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주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4/20 박지성과 김연아 그리고 고려대 by 곰도리
  2. 2009/01/12 독설닷컴 고재열을 위한 변명 (5) by 곰도리
  3. 2008/11/13 강마에와 한국의 연고주의 (9) by 곰도리

[TV에세이] 한국에서의 학벌과 연고주의
 
지금 박지성이 고려대에 진학하려 한다면? 가정이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오히려 고려대에서 박지성을 ‘모셔오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의 김연아 선수처럼. 하지만 10년 전 박지성은 고려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 고려대는 물론이고 다른 대학들과 국내프로팀들이 박지성을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지성이 실력이 없었던 걸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지난 19일 방송된 MBC 〈스페셜〉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연출 김현기)에서 박지성의 ‘예전 감독들’은 그의 영리한 플레이와 탁월한 전술능력 등 축구선수로서 그가 가지고 있는 기질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당시 박지성을 주목한 국내 지도자는 거의 없었다.

   

 
▲ 지난 19일 방송된 MBC 〈스페셜〉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연출 김현기)

박지성의 ‘실력’과 한국의 ‘학벌-연고주의’

박지성은 당시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난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만큼의 선수가 (나는) 아니구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박지성은 ‘겸손’의 의미로 그렇게 얘길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실력과 우리 사회에서 인정하는 실력이란 의미가 서로 달랐기 때문에 그런 괴리가 발생한 게 아니었을까. 그것은 박지성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이학종 수원공고 감독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만약 한국 사람이 감독이 됐다면 지성이 같은 선수는 발굴이 안됐을 수도 있어요. 인맥이라든가. 우리는 그런 게 있잖아요. 선후배 관계도 있고.”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에서 박지성의 모습을 보며 히딩크를 떠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박지성은 올림픽대표팀 부터 월드컵대표팀 발탁에 이르기까지 항상 ‘탈락대상 1순위’로 거론돼 왔다. 기억하는가. 월드컵대표팀 최종 선발 3개월 전부터 언론은 수시로 박지성을 탈락 1순위로 거론했고, 발표 며칠 전에는 이를 아예 ‘기정사실화’ 하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만약 히딩크 감독님이 아닌 다른 감독님이었다면 저는 월드컵을 뛸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박지성 선수의 발언은 당시의 사회분위기가 대략 어떠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자기반성 없는 한국 언론 … 제2의 박지성을 ‘죽일’ 수도 있다

 

   
▲ 지난 19일 방송된 MBC 〈스페셜〉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연출 김현기)

사실 히딩크가 축구를 통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축구 이상의 것이었다. 당시 한국 축구계에 널리 퍼져 있던 연고와 인맥 학벌주의 - 히딩크는 월드컵 대표팀 선발을 통해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했고 그 통렬한 비판의 핵심에 박지성이 있었다. 박지성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 역시 축구 이상이었다.

물론 지난 2002년 이후 우리 사회가 이 메시지를 얼마나 의미 있게 현실화 시켰는지는 의문이다. 한국 축구계에 널리 퍼져 있던 연고와 인맥 학벌주의는 사라졌을까. 단정은 피해야겠지만 ‘그렇다’라는 답을 하기엔 미온적인 부분이 많다. 특히 당시 박지성을 ‘탈락 1순위’로 지목했던 언론은 아무런 자기반성 없이 지금도 한국 축구에 대한 논평에 바쁘다. 하지만 이들은 유소년 축구나 ‘제2의 박지성’을 발굴하는 데는 인색하다. 그들은 축구가 아니라 ‘스타’를 원했던 게 아닐까. 지금의 김연아 선수처럼 말이다.

솔직히 언론만 탓할 일은 아니다. 스타에 대한 쏠림 현상은 우리 사회의 익숙한 풍경이다. 그건 나를 비롯한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도 ‘스타에 대한 쏠림 현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다. 언론이 한국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에 소홀한 건 비판받아야 하지만 그것의 모든 책임을 언론에 떠미는 건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는 지난 2002년 히딩크가 우리 사회에 던졌던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을 때 서형욱 축구 해설위원은 당시 국내 축구계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국내 언론에서조차도 박지성 선수가 히딩크에게 발탁되기 전까지 크게 인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로선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충격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의 한국 축구계가 과거에 비해 얼마나 달라졌는가 하는 점이다.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는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은 당신 자신과 우리 사회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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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공공적 연고주의’ 운동을 제안하며

1.

고재열은 <PD저널> 필진이다. 난 <PD저널> 편집국장으로 있다. 고재열 기자를 필진으로 ‘모신 건’ 글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기자로서의 그의 진정성도 높이 평가한다. <시사저널> 파업과 이후 보여준 그의 행보에서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고재열 기자는 그렇다.

