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협상파’의 입지를 좁히지 말라

“쓰나미다.”

‘김재철 사장 인선안’에 대해 MBC 한 관계자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 관계자의 논평은 단순히 외형적 규모가 크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내용적 측면의 ‘물갈이’가 ‘쓰나미’ 같다는 얘기입니다.

‘김재철 인선안’, 그러니까 28개 관계사(지역MBC 19개, 자회사9개) 사장 가운데 21개 관계사 (지역MBC 16개, 자회사 5개) 사장을 교체하는 안을 살피면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비호남 △고려대 △최문순·엄기영 색깔 걷어내기가 그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MBC 관계자의 표현은 이 세 가지를 모두 종합한 것입니다.

‘김재철 인선안’의 문제점


이번 인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영평가를 무시했다는 겁니다. 지역MBC 사장 인선에서 성과나 경쟁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건 누가 봐도 납득하기 힘듭니다. 특히 일부 지역MBC 사장의 경우 임기동안 상당한 경영성과를 냈음에도 이번 인사에서 교체됐습니다. 상을 줘도 모자랄 판에 사실상 ‘경질’을 당한 셈입니다.

‘경영평가 무시’와 한 축을 이루는 게 ‘보은인사’입니다. 공정방송노조 활동으로 징계를 받은 정수채 전 위원장이 이번에 MBC 프로덕션 이사로 선임된 것 대표적입니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MBC 프로덕션 사장에 공정방송노조 출신 윤혁 제작본부장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경영성과는 무시하고 ‘측근들’은 중시한다? 이번 인사를 두고 원칙과 기준이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입니다.

사실 전, 이번 인사에서 원칙과 기준 이런 것보다 ‘승자 독식주의’의 문제점을 말하고 싶더군요. 비호남과 고려대 출신 부각도 문제로 볼 수 있지만 저는 이보다 ‘최문순·엄기영 사람 걷어내기’가 더 문제라고 봤습니다. 물론 인사권은 사장에게 있습니다. 새로운 사장이 되면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사람을 기용하는 게 당연하지요.

하지만 그 인사권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최소한의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아니 원칙과 기준 이런 말보다 저는 ‘상식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누가 봐도 경영성과가 뚜렷한 사람을 내치고 ‘정치 색채’가 뚜렷한 사람을 기용한다는 건, 상식보다는 당파성이 작용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최문순·엄기영 체제’에서의 김재철 사장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런 ‘상식’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 김재철 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 ‘최문순·엄기영 체제’에서 김재철 사장이 코드가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 지역MBC 사장으로 재직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상식의 힘’이 작용했기 때문 아닐까요. 김재철 사장만이 아니라 이번에 사장 후보로 거론됐던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런 ‘혜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전임 사장들은 ‘노선’은 달랐지만 인사에 있어 최소한의 ‘균형’은 유지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 ‘김재철 인선안’에서 이런 최소한의 균형은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물론 일부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만, 크게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게 MBC 안팎의 전언입니다.

이번 인선안이 ‘김재철-이근행 조건 합의 이후’에 나왔다는 점을 주목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른바 노조가 속은 것 아니냐는 것이죠.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만. 앞으로 MBC노조의 행보를 일단 지켜보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MBC노조가 원칙과 기준을 버리고 김재철 사장과 무턱대고 타협할 거라고 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MBC노조의 건강성을 저는 믿습니다.

김재철 사장은 무엇을 의도했을까

개인적으로 김재철 사장이 무엇을 의도했는지가 더 궁금하더군요.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제가 보기에 노조와 방문진을 동시에 달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희만-윤혁 본부장’을 원위치 시키는 카드를 통해 노조와 대화를 시도하면서 이번 인사를 통해 ‘정권과 방문진을 비롯한 보수층 달래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것이지요.

지난 8일자 조선일보 사설을 보면 짐작하겠지만 보수층 일각에서 김재철 사장의 최근 행보를 못마땅해 하고 있는 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김 사장 입장에선 이들을 달래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문제는 김재철 사장의 이런 ‘줄타기’가 MBC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솔직히 이번 인선안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원들을 설득할거라면 가능성이 낮다고 말하고 싶네요. 앞서 언급했지만 기준과 원칙도 없는, 더구나 전임 사장들에 비해 ‘그다지 상식적이지도 않은’ 인사를 가지고 MBC 구성원들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왕 노조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생각을 했다면 좀 더 전향적인 방식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파국을 막는 최선의 방책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맨위=지난 8일 열린 방문진 이사회 모습 / PD저널>
<사진 중간=김재철 MBC사장 / PD저널>
<사진 아래=조선일보 3월8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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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
[TV에세이] MBC ‘무한도전’이 던진 메시지를 생각하다

