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시사IN 94호(2009년 7/4)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명박 정권은 엄기영 MBC 사장까지 ‘저항의 상징’으로 만들 태세다. 엄 사장은 자신의 퇴진을 거론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을 향해 “어처구니가 없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검찰의 <PD수첩> 수사에 대해서도 “정치적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미디어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수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강한 어조의 비판이다.

MBC 일부 구성원들은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그럴 만도 하다. 지난해 <PD수첩> 광우병 방송 이후 사과방송을 결정하고, 당시 시사교양국장과 제작진을 문책한 당사자가 엄 사장이었다. 신경민 전 앵커를 교체할 때도 정권에 굴복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랬던’ 엄 사장이 이명박 정권과 정면승부 할 태세를 보인다? 일부 구성원들의 반신반의 하는 태도는 이런 사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동안 엄기영 사장에 대한 MB정부의 판단을 두고 언론계에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임기가 남은 엄 사장을 무리하게 교체하기보다 압박 등을 통해 ‘친여권화’ 시킬 거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었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MBC 경영진의 정권에 대한 굴복적인 조치들은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됐다.

하지만 최근 기류가 바뀌고 있다. 오는 8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이 개편된 이후 바로 교체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심지어 방문진 개편 이전 강제사퇴설까지 나온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엄 사장 사퇴 발언은 이런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MBC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압박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고 단호하다. 현 경영진은 더 이상 안 된다는 판단이 확고히 선 것 같다”고 말했다. 엄기영 체제의 MBC에 대한 청와대의 판단이 끝났다는 얘기다.

청와대가 예상보다 빠르게 MBC에 대한 전면전을 감행한 이유가 뭘까. 의도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미디어법을 6월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면 MBC에 대한 ‘기선제압’은 필수적이다. 지난해 연말과 올해 초 언론노조 총파업 당시 주축부대가 MBC노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PD수첩>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 발표를 MBC 경영진 책임론으로 몰고 간다면? MB정부 입장에선 미디어법 통과와 MBC 제압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다.  

사실 MB정부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사나리오는 엄 사장이 스스로 물러나 주는 것이다. 강제퇴진에 따른 여론의 부담감도 덜고 이후 예정된 방송구조 재편 일정 등도 순조롭게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다. 최근 엄 사장을 만난 방문진의 한 이사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엄 사장이 ‘끌려 나가는 한이 있어도 내 발로 걸어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란 뜻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MB정부가 의도한 대로 사태가 흘러가 주면 좋겠지만 가능성은 반반이다. 청와대가 <PD수첩〉을 매개로 미디어법 통과와 ‘MBC 장악’ 의도를 분명히 하면서, 엄 사장 교체문제는 개인의 진퇴문제 이상이 됐기 때문이다. 여론전에서 유리할 것이란 장담도 없다. 명심하자. 엄기영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MB정부가 생각하는 것 이상일 수 있다. 여기에 탄압받는 언론인으로서의 ‘투사’ 이미지가 더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엄기영 사장의 행보를 주시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위) 엄기영 MBC사장 / (아래) 한겨레 6월29일자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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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MBC 경영진의 행보를 주시하는 까닭 
 
분명해졌다. MBC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이. 〈PD수첩〉에 대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은 표현수위와 발언시점 모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청와대 대변인이 진행하는 공식브리핑의 경우 언론은 통상 핵심관계자와 같은 익명으로 처리해 왔다. 취재원을 실명으로 언급하는 건 예외적인 경우에 속했다. 하지만 <PD수첩> 관련 발언은 이동관 대변인의 실명으로 보도됐다. 본인의 ‘요청’에 의해서다. ‘음주운전’ ‘흉기’라는 막말까지 한 것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청와대의 메시지가 한나라당을 향한 것이라면

    


▲ 6월20일 MBC <뉴스데스크>

이건 메시지다. 청와대 대변인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까지 경고 메시지를 보낸 배경을 짚어야 하는 이유다. 누구를 향한 메시지였을까.