고재열 기자의 ‘고대 학벌주의’ 의혹(?)을 제기한 원성윤 기자는 <PD저널> 기자다. 나의 후배다. 혈연․지연․학연으로 얽힌 적은 없지만 내가 ‘아끼는’ 언론계 후배다. 기자 경력이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가 지닌 문제의식과 감각은 높이 평가한다.

2.

‘그런’ 고 기자와 원 기자가 학벌주의를 가지고 논쟁(?)이 붙었다. 한 쪽은 문제를 제기하는 쪽이고 다른 한쪽은 방어하는 쪽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묘한 느낌이 든다. 적어도 내가 ‘아는’ 두 사람은 학벌주의와 모두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글을 모두 읽어봤다. 고재열 기자가 지금까지 썼던 글의 흔적들 가운데 학벌주의로 오해할 만한 부분이 있는가 - 이걸 두고 ‘있다’고 주장하는 쪽과 ‘억울하다’는 당사자의 항변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그게 핵심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이다.

문제는 학벌주의 즉 연고주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 이 문제인 것 같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학벌주의는 주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마음 속으론 학벌주의를 옹호하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공공적 장소에서까지 학벌주의를 옹호하진 않는다. 그건 만인으로부터 손가락 받을 짓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게 연고주의고 학벌주의지만 적어도 사람들은 공적인 영역에서 이 부분을 옹호하고 나서진 않는다. 학벌주의는 사적인 관계 속에서 은폐되기 쉽다. 학벌주의와 연고주의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3.

다시 고재열 기자 문제로 돌아가 보자. YTN 조승호 기자 후원모임을 결성한 고재열 기자의 ‘행위’를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학벌주의로 한 단면으로 볼 수 있을까. ‘독설닷컴’에서 보았던 고대 선후배들과의 사진과 ‘부분적인’ 글 등을 고대 학벌주의의 위험신호로 볼 수 있을까.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서러움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불편하게 느꼈을 법도 하다. 그건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술자리를 비롯한 사적 모임이든 공식적인 모임이든 출신대학들끼리 뭉치는 결속력은 서울 소재 대학 출신들이 강하다. 거기서 비롯되는 ‘챙겨주기’ 문화의 정도가 강한 곳 역시 서울 소재 대학 출신들이다. 특히 고대가 좀 유별나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학벌주의의 폐단에 고재열 기자의 ‘사례’가 포함될 수 있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평소 학벌주의 폐단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보기엔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이지만, 학벌주의 문제를 그런 식으로 확대해석하면 사실 해결이 어렵다. 툭 까놓고 말해 나 자신을 비롯해 우리 모두 가까운 사람들의 면면을 한번 살펴보자. 많은 경우 지연 혈연 학연으로 얽혀 있다. 이 말은 학연이나 지연, 연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말이다.

4.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실력이나 능력에 상관없이 출신 지역이나 출신 학교끼리 뭉쳐서 ‘잘살아보자’는 끼리끼리 문화이지, 일상적 삶에서의 사적 관계망까지 포괄하는 건 아니다. 그런 식이면 동문회와 동창회, 향우회 등과 같은 모임 자체를 없애야 한다. 뜻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어떤 일을 벌이고자 할 때도 같은 학교와 같은 지역 출신들은 일단 배제를 해야 하는 상황도 나온다. 이게 가능할까. 현실적으로 어렵다.

자신의 사적 네트워크를 돌이켜보면 같은 고등학교나 같은 대학 동문들이 많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다른 조건보다 같은 학교 출신이면서 ‘본인과 코드가 맞는 사람’이면 더 친밀감을 느낀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그걸 가리켜 누군가가 연고주의의 폐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을 한다면 동의할까.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의 기득권 사수를 위한 엘리트들의 학벌주의 연고주의는 비판해야 하지만 우리네 일상적 삶에서의 친목이나 우정까지 대상에 포함시키는 건 지나치다.

5.

질문 하나. 연고주의는 모두 나쁜 것일까.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어차피 연고주의는 우리 삶의 법칙이 된 지 오래고 누구도 거기서 자유롭지 않다. 오죽하면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가 ‘공공적 연고주의’를 들고 나왔겠는가. 

