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1/28 KBS ‘공부의 신’을 위한 변명 by 곰도리
  2. 2010/01/19 ‘공부의 신’ 비판에 동의 못하는 이유 (7) by 곰도리
  3. 2009/08/05 막내린 ‘결못남’, 2% 아쉬운 이유 (10) by 곰도리

* 이 글은 시사IN 124호 실린 글입니다.

KBS 월화드라마 <공부의 신>(연출 유현기, 극본 윤경아)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선 논란이지만 언론에선 주로 비판이 거세다. 비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공부의 신>이 학벌지상주의와 주입식 교육을 설파하는 퇴행적 내용을 담고 있고, 학원재벌 홍보수단으로 활용될 우려가 있으며 일본드라마를 베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비판, 타당할까. 타당하지 않다. <공부의 신>에 염려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공부의 신>에 제기되는 모든 비판을 정당화시키는 건 아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드라마’라고 해서 곧바로 ‘퇴행적 드라마’로 연결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허나 불행하게도(!) 지금 <공부의 신>에 쏟아지는 거센 비난은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가장 황당한 건, 일본드라마를 베꼈다는 비난이다. 리메이크와 베끼기의 차이를 진정 모르는 걸까. <공부의 신>은 일본만화 ‘꼴찌 도쿄대 가다’가 원작이며, 지난 2005년 일본에서 <드래건 자쿠라>라는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베끼기라는 비난이 성립하려면 <공부의 신> 제작진이 이 같은 사실을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게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매번 방송이 될 때마다 <공부의 신>은 ‘꼴찌 도쿄대 가다’가 원작이란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건 부당한 비판이다.

학벌지상주의와 주입식 교육을 강조한다는 비난도 있다. 여기에는 변호사 강석호(김수로)와 수학교사 차기봉(변희봉) 등으로 대변되는 입시위주·주입식 교육 설파 내용이 한 몫 하고 있다. 특히 경쟁 지상주의적인 MB 교육정책과 맞물리면서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하지만 단정은 이르다. 일각의 염려는 이해하지만 <공부의 신>을 이런 염려만으로 ‘단죄’하는 건 온당치 못하다. <공부의 신>은 우리 사회의 ‘꼴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드러내면서 성찰을 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병문고 교사 한수정(배두나)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강석호식 ‘주입식 교육’이 담지 못하는 ‘인간교육’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장치도 심어 놓았다. ‘꼴찌’에 대한 편견이 구조화 돼 있는 사회에서 ‘원칙과 이상’이 아이들을 위한다고 볼 수 있을까. <공부의 신>은 그런 현실적 딜레마에 대해 생각할 여지도 남기고 있다.

특정 학원재벌의 홍보수단으로 활용될 염려도 제기된다. <공부의 신>은 드라마 제작에 대성N스쿨 2억 원 등 6개 업체로부터 모두 11억200만 원의 협찬을 받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 중간에 대성N스쿨의 간접광고가 일부 노출되면서 ‘학원재벌 홍보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타당한 지적이긴 하지만 과한 비판이란 생각이 든다. 협찬사에 대한 드라마 일부 간접광고는 더 이상 낯선 관행이 아니다. 면죄부를 주자는 건 아니지만 윤리적 단죄만으로 비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만약 <공부의 신>이 간접광고를 노골적으로 했다면 이런 비판에 지지를 보내겠지만 <공부의 신>은 통상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찌됐든 KBS노동조합(위원장 강동구)은 <공부의 신> 논란과 관련해 공정방송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공부의 신>이 ‘공정한 방송’을 하고 있는 지 노사 테이블 위에까지 올라가게 된 셈이다. 노조 본연의 역할에 속하기 때문에 이해는 하지만 한편으론 염려도 된다. 그동안 KBS뉴스와 프로그램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할 때 KBS노조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공부의 신>에 대한 KBS노조의 ‘공세적 비판’은 이례적이다. 혹 뉴스나 시사교양보다 드라마가 ‘만만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노파심에서 하는 얘기다.

<사진 설명> KBS 월화드라마 <공부의 신>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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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

[TV에세이] ‘리메이크’와 ‘베끼기’가 같은가

KBS 〈공부의 신〉(연출 유현기, 극본 윤경아)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사교육과 물질주의가 확산되는 내용이 문제라고 하고, 일본드라마 베끼는 KBS가 공영방송이 맞냐는 비난도 제기된다. 〈공부의 신〉과 같은 일본 리메이크작이 각광을 받는 추세가 이어질 경우 한국 드라마 기반이 흔들릴 거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KBS노동조합은 〈공부의 신〉 논란 등과 관련해 공정방송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하는 등 공식적으로 문제 삼을 태세다.

결론부터 말하자. 이 같은 비판,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이해하는 부분이 있고,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점도 있지만 〈공부의 신〉에 쏟아지고 있는 비판은 성급하다. 우려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런 요인이 〈공부의 신〉에 가해지는 모든 비판을 합리화시킬 수는 없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과 ‘욕먹어도 싸다’는 식의 비난은 구분되어야 한다. 지금은 그런 구분이 없다.