1월2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은 사실상 2009년 마지막 방송이었다. 한 해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장치들이 여기저기 배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일 년 간 고생한 출연진을 위한 제작진의 작은 배려(팬 미팅?)도 그렇고, ‘의좋은 형제’를 통해 꼬리잡기나 헐뜯는 것이 아닌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보여주려 한 것도 이런 장치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이날 〈무한도전〉의 ‘여러 장치’는 브라운관 안이 아니라 밖을 향해 있었다고 본다. 특히 자신들이 직접 농사지은 ‘뭥미쌀’을 출연진 가운데 고마운 사람에게 전하는 모습을 보여준 ‘의좋은 형제’가 의도한 바는 분명했다.

“지금 TV를 보며 웃고 계시는 여러분. 잠시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2009년 한 해를 보내며 고마운 사람들에게 ‘고마움 마음’을 표현했나요.” 〈무한도전〉은 그렇게 나에게 묻고 있었다. TV를 보는 내내 속이 뜨끔했던 이유다.

사실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은 출연진들이 각 자 ‘뭥미쌀’을 전달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극에 달했다. 2일 방송에선 유재석 씨 관련 부분만 나왔지만, 만약 내가 저런 상황이라면, 나에게, 내 집 앞에 쌀을 갖다 놓고 갈 동료나 선배나 후배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유재석 씨 집 앞에 놓인 쌀통에 쌀이 한 가마니도 없는 것을 보고 그냥 웃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 1월2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
그런 점에서 새해 첫 〈무한도전〉은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만들었다. 한 해를 마감하며 주변의 고마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했던 데다, 과연 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 이 물음 앞에 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무한도전〉을 단순한 예능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예능 방송’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무한도전〉은 역시 〈무한도전〉이었다.  〈무한도전〉이 이날 방송으로만 끝냈다면 그냥 한 해를 잘 성찰·마무리하고, 새해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살라는 정도의 ‘덕담’을 했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2일 방송이 끝난 뒤 보여준 다음 주(1월9일) 예고방송은 왜 〈무한도전〉이 ‘무한도전’일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줬다.

기대했던(?) ‘뭥미쌀’을 받지 못한 출연진들이 서로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며(?) 복수전에 나선다는 내용인데, 사실 이런 측면들이 인간이 가진 본성에 더 가깝지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게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를 더 살릴 수 있다고 봤다. 〈무한도전〉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우리 내부에는 ‘상황’이나 ‘심리’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일 뿐 악함과 선함이 같이 공존하고 있다. 〈무한도전〉이 1월2일 방송에선 스스로를 성찰하도록 만들면서 9일 방송에선 인간 본연의 이기적 심리를 ‘까발리는 전법’을 쓴 이유가 뭘까. 인간의 상반된 두 가지 측면을 순차적으로 보여주겠다는 게 아닐까. 〈무한도전〉은 내게 그렇게 묻고 있다.

‘그게 인간이고 우리네 인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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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주의 책] ‘2010 트렌드 웨이브’ 외

‘그 삶이 내게 왔다’ (강홍구 공선옥 외 / 인물과 사상사)

이 책은 〈인생기출문제집〉(안철수 외 / 북하우스)과 비슷한 콘셉트의 책입니다. 〈인생기출문제집〉이 우리 사회 멘토급 선배들이 20대 후배들에게 던지는 질문에 초점을 맞췄다면, 〈그 삶이 내게 왔다〉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자신의 삶과 인생을 차분히 들려주는 게 특징입니다. 하지만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결론’은 공통적입니다. 