우선 MBC에 대한 ‘분풀이론’이 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촛불시위 등 그동안 〈PD수첩〉 때문에 겪은 MB정권의 분노가 격한 반응으로 표출됐다는 주장이다. 이해는 하지만 단선적이다. 청와대 브리핑은 정권의 공식입장이나 마찬가지다. 격한 반응이 걸러지지 않은 채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의도성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일 MBC 〈뉴스데스크〉는 주목을 끈다. 이날 MBC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은 “미디어법을 6월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라며 한나라당에 보낸 메시지”라고 언급했다. MBC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에 대한 경고나 압박이 아니라 한나라당을 향한 주문이라는 얘기다.

만약 MBC의 보도처럼 이 대변인의 발언이 한나라당을 향한 것이라면 적어도 두 가지는 분명해진다. 청와대가 엄기영 체제의 MBC에 대한 판단을 끝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그리고 MB정부 출범 이후 제기된 ‘언론관계법 국회통과(6월)→방문진 이사 교체(8월)→KBS·EBS 이사 교체(9월)→공영방송법·방문진법 등 언론관계법 후속법안 처리’와 같은 시나리오의 현실화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는 점이다.

엄기영 체제의 MBC에 대한 청와대의 판단은 끝났다?

 

   
▲ 엄기영 MBC 사장.

사실 현 MBC 경영진에 대한 MB정부의 판단을 두고 언론계에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오는 8월 방문진 이사 재편 이후 바로 교체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는 반면 임기가 남은 엄기영 사장을 무리하게 교체하기보다 임기를 보장하되, 압박 등을 통해  ‘친여권화’ 시키는 방법을 택할 거라는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동관 대변인의 발언은 청와대가 후자보다는 전자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시사하고 있다.

그래도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왜 지금 시점을 택했을까. “미디어법을 6월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라며 한나라당에 보낸 메시지”라는 MBC 보도를 다시 한번 주목하는 이유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에 대한 국민적 여론은 부정적이다. 하지만 〈PD수첩〉을 왜곡․선동 방송으로 ‘낙인’ 찍고 이를 매개로 여론전을 가져간다면? 거기에다 검찰과 조중동의 강력한 지원이 받쳐준다면?

미디어법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일정하게 잠재울 수 있다. 그리고 MBC 경영진 교체에 대한 확실한 명분이 생긴다. 미디어법과 MBC를 한번에 ‘칠 수 있는’ 호재라는 얘기다. MB정권 입장에선 이건 한번 해볼 만한 싸움이지 않을까.

예상치 못한 변수, 작가의 이메일 공개

아마도 오는 8월 방문진 이사 교체 이후 엄기영 사장이 자진해서 물러나 주는 걸 청와대는 내심 바랄지도 모른다. 그렇게만 된다면 강제퇴진에 따른 여론의 부담감도 덜고 이후 예정된 일정 또한 순조롭게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능성이다. 청와대의 ‘승부수’는 청와대와 MBC간 갈등이라는 단순 대립구도를 넘어서게 만들었다. 〈PD수첩〉을 매개로 미디어법 통과와 ‘MBC 장악’ 의도를 분명히 한 이상, MBC 경영진 교체 역시 특정인의 진퇴문제로만 바라볼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MBC 경영진의 행보를 주시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 한겨레 6월20일자 1면

게다가 예상치 못한 변수도 발생했다. 〈PD수첩〉 작가의 이메일 공개. 검찰은 ‘제작진의 정권에 대한 적개심’에 방점을 찍고 이를 공개했지만, 파문 양상은 검찰의 의도와는 다르게 진행된다. ‘내 메일도 감시당할 수 있다’는 사생활 침해-양심의 자유 논란이 제기됐고, 이는 검찰 수사의 정당성 논란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의 승부수가 의외의 역풍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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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풍경] ‘정치적 저의’ 경계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다 
 
 
‘리크게이트’ 사건을 기억하는지. 지난 2005년 당시 주디스 밀러는 뉴욕타임스 기자였다. 밀러는 미 중앙정보국 비밀 요원의 신분을 누설한 이른바 ‘리크게이트’ 보도와 관련해 재판을 받다가, 취재원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요구를 거부, 구속수감 됐다.