‘리메이크’와 ‘베끼기’가 같은가 … 용어사용에 신중해야

경향신문은 지난 18일 〈공부의 신〉과 관련한 논란을 다루면서 제목을 ‘일본드라마 베끼는 KBS 공영방송 맞나’로 뽑았다. 이 제목 타당한가. 타당하지 않다. 리메이크와 베끼기는 엄연히 다른 것인데, 경향은 〈공부의 신〉을 제목에서 베끼기, 즉 표절로 단정했다. 경향신문이 이걸 몰랐을까. 그럴 리가 없다. 기사 본문에서 경향이 〈공부의 신〉을 베끼기로 단정하지 않고 리메이크로 정확히 표현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만약 경향이 일부 우려되는 내용을 바탕으로 문제를 제기했다면 충분히 동의할 수 있지만, 이건 아니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경향이 제목에서 ‘무리수’를 둔 이유가 뭘까. 극중 강석호(김수로) 변호사를 통해 뱉어지는 대사 가운데 ‘입시위주 공부’를 강조하는 부분에 지나치게 방점을 찍었기 때문인가. 그래서 〈공부의 신〉 기획의도가 주입식 교육과 입시위주를 설파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하지만 〈공부의 신〉을 학벌지상주의와 주입식 교육을 설파하는 퇴행적 드라마로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런 우려가 없는 건 아니지만  〈공부의 신〉은 그런 점 외에 우리 사회의 ‘꼴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드러냄으로써 성찰을 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또 교육에 있어 ‘현실과 원칙’ 사이의 딜레마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남기고 있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 ‘공부의 신’ 돌풍에는 이유가 있다)

KBS노조의 비판은 과연 온당한가

KBS노동조합의 비판도 동의하기가 어렵다. 최성원 KBS노조 공정방송실장은 경향신문,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드라마 <드래곤 자쿠라>를 그대로 카피한 것 뿐만 아니라 일본 교육사회의 문제점까지도 그대로 우리 교육현실로 대치한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다. ‘공영방송(KBS)은 한국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방송법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 실장은 또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라는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교육을 통해 다양성과 창의성이라는 것을 몸에 익히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이 드라마에서는 천하대(서울대)를 가야 사회를 지배할 수 있다는 기득권 이데올로기를 설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견 타당한 지적이긴 하다. 하지만 그동안 ‘관변 논란’을 빚은 KBS뉴스와 프로그램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할 때 KBS노조가 보인 ‘소극적인 태도’를 감안하면 〈공부의 신〉에 대한 ‘공격적 비판’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혹 뉴스나 시사교양보다 드라마가 ‘만만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닌지 자문해 보길 권하고 싶다.

또 하나. 이제 5회가 방영된 드라마에 대해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평가하는 건 아닐까. 예전 글에서도 한번 언급했지만, 변호사 강석호(김수로) 못지 않게 병문고 한수정(배두나) 선생은 〈공부의 신〉에서 상당히 중요한 캐릭터다. 강석호 변호사와 한수정 교사는 ‘꼴통인생들’을 방관하고 있는 기성세대의 범주에서 일정하게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진정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어떤 것인지’를 두고 대립한다. 강석호가 명문 천하대 입학을 통한 전통 입시위주의 방식을 선호한다면, 한수정은 이른바 ‘참교육’의 현장실천을 가치관으로 가지고 있다. 거칠게 말해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대립인 셈이다.

캐릭터와 드라마적 장치는 과정일 뿐 … 시간을 갖고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18일 방송에서 약간 언급이 됐지만, 강석호와 한수정은 배척이 아니라 경쟁과 상호협력을 통해 ‘꼴찌들’에 대한 교육을 이끌어나갈 가능성이 높다. ‘강석호식 주입식 교육’은 ‘한수정식 인간교육’과 병행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는 강석호 변호사의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어도 새겨들을 부분은 있다고 본다.

둘 중 어떤 방식이 옳은지 그리고 학생들을 위하는 것인지 판단하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니다. 예전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기존 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체제에서 ‘성공’하는 방식을 고집하는 강석호의 주입식 교육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잘난 인간들’의 ‘출세’가 아니라 ‘밑바닥 인생’들의 ‘사람 만들기’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의 교육방식이 옳은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선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정리하자. 〈공부의 신〉은 아직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은 상태다. ‘천하대 특별반’ 아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 지 그리고 어떤 결론을 내릴 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는 상황. MB 교육정책과 묘하게 맞물리면서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는 점도 이해하지만 캐릭터와 드라마적 장치는 과정일 뿐 아직 〈공부의 신〉은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강석호식 교육법을 ‘꼴찌들’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지 여부는 시간을 갖고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공부의 신〉은 생뚱 맞은 대사로 ‘시위대를 부당하게 묘사한’ 〈수상한 삼형제〉와는 비판의 맥락을 달리해야 한다. 지금 〈공부의 신〉에 대한 비판은 부당한 측면이 많다.