   
▲ ‘그 삶이 내게 왔다’ (강홍구 공선옥 외 / 인물과 사상사)
사실 인생에 답이 보이지 않을 때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그 삶이 내게 왔다〉는 열정으로 인생의 절반을 달려온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와도 같습니다. 지금은 이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일지라도 그들 역시 지금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삶의 고비를 힘겹게 넘어온 사람들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17명의 필자들은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영화평론가와 발행인, 작가, 의사, 교수, 기자, 평론가, 인권운동가 등 직업도 다양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스스로 들려주는 자신들의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인생의 ‘객관적 기준’과는 다른 삶을 살아왔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뭔가 특출한 재능을 가졌다기보다는 젊었던 시절 가졌던 헛된 꿈(?)을 포기하지 못한 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는 점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지금 인생의 기로에 서서 방황하고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은 작은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2010 트렌드 웨이브’ (북하우스)

MBC가 발간한 트렌드 북입니다. MBC는 지난 2007년부터 우리 사회의 트렌드 연구를 해왔는데요 이번에 2010년판 트렌드북을 발간했습니다. 방송사에서 이런 책을 냈다는 것 자체가 일단 주목을 끄네요. 어찌 보면 이례적인 것 같은데, 책 내용을 보면 약간 놀랍습니다. 이 책은 마치 한 편의 특집 방송 프로그램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 ‘2010 트렌드 웨이브’ (북하우스)
〈2010 트렌드 웨이브〉는 본격 대중문화 리포트에 속하지만 이론서라기보다는 실증적인 연구서에 가깝습니다. iMBC패널 460명을 대상으로 한 시청자 관심사 조사를 했고, 트렌드세터 직업군 500명에 대한 설문조사도 병행했습니다. 또한 트렌드리더로 선정된 대학생 20명의 표적 집단 면접(FGI)과 각계각층의 최고 전문가 29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것도 특징입니다.

여기에 방대한 양의 자료를 결합, 이를 바탕으로 2010년의 대중문화를 예상했으니 책 내용이 상당히 정교할 수밖에 없습니다. 〈2010 트렌드 웨이브〉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심층적 조사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2010년 대중문화 흐름과 관련해 16개의 주요 트렌드를 읽어냈고, 54개의 핵심 키워드를 도출했습니다.

2010년은 대중문화 영역에서도 기술적인 성장세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그 성장만큼 우리의 정서나 불안심리가 안정되거나 사라질 것 같진 않습니다. 이는 2010년에도 우리 사회에서 ‘불안 코드’가 여전히 강세를 보일 거라는 얘기입니다. 그 ‘정서적 허기’ 현상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대처할 것인가 - 이게 궁금하신 분들은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 (박창순·육정희 / 시대의 창)

EBS 방송본부장을 지냈던 저자 박창순 씨가 공정무역을 전하는 이로 ‘변신’한 뒤 그동안의 활동을 담은 책입니다.

저자는 2006년, 당시 방송위원회의 ‘방송콘텐츠 지원사업’에 선정돼 2006년 1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아내와 함께 공정무역 제품 생산국가인 인도, 네팔, 필리핀을 비롯해 공정무역 제품 소비국가인 일본, 영국, 네덜란드 등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공정무역 생산자와 소비자, 단체, 회사의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활동을 2부작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거래〉에 담았습니다. 이 책은 〈아름다운 거래〉를 제작할 때의 이야기와 그 이후 본격적으로 공정무역에 뛰어들어 최근의 활동까지 4년간의 기록을 담은 일종의 보고서입니다.

   
▲ ‘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 (박창순·육정희 / 시대의 창)
이 책은 공정무역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책도 아니고 당위성을 강조하는 책은 더더욱 아닙니다. ‘공정무역이 어떤 것’이라고 설명해주기보다는 세계 각 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정무역 자체를 담담히 보여줍니다. 설득하려하기보다는 그냥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읽는 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공정무역에 대한 개념 자체가 대중화되지 않았죠. 하지만 지금은 공정무역에 관한 언론보도도 많아졌고 이로 인해 일반 대중들에게 공정무역은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닙니다. 하지만 공정무역을 알고 있는 것과 이를 현실에서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는 바로 그 실천의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공정무역 활동의 여러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저런 이유로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공정무역을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이미 하고 있구나 - 그런 생각들. 특히 공정무역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있는 걸 보면서 공정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공정한 소비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주 올레’  (이해선 / 터치아트)

제주도 여행은 제주 올레가 알려지기 전과 후로 확실히 나뉘고 있습니다. 제주 올레와 관련한 책들도 이미 출판계의 한 분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올 해 여행 관련 분야에서 키워드를 말해보라면 저는 제주 올레를 꼽고 싶습니다.

   
▲ ‘제주 올레’ (이해선 / 터치아트)
〈제주 올레〉는 사진작가 이해선이 1년 동안 제주 올레를 걸으며 사람과 풍경을 사진에 담은 포토에세이입니다. 제주 올레를 다룬 책들이 흔히 그렇듯 이 책 또한 제주 올레를 글과 사진이라는 두 가지 재료를 가지고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주 올레〉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했습니다. 제주 올레 코스 안내와 주변 숙박 및 음식점 정보까지 꼼꼼하게 실었는데, 제공하는 정보가 상당히 섬세합니다.