당시 ‘리크게이트’ 사건은 ‘주디스 밀러 논쟁’으로 이어졌고 취재원 보호와 언론자유 논란에도 불을 붙였다. 일부 언론은 주디스 밀러를 언론자유의 상징으로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취재원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언론은 …

하지만 ‘리크게이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취재원 보호에서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됐다. 이 논쟁의 결말은 밀러가 28년 간 몸담아 왔던 뉴욕타임스를 떠나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그’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경향신문 2월16일자 4면.

‘주디스 밀러 논쟁’은 기본적으로 언론의 취재원 보호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만은 볼 수 없다. 백악관이 이라크 핵 물질 구입 시도 의혹을 부인한 당시 조지프 윌슨 전 이라크 주재 미국 대리대사를 곤경에 처하도록 하기 위해 그의 부인이 CIA 비밀요원이었다는 정보를 언론에 ‘고의적으로’ 흘렸다는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논쟁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뉴욕타임스와 밀러 기자를 향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취재원 보호인가”라는 반론이 계속 제기됐다. 백악관의 ‘정치적 의도’에 밀러와 뉴욕타임스가 ‘농락당한’ 것 아니냐는 혹평도 나왔다. 뉴욕타임스와 밀러는 취재원 보호라는 원칙을 내세웠지만 당시 언론계 안팎에서는 오히려 ‘뉴욕타임스가 백악관의 정치공작성 폭로’에 대한 기사를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대다수 언론의 피의자 강씨 얼굴공개, 정말 공익을 위한 것이었나

청와대의 ‘홍보지침’ 파문을 보면서 ‘주디스 밀러 논쟁’을 떠올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조선․중앙일보의 피의자 강 씨 얼굴공개와 대다수 언론의 연쇄살인 관련 집중 보도의 이면에 청와대의 ‘홍보지침’ 파문과 경찰의 언론에 대한 ‘친절한 취재협조’가 있었던 건 아닌지 계속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 1월31일자 1면.

결과적으로 ‘연쇄살인’ 사건 파문에 대한 언론의 과도한(?) 관심으로 ‘용산파문’은 사실상 묻혔고, 이는 청와대(일개 행정관이 됐든)와 경찰의 의도와 맞아 떨어졌다. 언론 입장에서 보면 정부와 경찰의 ‘정치적 의도’에 ‘농락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물론 연쇄살인 보도를 통해 ‘용산파문’ 정국을 어떤 식으로든 전환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언론이라면 ‘농락’이 아니라 ‘성공’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조선․중앙일보의 피의자 강 씨 얼굴공개를 계속 유심히 살피게 된다. ‘용산참사’ 파문과 관련한 언론보도가 ‘연쇄살인’ 쪽으로 급격히 쏠리기 시작한 건 지난 1월31일 이후부터다. 피의자 강 씨가 부녀자 7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한 것이 1월30일. 조선․중앙일보가 강 씨의 얼굴을 공개한 날이 1월31일이다. 이후 대다수 언론이 얼굴공개 대열에 경쟁적으로 동참하면서, 뉴스가 연쇄살인 사건으로 거의 도배질이 되다시피 했다.

‘정황’을 보면 강 씨의 얼굴공개로 인한 파장이 언론보도의 쏠림 현상을 가속화시킨 셈이다.

‘정치적 저의’ 경계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

그렇다면, 청와대 ‘홍보지침’ 파문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조선․중앙의 ‘얼굴공개’를 다시 한번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대체 피의자 강 씨 사진을 조선과 중앙을 비롯한 대다수 언론은 어떻게 제공받았을까. 얼굴을 공개한 언론들 가운데 이와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밝힌 곳은 없다.

만약 경찰이 강 씨 사진을 제공한 거라면? 이는 ‘공익을 위한 얼굴공개’가 아니라 ‘경찰의 의도’에 말려들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말한다. 경찰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언론에 ‘친절히 취재협조’를 했다는 사실은 이런 의심을 더욱 확고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 중앙일보 2월16일자 8면.