사진(순서대로) <공부의 신> ⓒKBS, 경향신문 1월18일자 22면, <공부의 신> 제작발표회 현장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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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

[TV에세이] 결혼과 출산 거부가 책임회피일까
 
KBS 월화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결못남)가 막을 내렸다. MBC 〈선덕여왕〉 의 여파로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결못남〉은 나름 괜찮은 드라마였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2% 아쉽다. ‘결못남’ 조재희 소장이 ‘결혼’을 선택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다소 과격한 표현을 허락한다면, 제작진은 주인공 조재희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결못남’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에 굴복시킨(?) 셈이다.

〈씨네21〉김은형 기자가 언급한 것처럼 “‘결못남’의 이기성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건 결혼, 출산 등의 책임 회피다.” 그리고 이 부분은 〈결못남〉에서 조재희 소장을 둘러싼 인물들에 의해 끊임 없이 재생산 되는 복음이자 이데올로기였다. ‘성인 남녀는 적정 나이가 되면 무조건 결혼을 해야한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 삶의 문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것만이 ‘정상적’이고 행복한 삶일까


때문에 〈결못남〉의 결론은 아쉽다. ‘결못남’들이 비혼을 고민하는 데에는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고 사회·경제적인 요인이 ‘결못남’을 만드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결못남’들이 자신의 삶만 생각하는 철없는 이기주의자이거나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비정상적인 사람에 초점이 맞춰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초식남’이 증가하는 이유가 매스컴의 관심을 받는 요즘 트렌드를 감안하면 〈결못남〉의 시각은 여전히 ‘계몽적’인 듯하다. 연애나 결혼에 무관심하고 자신의 일과 자기계발에 대한 욕구가 강한 ‘초식남’과 ‘결못남’은 전혀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삶을 인정하지 않은 채 오로지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삶이 정상적이라며 강요하는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게 아닐까. 특히 결혼한 가정이 정상적·모범적 가정으로 인식되는 한국 사회에서 ‘비혼자’가 겪어야 하는 일상적 스트레스는 거의 폭력 수준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의 명절을 생각해보면 된다.

“책임감에 대해서 통감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고 자기가 진짜 짊어질 수 있는 책임만 지는”(김은형) 삶이 왜 이기적이라고 비난받아야 하는 걸까. 〈결못남〉은 주인공 조재희를 통해 이 부분을 좀더 심도 있게 드러냈어야 했지만 제작진은 다른 선택을 한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원작의 한국적 해석, 불가능했던 걸까

〈결못남〉의 또 다른 아쉬운 점은 원작의 창조적 해석에 관한 부분이다. 물론 이 부분은 제작진이 전적으로 판단할 문제다. 동명의 일본 원작드라마를 리메이크한 〈결못남〉은 대체로 원작에 충실한 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리메이크가 원작에 충실하지 않고 어설프게 독자노선을 걸을 때 재미와 감동은 반감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판 〈결못남〉은 적어도 ‘어설픈 해석’은 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저출산율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88만원 세대’로 상징되는 청년실업 문제가 극대화 되고 있는 시대적 상황을 〈결못남〉이 조금이나마 반영하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쉽다. 드라마에서처럼 자신의 삶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게 두려운(?) ‘결못남’도 있지만, 사회·경제적 환경 때문에 ‘결못남’ ‘비혼남’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 아닌가. 〈결못남〉이 이런 유형의 캐릭터를 만들어 내고 이들 사이의 소통에 좀더 치중했다면? 일본 정서가 강한 원작에서 벗어나 한국적 ‘결못남’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결못남〉에서는 이런 사회적 의미보다는 조재희(지진희)와 장문정(엄정화), 정유진(김소은 분)으로 이어지는 삼각관계가 지나치게 부각됐다. 물론 원작에도 이런 삼각관계가 설정돼 있지만 〈결못남〉은 캐릭터들 사이의 로맨틱에 더 초점을 맞췄다. 〈데일리안〉 이준목 기자는 이 부분을 언급하면서 “(원작에는) 밀고 당기는 연애담 자체에 치중하기보다는 각기 다른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던 독신남녀들이 주변과의 교류를 통해 조금씩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가는 ‘소통’에 더 주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원칙주의자’ 조재희 캐릭터가 갖는 의미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것은 주인공 조재희의 ‘지독한 개인주의’가 갖는 의미가 간과된 점이었다. 접대와 회식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술자리 문화가 일상 생활에서 최소한의 개인적 여유와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조재희식 개인주의’는 나름 유의미성이 충분히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런 유의미성은 그의 괴팍한(?) 성격에 가려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다.

개인에 대한 평가가 실력이나 진정성보다 대안관계나 인간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한국적 현실에서 조재희라는 캐릭터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독특한 성격 때문에 재수가 없긴 해도, 주인공 조재희 소장은 실력을 바탕으로 원칙을 지키려는 원칙주의자였다. 우리 주변에 이런 원칙주의자가 얼마나 있을까. 원칙이 ‘사회적 관계망’ 속에 의미를 잃어가는 요즘, 이들을 발견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와도 같은 일 아닐까.

모두가 조재희가 될 필요는 없지만 조재희 같은 캐릭터가 우리 사회에 소수나마 존재하는 건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라도 권장해야 할 일인 것 같다. 그래서일까. 벌써부터 조재희가 그리워진다. 

사진=막내린 KBS <결혼 못하는 남자>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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