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관 사퇴 최대수혜자는 조선일보
이 글은 <시사IN> 97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천성관 사퇴는 언론계에 몇 가지 시사점을 던졌다. 특히 MB정부에서 ‘언론판세’ 지형이 어떻게 되는지를 정확히 보여줬다. 천성관 사퇴가 한국 언론계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 셈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흥미롭다.
초기부터 천 내정자 관련 의혹을 꾸준히 제기하고 보도한 곳은 경향과 한겨레, CBS <노컷뉴스>였다. 공직자 검증에 대한 한국 언론의 체면을 이들이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가장 체면을 구긴 쪽은 어딜까. 동아와 중앙일보다. 두 신문은 천성관 내정자와 관련된 의혹이 불거진 이후 국회 인사청문회가 진행될 때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이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지만 의혹보다 여야공방에 방점을 찍었다. 이들은 ‘천성관 구하기’에 온 몸을 던졌지만 정작 천 내정자 본인의 사퇴로 빛이 바랬다.
조선일보는 ‘치고 빠지기’의 진수를 보여줬다. 조선일보도 초반에는 동아․중앙처럼 천 내정자와 관련한 의혹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여권 내부의 심상치 않은 기류를 읽으면서 태도를 180도 바꿨다. 동아와 중앙이 인사청문회가 끝난 후에도 계속 ‘천성관 구하기’에 전력하고 있을 때 조선은 과감히 기사와 칼럼, 사설을 통해 ‘천성관 죽이기’에 나섰다. 역시 조선의 동물적 감각은 놀랍다. 조선의 완벽한 판정승이었다. 천성관 사퇴의 최대 수혜자가 조선일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구긴 체면’을 보상받기 위해서였을까. 천 내정자 사퇴 이후 동아와 중앙은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에 메스를 들이댔다. 지난달 말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의혹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자신의 ‘검증능력’에 대한 성찰은 뒷전이었다. 그러다보니 무리수까지 등장했다. ‘천성관 의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의혹이 닮은 꼴’(중앙일보 7월16일)이라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두 사건이 ‘닮은 꼴’이라는 중앙의 보도 자체도 문제가 많지만, 백번을 양보해 ‘닮은 꼴’이라는 가정이 성립될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천 내정자가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앙일보의 자충수. 언론계의 전반적인 평가다.
KBS와 SBS 역시 ‘천성관 구하기’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천 내정자 고가아파트 매입 의혹이 불거진 것은 6월28일부터지만 이들 방송사는 이 사안을 철저히 외면했다. 제기된 의혹을 제대로 다루지도 않았고, 파헤치려는 노력도 없었다. 이런 ‘방관․소극 기조’는 천 내정자가 사퇴의사를 밝힐 때까지 계속됐다. 이후 패턴은? 동아․중앙과 거의 일치한다.
안타까운 건, KBS였다. 참여정부 시절 공직자에 대한 검증 보도에 있어 상당한 성과를 올린 KBS 탐사보도팀의 부재가 주는 울림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당시 탐사보도팀은 대한민국 공직자들의 재테크 실력과 투기에 대한 관심도가 어느 정도인지 심층적인 검증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하지만 이런 경험과 노하우가 이번에는 전혀 발휘되지 못했다.
가장 심각한 건 이번 파문을 계기로 ‘조중동+KBS․SBS’의 논조공동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조선일보 헤게모니가 더 강화되고 있는 현상은 걱정스럽다. 실제 언론계 일각에서는 조선일보가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다른 언론이 영향을 받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온다. 천 내정자 사퇴 파문은 한국 저널리즘의 위기 징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7월14일자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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