그런데 안타까운(?) 건 청와대 ‘홍보지침’ 파문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이 문제와 관련해 언론 스스로 자성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연쇄살인이라는 사안의 심각성 때문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부와 경찰의 ‘정치적 의도’에 대한 경계와 의심 없이 ‘덥석’ 받아쓰기만 한 부분은 언론 스스로도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홍보지침’ 파문이 이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반성은커녕 조중동은 아예 사안 자체를 축소․외면하고, 경향과 한겨레를 제외한 나머지 언론은 정치공방 차원에서만 이를 보도한다. 역시(!) 한국 언론은 ‘부끄러움’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먼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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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다시 생각해보는 피의자 강씨 얼굴공개 사건 
 
‘용산참사’가 묻힌 건 정확히 말해 지난 1월31일 이후다. 기억하는지. 조선·중앙일보가 피의자 강 씨 얼굴을 공개한 날이 바로 이날이다. 이후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엔 용산참사 대신 연쇄살인이 주요 의제로 자리 잡았다.

가장 먼저 강 씨의 얼굴을 공개한 조선·중앙은 1월30일까지 사회면에 한 두 개씩 강 씨 관련 보도를 했다. 하지만 1월31일 이후 1면을 포함해 여러 건의 관련 기사를 실으며 적극적인 보도를 이어갔다.

피의자 강 씨 사진, 어떻게 ‘제공’ 받았을까

물론 언론보도의 쏠림은 연쇄살인 피의자 강 씨가 부녀자 7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강 씨의 얼굴공개로 인한 파장이 이 같은 쏠림을 가속화시킨 건 분명하다. 이후 대다수 언론이 너도나도 얼굴공개 대열에 경쟁적으로 동참하면서, 뉴스가 연쇄살인 사건으로 거의 도배질이 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 1월31일자 1면.

당시 의문을 가지긴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여러 가지 ‘함축적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대체 피의자 강 씨 사진을 어떻게 제공받았을까 하는 것. ‘사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경찰로부터 제공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경찰 외에 강 씨 사진을 확보할 수단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심히 살폈다. 경찰이 연쇄살인 피의자 강 씨 사건에 대해 유독 언론에 친절을 베풀었다는 보도를. 기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했듯 이런 ‘대형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은 기자들에게 말을 최대한 아낀다. 하지만 이번 연쇄살인 사건의 경우 이 법칙을 따르지 않았다. 왜일까. 만약 경찰의 이 같은 친절에 강 씨 사진제공도 포함됐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할까. 경찰의 친절과 언론보도 그리고 강 씨 사진공개가 ‘별개’의 사건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다.

조중동의 ‘청와대 홍보지침’ 파문 축소, 어떻게 볼까

유심히 살핀 건 또 있다. 군포 연쇄살인사건을 통해 용산참사를 덮으려 했다는 청와대 ‘홍보지침’ 파문에 대한 조중동의 보도태도. 이번 ‘홍보지침’ 파문은 청와대와 정부 여당 그리고 경찰의 대응을 고려했을 때 단순히 청와대 행정관 개인적 차원으로 보기가 어렵다. 정부가 조직적 차원에서 개입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메가톤급’ 사안이다. 정권 차원에서 진행된 ‘조직적 민심왜곡’이라면 연쇄살인 사건은 그 비중에 있어 이번 파문과는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 경향신문 2월14일자 3면.

하지만 이 논란과 파문을 조중동은 축소·외면하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을 고려한 의도적인 축소·외면일까.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그보다는 조중동 스스로 군포 연쇄살인사건을 앞세워 ‘용산 참사’를 덮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나라당이 2월 임시국회가 ‘용산 국회’로 연결되는 걸 막기 위해 고의적인 무대응으로 일관할 때 조중동, 보조를 맞췄다. 그리고 일찌감치 용산참사 문제를 전철연 문제로 국한시켰다. 책임론에 있어서도 정부·여당 쪽과 비슷한 입장을 견지해왔다. 정부·여당의 ‘전략’과 조중동의 관심 이동이 묘하게 일치한 셈이다.