마치 제주 올레 여행을 하실 분들을 위한 안내서라고나 할까요. 여행자들에게 편하도록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자그마한 판형으로 만든 것도 그렇고, 걸으면서 휴대하기 좋은 것도 그렇고,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히’ 올레 여행자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올레를 걷다가 책 속에 나오는 풍경이 어디쯤에서 펼쳐지는지 찾아볼 수 있도록 만든 최적의 책입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실용적인 내용으로만 구성돼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용은 아날로그적인  저자의 감수성이 잘 녹아 있습니다. 감성적인 글과 사진 속에는 느리게 행복하게 걷고 싶은 제주 올레의 풍경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손 끝에 닿은 세상’ (글·사진 김형욱 / 글로세움)

   
▲ ‘손 끝에 닿은 세상’ (글·사진 김형욱 / 글로세움)
〈손 끝에 닿은 세상〉은 책보다 저자에 더 관심이 가는 책입니다. 저자 김형욱은 이미 2008년 인도 다스다 마을에 첫 번째 도서관을, 네팔 포카라 사랑곶에 두 번째 도서관을, 지난 10월에는 네팔 고르카 마을에 세 번째 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저자 나이가 불과(!) 31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감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또래가 한창 취업 준비하느라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느라 분주할 때, 저자는 오지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한 권의 책을 더 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20대엔 산이 좋아 산에서 살았고, 산에서 별을 바라보는 것을 더 좋아했던 저자의 꿈은 ‘세계 최초 유라시아 자전거 횡단’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꿈은 파키스탄에서 중단됐습니다. 파키스탄 아이들의 눈망울이 방황하던 자신을 일깨웠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저자는 파키스탄 어린이들과와의 만남 이후 배운 적도 없는 카메라에 아이들의 눈망울과 웃음소리를 담아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저자가 왜 ‘천 개의 도서관’ 건립이라는 꿈을 꾸게 된 것일까요. 그 답은 이 책에 나와 있습니다.

〈손끝에 닿은 세상〉은 이렇듯 세상의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서 만난 사람들과 교감한 내용을 담은 김형욱의 여행 기록입니다. 저자는 서툰 여행기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데, 책을 읽다보면 이 말이 지니는 의미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여행 가이드북으로선 ‘낙제점’이지만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겹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훌륭한’ 여행서입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잠깐 독서

‘심법투자’ (이동한 / 비즈니스맵)

여기, 8명의 주식폐인들이 있다. 대학 졸업 후 변변한 데 취직도 못한 채 자신의 미래를 송두리째 주식에 거는 20대, 사채까지 끌어다 투자를 했지만 결국 빚만 잔뜩 지고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30대, 퇴직금을 몽땅 주식에 털어 넣었다가 깡그리 잃고 처자식 눈치 보기에 급급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40대, 알량한 투자지식만으로 요행을 바라며 주식시장을 기웃거리는 50대까지.

   
▲ ‘심법투자’ (이동한 / 비즈니스맵)
주식 때문에 처절하게 인생이 꼬여버린 사람들, 이들이 베일에 싸인 재야고수 강노인이 운영하는 증권 전용 룸에 모여 투자를 시작한다. 그러나 강노인이 뭔가 엄청난 대박비법을 전수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잠시, 노인은 오히려 대박비법에 대한 개미들의 환상을 투자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한다. 실망한 이들은 하나둘씩 증권방을 떠나가는데…. 6개월 후, 비로소 노인은 필생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심법(心法)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멀리 있는 비법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자신의 마음을 통해 투자성공에 다가가는 길. 과연 남은 개미들은 투자역전극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이 책은 소설 형식을 빌려 주식투자의 정도(正道)를 이야기한다. 왜 자신이 선택한 종목만 하락하는지 궁금해 하고, 작전세력이 주식시장을 조종하고 있다고 분개하며, 손절매를 하지 못하는 나약한 자신에 절망하는 8명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우리 시대 평범한 개미들의 초상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점차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봄으로써 현명한 투자의 기본기를 갖춰나가는 과정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나 자신일 수도 있고 내 주변의 투자자일 수도 있는 다수의 주인공들을 통해, 나는 어떤 유형에 속하고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독자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 자신의 행복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식에 걸고 있는 국내 400만 개인투자자들이 꼭 한번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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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

‘MBC사태’가 장기화 할 태세다. 임원 선임을 둘러싼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김우룡·방문진)와 엄기영 MBC사장의 힘겨루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방문진은 엄 사장의 인선안을 수용할 의사가 없고, 엄 사장 역시 ‘사퇴 시사’ 발언을 하는 등 배수의 진을 쳤다.

