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억양’이 듣기 싫다는 사람들
[일상나누기] SBS ‘이숙영의 파워FM’ 출연기
1.
지난 한 주 이른바 ‘땜빵’ 출연을 했습니다. SBS <이숙영의 파워FM>에서 조간브리핑을 진행하는 시사평론가 김용민씨가 휴가를 가면서 제게 그 코너를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방송을 잘하진 못합니다만, 예전 CBS에서 조간브리핑을 몇 년 한 적이 있었거든요. 아마 김용민씨는 그런 ‘경험’을 고려해서 제게 부탁을 한 것 같았습니다.
사실 조간브리핑이라고 해서 다 비슷한 건 아닙니다. 방송사마다 그리고 프로그램마다 차별성이 있습니다. 제가 CBS에서 조간브리핑을 진행했던 ‘색깔’과 김용민씨가 현재 SBS에서 하고 있는 조간브리핑은, 조간브리핑이라는 형식만 비슷했지 많이 달랐습니다. 게다가 제가 했던 방송은 시사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던 반면 <이숙영의 파워FM>은 음악을 위주로 하는 방송이었죠. 주 청취자가 훨씬 젊다는 얘기입니다.
아무튼 일주일 동안 ‘대타’를 별 탈 없이 마쳤고 지금은 김용민 씨가 예전처럼 조간브리핑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역시 김용민 씨가 저보다는 훨씬 방송을 잘하더군요.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2.
제게는 이번 방송출연이 색다른 경험이었는데, 한 가지는 … 뭐라 그럴까, 좀 씁쓸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을 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억양을 문제 삼은 일부 청취자들의 반응을 말하는 것인데요, 그런 반응을 보면서 뭐라 그럴까, 서울 중심주의의 완고한 벽을 좀 느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좀 그랬습니다.
저는 고향이 부산입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고향이 충청도라 어렸을 때부터 딱히 부산 사투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충청도 말도 아닌, 약간 이상한 억양으로 말을 하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또래 친구들과 부산 사투리를 쓰다가 집에 오면 부모님이 쓰시는 억양에 ‘영향’을 받곤 했거든요. 부모님은 부산 사투리를 쓰지 않으셨습니다. ^^. 하지만 저의 경우 아무래도 경상도 억양이 많이 남아있죠.
사실 이런 환경이 제가 특정지역에 소속감(?)을 가지지 않게 된 배경이 됐는지도 모릅니다. 전 부산의 또래 친구들을 만날 때 일부를 제외하곤 사실 벽을 많이 느낍니다. 흔히 말하는 ‘경상도 사나이’와 거리가 있는 데다, 그들의 ‘부산 지역정서’와는 좀처럼 혼연일체가 되지를 못합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럼 충청도는 괜찮냐. 아닙니다. 약간 비슷한 면이 있긴 한데, 많이 다릅니다. 무엇보다 충청도에 계신 친척이나 지인들은 저를 경상도 사람으로 생각하지, 절대 같은 ‘동향’ ‘지역민’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한 마디로 말하면 무소속인 셈입니다. 실제로도 저는 딱히 고향이라 할 만한 지역이 없습니다. 부산에 오랜만에 내려가면 반갑기는 한데, 여기가 내 고향이다 이런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고향인 충청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겹고 좋긴 한데, 어렸을 때의 추억이나 기억 이런 게 없으니 그냥 부모님의 고향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3.
고향 얘기를 잔뜩 늘어놓은 이유는? 저의 이상한(?) 억양에 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이번에 <이숙영의 파워FM>에서 ‘대타’ 방송을 할 때, 저의 독특한 억양이 잠깐 화제(?)가 됐습니다. 뭐 한 두 번 겪은 일도 아니고, 특히 진행을 맡고 있는 이숙영씨가 방송에서 물어보셔서 제 억양이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재미있게 웃으시고 넘어가더군요. 저도 그렇게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일부 청취자들의 반응은 좀 달랐습니다. 사실 크게 개의치 않을 정도의 반응이었지만, 제가 볼 땐 뭐라 그럴까, 저처럼 이상한 억양을 쓰는 사람이 어떻게 방송을 할 수 있냐, 참 거슬리고 짱난다, 이런 식의 ‘말씀’을 하셔서,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방송에 나오는 사람은 모두 표준어를 써야 하는 걸까요. 그럼 서울지역에서 자고 나란 사람이 아니면 방송에 출연하긴 힘들겠군요. 그도 아니면 의식적으로 서울말을 배우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해서 방송에 나오든가. ^^ 사실 서울도 좀 큰 지역에 불과할 뿐인데 ….
차라리 저를 향해 왜 괜히 서울억양 쓰려고 노력하느냐, 그러지 말고 편한 대로 해라, 이렇게 말한 청취자가 있었다면 무척 반가웠을 겁니다. 그리곤 진행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마 설명을 해드렸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내가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좀 억양이 이상하게 됐다. 이해해 달라 이러면서 말이죠. ^^.
4.
사실 저처럼 지역에서 올라온 서울시민들은 모두 한번쯤 의식적으로 서울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표준어를 구사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억양도 어설프게 따라하기도 하죠. 그렇게 하면 서울사람이 되는 줄 알면서 말이죠.
그땐 몰랐지만 그런 행위들엔 자신이 성장하고 자란 지역을 비하하는 태도가 깔려 있습니다. 서울은 주류고 지방은 비주류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죠.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서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런 인식에 저항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끔씩 지역출신 서울시민들이 지역민들을 폄하하고 비난하는데 앞장서는 모습을 보곤 하는데 이럴 땐 참, 난감하죠. 주류가 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을 벌이는 것까진 좋은데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지역민들의 비애인 셈이죠.
하지만 그런 지역민들의 비애를 서울 사람들은 알지를 못합니다. 비서울 지역을 모두 ‘시골’이라 지칭하는 사람들을 볼 땐 가슴이 좀 답답해져 옵니다. 그런 사람들에겐 대한민국이 서울과 시골, 이렇게 두 개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죠. 억양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지역마다 사투리와 억양이 다른데 오직 서울을 기준으로, 다른 어투와 억양은 문제가 있다는 식의 발언은 ‘비서울 사람들’에겐 폭력에 가깝습니다.
무엇보다 지역 사투리는 숨겨야 할 어떤 것이 아닙니다. 비록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비롯한 모든 영역이 서울로 집중되면서 ‘먹고 살기’ 위해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것이 서울중심주의를 합리화해 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이런 일극 구조가 문제인 거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하는 거죠.
그래서 사투리 듣기 싫다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싫어도 그냥 좀 들으세요. 그 정도 참을성도 없나요? 사투리는 혐오스러운 게 아닙니다. 솔직히 서울 말이 뭐 그리 대단한가요. 별 거 아닌 거 가지고 너무 유세떨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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