조선·중앙의 피의자 강 씨 얼굴공개를 다시 주목한 것도 이런 배경을 전제로 한다. ‘용산참사’ 정국을 연쇄살인사건으로 전환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던 이들 신문의 ‘얼굴공개’가 가지고 있는 함의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청와대 ‘홍보지침’과 조선 중앙의 ‘얼굴공개’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함수 -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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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시사IN> 71-72 합본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KBS 휴먼다큐 ‘현장르포 동행’을 위한 변명
[기고] 민임동기 <PD저널> 편집국장

KBS 휴먼다큐 <현장르포 동행>이 논란에 휩싸였다. 1월8일 방송된 ‘신년기획 - 동행1년, 희망을 만난 사람들’ 때문이다. 1년 간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사람들의 현재 모습에서 희망을 전하려 했던 게 프로그램을 기획한 기본 취지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의 선행 장면이 등장하면서 ‘정권 홍보방송’ 아니냐는 비난이 제기됐다.

논란이 된 장면은 최승매씨와 관련된 부분이다. 지난해 12월23일 청와대가 어려운 이웃을 초청한 자리에 최씨가 참석했고, 이명박 대통령의 축사와 “초청받아 영광스럽다”는 최씨의 인터뷰 내용이 이어졌다. 지난해 ‘40대에 낳은 딸을 업은 채 노점상을 하던 최씨의 사연’이 방송된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편지와 김윤옥 여사의 후원이 있었다는 부분도 나왔다. “대통령 할아버지처럼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최씨 큰 딸 이수진양의 발언도 소개됐다.


네티즌들의 반발은 거셌다. ‘5공 시절 땡전뉴스를 보는 것 같다’ ‘PD는 딴나라당으로 동행하라’는 비난이 <동행> 게시판을 가득 메웠다. 언론시민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도 1월12일 발표한 논평에서 “‘비정치적’인 프로그램마저 ‘변질’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동행> 제작진에 우려를 표명했다.

여기서 제작진을 일방적으로 두둔할 생각은 없다. 특히 청와대 행사를 제작진이 직접 찍지 않은 점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하지만 대통령 부부의 선행 장면이 소개됐다는 이유로 <동행>이 ‘정권 홍보방송’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45분 가운데 2∼3분 정도의 분량 때문에 프로그램 전체가 비난받는 게 온당한 일일까. 동의하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의 좋은 점이 조금이라도 나오면 무조건 정권 홍보방송이라는 딱지를 붙이겠다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읽히기 때문이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이들의 선행 장면이 휴먼다큐 프로그램(시사 프로그램이 아니다)에서 잠깐 소개됐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그 부분만을 집중 거론하며 해당 프로그램과 방송사를 가리켜 정권 홍보방송이라고 비난한다. 온당한 비판일까.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동행>에 쏟아지는 세간의 비난에 동의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다.

여기서 필자는 독자들에게 정치적인 시선을 걷어내고 잠깐 제작진 입장이 되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신년기획 - 동행1년, 희망을 만난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프로그램에 소개된 주인공 중 한명이 청와대에 초청이 됐다. 방송 이후 각계의 후원이 잇따랐고, 여기엔 대통령의 편지와 김윤옥 여사의 후원도 있었다. 당신이 제작진이라면 휴먼다큐 프로그램에 이 장면을 담을 것인가 아니면  버릴 것인가. 나라면 전자를 택할 것이다.

사실 <동행>을 둘러싼 논란은 이명박 정부와 이병순 사장 체제의 KBS가 짊어져야 하는 업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거부감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현재 KBS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깊은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불신과 거부감을 이해한다 해도 ‘이명박 대통령 선행 장면=정권 홍보방송’이라는 등식을 합리화 시킬 수는 없다. 그런 식의 ‘정치적 기준’을 모든 프로그램에 적용하기 시작하면 정권 홍보방송 아닌 것이 없게 된다.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이 정부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것과 휴먼 다큐에서 대통령의 선행이 잠깐 소개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정치적 열정을 다소 식히고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사진=KBS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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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비평] 절차적 문제점 지적도 제대로 못해서야 
 
한나라당이 강행한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상정 - 18일 KBS는 <뉴스9>에서 이렇게 분석한다.

