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주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1/28 KBS ‘공부의 신’을 위한 변명 by 곰도리
  2. 2009/01/12 독설닷컴 고재열을 위한 변명 (5) by 곰도리

* 이 글은 시사IN 124호 실린 글입니다.

KBS 월화드라마 <공부의 신>(연출 유현기, 극본 윤경아)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선 논란이지만 언론에선 주로 비판이 거세다. 비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공부의 신>이 학벌지상주의와 주입식 교육을 설파하는 퇴행적 내용을 담고 있고, 학원재벌 홍보수단으로 활용될 우려가 있으며 일본드라마를 베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비판, 타당할까. 타당하지 않다. <공부의 신>에 염려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공부의 신>에 제기되는 모든 비판을 정당화시키는 건 아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드라마’라고 해서 곧바로 ‘퇴행적 드라마’로 연결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허나 불행하게도(!) 지금 <공부의 신>에 쏟아지는 거센 비난은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가장 황당한 건, 일본드라마를 베꼈다는 비난이다. 리메이크와 베끼기의 차이를 진정 모르는 걸까. <공부의 신>은 일본만화 ‘꼴찌 도쿄대 가다’가 원작이며, 지난 2005년 일본에서 <드래건 자쿠라>라는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베끼기라는 비난이 성립하려면 <공부의 신> 제작진이 이 같은 사실을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게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매번 방송이 될 때마다 <공부의 신>은 ‘꼴찌 도쿄대 가다’가 원작이란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건 부당한 비판이다.

학벌지상주의와 주입식 교육을 강조한다는 비난도 있다. 여기에는 변호사 강석호(김수로)와 수학교사 차기봉(변희봉) 등으로 대변되는 입시위주·주입식 교육 설파 내용이 한 몫 하고 있다. 특히 경쟁 지상주의적인 MB 교육정책과 맞물리면서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하지만 단정은 이르다. 일각의 염려는 이해하지만 <공부의 신>을 이런 염려만으로 ‘단죄’하는 건 온당치 못하다. <공부의 신>은 우리 사회의 ‘꼴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드러내면서 성찰을 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병문고 교사 한수정(배두나)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강석호식 ‘주입식 교육’이 담지 못하는 ‘인간교육’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장치도 심어 놓았다. ‘꼴찌’에 대한 편견이 구조화 돼 있는 사회에서 ‘원칙과 이상’이 아이들을 위한다고 볼 수 있을까. <공부의 신>은 그런 현실적 딜레마에 대해 생각할 여지도 남기고 있다.

특정 학원재벌의 홍보수단으로 활용될 염려도 제기된다. <공부의 신>은 드라마 제작에 대성N스쿨 2억 원 등 6개 업체로부터 모두 11억200만 원의 협찬을 받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 중간에 대성N스쿨의 간접광고가 일부 노출되면서 ‘학원재벌 홍보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타당한 지적이긴 하지만 과한 비판이란 생각이 든다. 협찬사에 대한 드라마 일부 간접광고는 더 이상 낯선 관행이 아니다. 면죄부를 주자는 건 아니지만 윤리적 단죄만으로 비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만약 <공부의 신>이 간접광고를 노골적으로 했다면 이런 비판에 지지를 보내겠지만 <공부의 신>은 통상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찌됐든 KBS노동조합(위원장 강동구)은 <공부의 신> 논란과 관련해 공정방송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공부의 신>이 ‘공정한 방송’을 하고 있는 지 노사 테이블 위에까지 올라가게 된 셈이다. 노조 본연의 역할에 속하기 때문에 이해는 하지만 한편으론 염려도 된다. 그동안 KBS뉴스와 프로그램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할 때 KBS노조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공부의 신>에 대한 KBS노조의 ‘공세적 비판’은 이례적이다. 혹 뉴스나 시사교양보다 드라마가 ‘만만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노파심에서 하는 얘기다.

<사진 설명> KBS 월화드라마 <공부의 신>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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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

[취중진담] ‘공공적 연고주의’ 운동을 제안하며

1.

고재열은 <PD저널> 필진이다. 난 <PD저널> 편집국장으로 있다. 고재열 기자를 필진으로 ‘모신 건’ 글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기자로서의 그의 진정성도 높이 평가한다. <시사저널> 파업과 이후 보여준 그의 행보에서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고재열 기자는 그렇다.

고재열 기자의 ‘고대 학벌주의’ 의혹(?)을 제기한 원성윤 기자는 <PD저널> 기자다. 나의 후배다. 혈연․지연․학연으로 얽힌 적은 없지만 내가 ‘아끼는’ 언론계 후배다. 기자 경력이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가 지닌 문제의식과 감각은 높이 평가한다.

2.

