을 주요하게 보도하고 사설까지 게재한 두 신문은 일제히 유인촌 장관의 책임론에 초점을 맞췄다.

문제 있나.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해 2% 부족하다. 기사와 사설 어디에서건 민주당 이종걸 의원의 발언을 문제삼은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 장관의 행태는 마땅히(!) 비판받고 책임져야 할 심각한 사안이지만, 이 의원의 발언 역시 지나쳤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경향과 한겨레는 “유인촌, 더 이상 문화부 장관이 아니다” “유인촌·신재민의 ‘막가파식’ 문화”를 문제삼았을 뿐, 이 의원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하진 않았다.

유 장관 사퇴론이 불거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법하다. ‘이해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찜찜한 구석은 남는다. ‘정치적 입장’과 ‘정파적 이해’를 고려한 측면이 있었던 건 아닌지.

이런 주장을 하면서도 솔직히 내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급할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이미지 = (위) 경향신문 10월27일자 사설 / (아래) 한겨레 10월27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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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

[핫이슈] 정규방송 ‘중단’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나

결론부터 말하자. 한·러 정상회담 기자회견을 방송사들이 생중계로 방송할 수는 있다. 문제는 이번 정상회담이 가진 뉴스가치다. 정상회담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다. 외교적 현안이나 쟁점 등이 부각되지 않으면 정상회담이 특별히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9일 한·러 정상회담 기자회견을 생중계로 보도한 방송3사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날 KBS MBC SBS는 ‘뉴스특보’ 형식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러시아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저녁 7시대에 생중계로 전했다. 한 방송사도 아니고 지상파 3사가 일제히 ‘똑같은’ 내용을 비슷한 시간대에 내보낸 것이다.

9월29일 방송3사가 생중계한 한러 정상회담 ⓒKBS 화면캡쳐

한·러 정상회담, 정규방송 ‘끊고’ 들어갈 만큼 중대한 사안이었나

방송사들이 정규방송을 잠시 중단하고 한·러 정상회담을 내보낼 만큼 이번 회담이 큰 의미가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를 수 있다. 정상회담의 성과와 의미에 어느 정도 가치와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평가 또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의 내용을 대략 살펴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지난 2004년 9월 21일 노무현 전 대통령과 푸틴 전 러시아대통령의 ‘포괄적 동반자 공동선언’과 비교해 확연히 나아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당시 두 정상의 정상회담을 전한 〈한겨레〉(2004년 9월21일 인터넷판)의 보도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날 두 정상은 공동선언을 통해 포괄적 동반자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 구상을 제시했다 … 두 나라간 가스공급협정 체결을 추진키로 함에 따라 동시베리아산 가스의 한국 도입도 보다 구체화됐다 … 동시베리아 및 극동 지역의 유전 개발 및 송유관 건설은 자원외교 다변화의 진전이란 의미도 있다 … 두 정상이 경의선 및 동해선을 시베리아 철도와 연결하는 ‘철의 실크로드’ 실현을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한 점도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위한 전략구상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세세한 내용을 면밀히 따져봐야 하지만 일단 ‘포괄적 동반자관계’가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된 것이 눈에 띈다. 그리고 오는 2015년부터 러시아 천연가스를 우리나라를 들여오기로 한 것 역시 성과라면 성과다. 물론 이외에도 몇 가지 주목되는 측면이 있다.

결국 관건은 경색된 남북관계의 진전 여부

하지만 지난 2004년 정상회담도 그렇고 이번 정상회담에서 맺은 양국간의 ‘협정’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북핵 문제의 해결이 전제돼야 한다. 러시아의 천연가스가 국내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북한 내 가스배관 설치와 통과가 필수적인데, 지금 북미 관계나 경색된 남북관계 등을 고려할 때 북한이 여기에 선뜻 동의할 지는 미지수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겨레 9월30일자 6면

물론 오늘자(30일) 〈한겨레〉가 지적한 것처럼 “가스 공급국인 러시아가 북한과의 협의에 적극 나서고 있고, 북한으로서도 한 해 1억달러 이상의 배관통과료 수입을 챙길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성사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정부의 해석일 뿐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경색된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북한이 가스배관 통과를 허용할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도 많다”는 반론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29일 MBC가 〈뉴스데스크〉 ‘천연가스 도입’에서 “천연가스 수입량은 연간 750만 톤, 우리나라 총 수요의 20%에 이르는 물량이다. 양국이 4년 전에 협의를 시작해 협정까지 체결했지만 자국 내 상황에 따라 흔들린 측면이 있어 이번에는 실현될 수 있을 지가 주목된다”고 한 것도 이런 점을 고려한 측면이 짙다.

정상회담 생중계로 ‘8시뉴스’ 늦춘 SBS, 정상회담이 ‘다시’ 머리기사

그런 점에서 SBS의 29일 〈8뉴스〉는 유감이다.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정상회담을 ‘뉴스특보’로 내보내면서 〈8뉴스〉의 편성시간대를 뒤로 늦추더니, 〈8뉴스〉의 머리기사를 한·러 정상회담으로 장식했다.

‘멜라민 파문’과 ‘종부세 개편안’ ‘환율 급등에 따른 외환당국 비상’ 등을 주요 소식으로 전한 KBS MBC와는 비교되는 보도태도다. 정상회담을 ‘함께’ 생중계한 KBS와 MBC는 이날 〈뉴스9〉와 〈뉴스데스크〉에서 각각 9번째 리포트로 관련 내용을 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러 정상회담의 뉴스가치는 KBS MBC 두 방송사의 메인뉴스의 배치에서 비교적 정확히 알 수 있는 셈이다.

이 정도 사안을 굳이 생중계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번 한-러 정상회담 생중계 방송을 전파낭비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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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