“한나라당이 단독 상정을 강행한 이유를 정국 주도권 잡기로 해석하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과반 의석을 갖고도 야당에 끌려가기만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불식해 보고 싶었고 그 시험대를 FTA 비준동의안 처리로 봤다는 것입니다 … 민주당은 그동안 여당의 들러리 아니냐는 당내외 비판에 시달리면서 내부 갈등양상까지 빚었던 만큼 예산안에 이어 또 밀리면 안된다는 절박감이 있었다는 분석입니다.”

KBS SBS 핵심 피해가기 … MBC ‘소극적’ 해석

  

  
▲ 12월18일 KBS <뉴스9>

온당한 분석일까. 동의하기 어렵다. 분석도 너무 표피적이다. 한미 FTA와 관련해 상대편인 미 의회는 전혀 움직이질 않고 있는데 한나라당이 ‘난리법석’을 떨면서 비준안 상정을 강행한 이유에 대해선 전혀 분석을 하지 않고 있다. 정국 주도권을 위해 한미FTA 비준동의안 상정 강행을 선택했다는 건 분석이 아니다. ‘왜 그걸 택했는지’가 여전히 의문부호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언론이라면 “과반 의석을 갖고도 야당에 끌려가기만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불식하기” 위해 ‘외교적인 이슈’를 이렇게 급박히 그리고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게 온당한지를 물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KBS는 ‘하나마나한’ 분석을 하고 있다.

같은 날 MBC <뉴스데스크>의 분석은 좀 다르다. 여권의 강경배경에 청와대가 있고, 개각을 염두에 둔 여당 지도부의 청와대 눈치보기가 작용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치적인’ 쪽에 비중을 둔 해석이다. 일부 인용한다.

“대통령과 당 대표의 청와대 회동을 기점으로 여권 전체의 기류가 급속히 바뀌었습니다 … 여기에다 머지않아 있을 개각에서 입각을 염두에 둔 여당 지도부의 청와대 눈치보기 그리고 예산안 처리 때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이런 내부비판을 받고 있는 야당이 서로 강수 대 강수로 부딪친 것입니다.”

SBS는? 아쉽게도(!) 상황 전달만 있고, 분석이 없다.

    


▲ 12월18일 MBC <뉴스데스크>

‘국회 파행’만 주목한 방송뉴스 … 절차적 문제점은 거의 언급 없어

어느 분석이 더 타당한지는 독자들이 판단할 문제다. 다만 이날 방송3사 뉴스를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건 아니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던 건, 절차적으로 드러난 명백한 문제점에 대한 비판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19일자 한겨레 사설 일부를 인용한다.

“국회법상 회의를 진행하면서 필요할 경우 발동할 수 있도록 돼 있는 질서유지권을 하루 전부터 행사해 경위들을 미리 배치했다. 더구나 이들의 임무는 회의장의 질서 유지가 아니라 야당 의원의 출입을 막는 것이었다. 또 회의도 야당 의원들에게 통보한 시간 이전에 개최했다. 헌법상 보장된 국회의원의 직무 수행을 고의로 방해했을 뿐 아니라 최소한의 형식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 당연히 원천무효다.”