‘그런’ 고 기자와 원 기자가 학벌주의를 가지고 논쟁(?)이 붙었다. 한 쪽은 문제를 제기하는 쪽이고 다른 한쪽은 방어하는 쪽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묘한 느낌이 든다. 적어도 내가 ‘아는’ 두 사람은 학벌주의와 모두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글을 모두 읽어봤다. 고재열 기자가 지금까지 썼던 글의 흔적들 가운데 학벌주의로 오해할 만한 부분이 있는가 - 이걸 두고 ‘있다’고 주장하는 쪽과 ‘억울하다’는 당사자의 항변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그게 핵심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이다.

문제는 학벌주의 즉 연고주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 이 문제인 것 같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학벌주의는 주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마음 속으론 학벌주의를 옹호하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공공적 장소에서까지 학벌주의를 옹호하진 않는다. 그건 만인으로부터 손가락 받을 짓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게 연고주의고 학벌주의지만 적어도 사람들은 공적인 영역에서 이 부분을 옹호하고 나서진 않는다. 학벌주의는 사적인 관계 속에서 은폐되기 쉽다. 학벌주의와 연고주의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3.

다시 고재열 기자 문제로 돌아가 보자. YTN 조승호 기자 후원모임을 결성한 고재열 기자의 ‘행위’를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학벌주의로 한 단면으로 볼 수 있을까. ‘독설닷컴’에서 보았던 고대 선후배들과의 사진과 ‘부분적인’ 글 등을 고대 학벌주의의 위험신호로 볼 수 있을까.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서러움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불편하게 느꼈을 법도 하다. 그건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술자리를 비롯한 사적 모임이든 공식적인 모임이든 출신대학들끼리 뭉치는 결속력은 서울 소재 대학 출신들이 강하다. 거기서 비롯되는 ‘챙겨주기’ 문화의 정도가 강한 곳 역시 서울 소재 대학 출신들이다. 특히 고대가 좀 유별나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학벌주의의 폐단에 고재열 기자의 ‘사례’가 포함될 수 있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평소 학벌주의 폐단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보기엔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이지만, 학벌주의 문제를 그런 식으로 확대해석하면 사실 해결이 어렵다. 툭 까놓고 말해 나 자신을 비롯해 우리 모두 가까운 사람들의 면면을 한번 살펴보자. 많은 경우 지연 혈연 학연으로 얽혀 있다. 이 말은 학연이나 지연, 연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말이다.

4.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실력이나 능력에 상관없이 출신 지역이나 출신 학교끼리 뭉쳐서 ‘잘살아보자’는 끼리끼리 문화이지, 일상적 삶에서의 사적 관계망까지 포괄하는 건 아니다. 그런 식이면 동문회와 동창회, 향우회 등과 같은 모임 자체를 없애야 한다. 뜻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어떤 일을 벌이고자 할 때도 같은 학교와 같은 지역 출신들은 일단 배제를 해야 하는 상황도 나온다. 이게 가능할까. 현실적으로 어렵다.

자신의 사적 네트워크를 돌이켜보면 같은 고등학교나 같은 대학 동문들이 많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다른 조건보다 같은 학교 출신이면서 ‘본인과 코드가 맞는 사람’이면 더 친밀감을 느낀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그걸 가리켜 누군가가 연고주의의 폐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을 한다면 동의할까.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의 기득권 사수를 위한 엘리트들의 학벌주의 연고주의는 비판해야 하지만 우리네 일상적 삶에서의 친목이나 우정까지 대상에 포함시키는 건 지나치다.

5.

질문 하나. 연고주의는 모두 나쁜 것일까.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어차피 연고주의는 우리 삶의 법칙이 된 지 오래고 누구도 거기서 자유롭지 않다. 오죽하면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가 ‘공공적 연고주의’를 들고 나왔겠는가. 

어차피 우리가 연고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연고주의에 공공적 성격을 가미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같은 동문끼리 모여서 출세를 위해 패거리주의에 집착하지 않고, 언론개혁에 동참한다든가 사회봉사에 참여한다면 그 자체로 의의가 있는 게 아닐까. 물론 우려되는 점과 한계도 분명히 있다. 지방대 출신이 뭉치는 것과 서울대-연대-고대 출신들 특히 언론인들이 ‘뭉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한국 사회 기득권 세력에 다가갈 수 있는 확률이 후자가 더 높기 때문이다. 원성윤 기자의 고재열 기자에 대한 ‘고려대 뭉치기’ 우려 역시 이런 부분들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우려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해도 고재열 기자식의 ‘연고주의․학벌주의’라면 난 지지해줄 의사가 충분히 있다. 고대출신 언론인들이 모여 자기네들 출세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좋은 일’ 하겠다는 걸 비판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자기들끼리만 하겠다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다만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정도는 고재열 기자도 알아줬으면 한다. 그게 우리네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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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