어차피 우리가 연고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연고주의에 공공적 성격을 가미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같은 동문끼리 모여서 출세를 위해 패거리주의에 집착하지 않고, 언론개혁에 동참한다든가 사회봉사에 참여한다면 그 자체로 의의가 있는 게 아닐까. 물론 우려되는 점과 한계도 분명히 있다. 지방대 출신이 뭉치는 것과 서울대-연대-고대 출신들 특히 언론인들이 ‘뭉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한국 사회 기득권 세력에 다가갈 수 있는 확률이 후자가 더 높기 때문이다. 원성윤 기자의 고재열 기자에 대한 ‘고려대 뭉치기’ 우려 역시 이런 부분들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우려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해도 고재열 기자식의 ‘연고주의․학벌주의’라면 난 지지해줄 의사가 충분히 있다. 고대출신 언론인들이 모여 자기네들 출세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좋은 일’ 하겠다는 걸 비판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자기들끼리만 하겠다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다만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정도는 고재열 기자도 알아줬으면 한다. 그게 우리네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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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세이]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한 단상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과 평가가 있다. 클래식이라는 소재에 주목해 전문직 드라마에 비중을 두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보통 사람들의 꿈과 희망에 방점을 찍은 사람도 있다. 어느 쪽에 비중과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이 드라마에 대한 평가도 나뉜다.

최근 발행된 <한겨레21>(735호)의 홍진아·홍자람 작가 인터뷰는 그런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두 작가는 “‘베토벤 바이러스’는 전문직 드라마가 아니다”면서 “이 드라마를 하는 이유는 ‘클래식’이란 소재를 통해 ‘인간의 보편성’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작가가 어떤 점을 지향하고자 했는지는 어느 정도 ‘밝혀진’ 셈이다. 



강마에의 ‘개인주의’와 한국의 연고주의

많은 언론이 ‘강마에 신드롬’을 주목하면서 주로 독설과 그의 독특한 리더십에 초점을 맞췄지만 개인적으로는 강마에의 ‘개인주의’와 한국의 연고주의에 더 관심이 갔다.

사실 강마에라는 캐릭터를 ‘개인주의’로 함축시키는 데 따른 위험성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강마에의 클래식 연주와 오케스트라 선발이 철저히 실력을 위주로 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한국의 연고주의 문화와 극명히 대비된다.

연고주의 - 한국 사회에서 이 말은 실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분야에서든 단순히(!) 실력과 재능 하나만으로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혈연은 기본이고 지연과 학연 등을 동반하지 않으면 제 아무리 실력과 재능이 뛰어난 지휘자라 해도 성공하기 힘든 곳 - 그곳이 바로 한국이다.

강마에가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서 있는 위치는 그래서 흥미롭다. 그는 클래식이라는 ‘비대중적인’ 분야에서 학연과 지연·혈연에 얽매이지 않은 채 오직 실력 하나로만 승부한다. 온갖 관계망 속에 얽힌 엘리트 세계에서 이런 ‘실력주의’가 통할 수 있을까. 실력은 인정받으면서도 영원한 에이 마이너일 수밖에 없는 강마에를 끝까지 주목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모두들 아는 것처럼 강마에는 독특하다. 매우 독특하다.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친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지만 요즘으로 따지면 ‘상위 계층’에 속하는 신분을 가지고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자기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그런 인물이다. ‘그 정도 급’에서는 통상 연고와 조직을 바탕으로 ‘유유상종’ 문화에 적응됐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는 무엇보다 실력을 우선함으로써 고립을 자초했다. 줄리어드 음대를 나온 ‘학벌’보다 진짜 실력이 있는 지를 기준으로 삼는, 현실 세계에서는 참 발견하기 어려운 ‘엘리트’ 유형이다. 그러니 고졸 학력의 강건우를 제자로 삼았겠지만.

강마에 독설’에 대한 대중의 열광과 집단주의



많은 사람들이 강마에의 독설에 열광했다. 하지만 그 열광이 가능했던 건 현실은 정반대였기 때문 아니었을까. 강마에가 자신의 제자인 강건우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지휘자 정명환에게 보내면서 한 얘기는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인 세계가 어떤 지를 잘 보여준다. ‘제 아무리 뛰어난 강마에지만’ 제자의 성공을 위해서는 연고를 바탕으로 한 문화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정확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마치 영원한 에이 마이너스인 자신의 운명을 제자에게 물려주기 싫은 것처럼.

각종 네트워크 속에서 먹고 살기 위해 ‘여러 가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현실 자체가 사실 버겁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현실적인 대중을 <베토벤 바이러스>에 열광시키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점점 희망을 가질 수 없고 꿈조차도 꾸기 어려운 현실에서 강마에라는 캐릭터 자체가 ‘꿈과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는 말이다.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단원들’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면서 말이다.

강마에의 독설에 대중들이 매력을 느꼈던 건 그것이 독설이라서가 아니라 정확히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공감이 간다. 적어도 우리 사회가 지연과 혈연․학연 등 집단적 연고문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강마에처럼 실력과 재능을 우선하는 그런 문화와 풍토를 가졌다면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는 탄생하기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드라마 종영과 함께 강마에를 ‘그리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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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