    


▲ <한겨레> 12월19일자 사설

물론 이유야 어찌됐든 국회가 난장판이 되다시피 한 것에 대한 여야 모두에 대한 비판 - 필요하다. 민의를 수렴해서 법과 제도를 만드는 국회에서 ‘패싸움’을 벌인 여당과 야당 모두를 싸잡아 비판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는 건 곤란하다. 국회법을 어기면서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것에 대한 비판 그리고 최소한의 형식적인 요건도 갖추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비준안 상정을 강행한 부분에 대한 비판은 ‘난장판 국회’에 대한 비판과는 별도로 다뤄야 하는 문제다. 국회의장이 발동할 수 있는 질서유지권 - 국회의장은 발동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발동이 됐는지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하지만 방송3사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제히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고 보니 국회법을 어기면서 질서유지권을 발동하고, 최소한의 형식적인 요건도 갖추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비준안 상정을 강행한 주체가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 비판’은 피해가는 방송뉴스인가. 이 정도 수준의 비판도 이제 용기를 내야 하는 시대인가. 총파업을 예고한 ‘언론노동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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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

[오늘의 핫이슈] 지나친 태극기에 대한 ‘숭배’는 경계해야

속된 말로 좀 ‘쪽팔린’ 상황이 됐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일반인이었다면 그냥 한번 웃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인데,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다. 한국의 대통령이 거꾸로 된 태극기를 들고 한국 대표선수를 응원했으니 논란이 불거질 만도 하다.

만약 올림픽 경기에 나간 한국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거꾸로 된’ 태극기를 달고 나갔다면? 보기에 좀 ‘거시기한’ 상황이 됐을 것이다. 물론 이건 하나의 가정이다. 이명박 대통령 태극기 논란은 ‘그런 정도’의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일국의 대통령 아닌가.

태극기를 지나치게 ‘신성시’ 하는 건 곤란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선일보 8월11일자 8면.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태극기 논란에서 경계해야 할 점이 눈에 띈다. 태극기에 대한 지나친 신성화와 숭배 문화다. 태극기는 국가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자 권위일 뿐이다. 그것에 대한 ‘예’를 갖추는 정도면 충분하다. 일국의 대통령이 거꾸로 된 태극기를 흔든 건, ‘쪽팔린’ 일이지만 그 이상의 ‘정치적 책임과 의미’를 부여하는 건 곤란하다.

많은 블로거들과 일부 언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직할 당시 조선일보 등이 ‘비슷한 문제’를 제기한 것을 거론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전하기도 한다. 동의하기 어렵다. 태극기 하나에 헌법정신까지 거론하며 신성시하는 조선일보의 ‘왜곡된 국가주의’가 문제의 핵심이다. 태극기 자체를 너무 ‘숭배’하지는 말자.

오히려 이번 태극기 논란에서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은 연합뉴스다. 연합뉴스는 애초 ‘거꾸로 된 태극기’ 사진을 전송했는데 논란이 불거진 지난 9일 연합뉴스 사이트는 물론이고 각 포털 사이트에서도 이 사진은 ‘다른 사진’으로 모두 교체됐다. 거꾸로 된 태극기 모양이 보이지 않는(편집의 힘?), ‘단순응원 사진’으로 교체한 것이다.

청와대 요청이든 자진 교체든 연합뉴스의 태도는 문제

몇 가지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청와대의 ‘요청’이 단순히 요청이었는지 여부. 연관된 문제지만 연합뉴스의 교체 배경이 그것이다. 솔직히 청와대 입장에선 ‘쪽팔린 상황’이니 사진 교체를 요구했을 수도 있다. 청와대도 요구는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단순한 요구인지 압력의 형태인지는 면밀한 판단이 필요하지만 어찌됐든 요구 자체는 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연합뉴스가 사진을 교체한 것은 좀 다른 문제다. 그것이 청와대의 요구에 의한 것이든 압력에 의한 것이든 모두 문제라는 말이다. 태극기 논란에 필요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건 곤란하지만 그 자체는 분명 뉴스다.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좀 ‘쪽팔린’ 일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미안하다. 응원에 몰입한 나머지 실수를 한 것 같다.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연합뉴스는 이 정도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진을 교체했다. 청와대의 요구를 ‘자진수용’을 했든, ‘강제적으로 수용을 했든’ 이건 곤란하다. 이 정도의 사안마저 보도를 할 수 없다면 그건 언론사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 없다. MB도 ‘문제’지만, 연합뉴스의 태도는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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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