양쪽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갈등하고 있지만 ‘의도’와 ‘진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엄기영 사장. 지난 21일 열린 임시이사회에서 엄 사장은 보도·제작·편성·경영본부장 등 각 본부장별로 2~3명의 후보를 제시했다. 하지만 경영본부장 인선안을 제외하고 모두 거부당했다. MBC 사장이 제출하는 임원 인선안에 대해 방문진이 동의해왔던 관례를 생각하면 굴욕이다. 그런데 엄 사장은 두 번이나 거부당했다. 이건 전례가 없는 굴욕이다.

   
▲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김우룡)는 21일 오전 7시30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임시이사회를 열었다. 이사회에 앞서 김우룡 이사장이 노조 입장을 듣고 있다. ⓒMBC노동조합
엄기영 사장의 ‘진의’는 대체 무엇일까

그런데 이 굴욕, 충분히 예상됐다. 아니 솔직히 말해 엄 사장이 이런 굴욕을 감수하고 방문진의 재신임을 수용한 것으로 해석했다. ‘김우룡-엄기영 사전교감설’까지 제기된 상황에서 방문진의 엄 사장 재신임은, MB정부와 방문진을 향한 엄 사장의 ‘백기투항’이었다. 자신이 먼저 사퇴서를 제출하고 주요 임원들이 경질되면서 얻은 재신임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일 수 없는 이유다. 오히려 지금 벌이고 있는 그의 ‘결사항전’이 예상치 못한 변수다.

엄기영 사장의 ‘진의’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MBC의 한 관계자는 “통상 이 정도 모욕을 당하면 사퇴하는 것이 수순”이라면서 “하지만 MBC 안팎에서 사퇴에 무게중심을 두는 이는 아직 소수”라고 말했다. 엄 사장이 ‘식물사장’이라는 내외부 비난을 받으면서도 아직 방문진과의 논의에 더 방점을 찍고 있다는 얘기다.

이 논의 잘 될까. 가능성이 없다. 방문진이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두 번이나 사장이 추천한 임원안을 부결시킨 의미가 뭘까. ‘백기투항’에서 ‘결사항전’ 태세를 보이고 있는 엄 사장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그렇다. 지금 방문진은 ‘엄기영 사장’을 주요변수가 아닌 종속변수로 판단하고 있다. 방문진은 이미 ‘상처가 날 데로 난’ 엄기영 사장이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김우룡)는 21일 오전 7시30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임시이사회를 열었다. 이사회에 앞서 엄기영 사장이 노조원 앞에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MBC노동조합
그런 점에서 “엄기영 사장의 사표를 반려한 것은 그를 재신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제 발로 걸어 나가게 하려는 야비한 음모”라는 MBC노조의 성명(21일)은 방문진이 겨누고 있는 칼끝이 어디인지를 짐작케 한다. 부담스러운 강제퇴진이라는 카드를 사용하지 않되, 엄 사장 스스로 물러나도록 하겠다는 것 아닌가.

문제는 현재와 같은 사태의 장기화가 엄기영 사장은 물론이고 MBC구성원에게도 유리하지 않다는 점이다. MBC 안팎에선 엄 사장이 자진사퇴하지 않더라도 내년 2월 주총에서 사장교체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래서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엄기영 사장의 ‘진의’는 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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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

이 글은 시사IN 118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엄기영 MBC사장은 결국 자리보존을 택했다. “끌려 나가는 한이 있어도 내 발로 걸어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던 호언은 허언이 됐다. ‘권력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라며’ 그동안 엄 사장에게 애정 어린 조언을 건넸던 많은 이들과 시민사회진영은 당분간 허탈한 심정을 달래야 할 것 같다. 엄기영의 ‘커밍아웃’이 MBC와 시민사회진영에 남긴 상처는 크다.

지난 10일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김우룡, 방문진) 임시 이사회 결과는 MB정부의 ‘MBC장악’이 초읽기에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방문진은 이날 엄기영 사장이 ‘재신임을 물어달라’며 제출한 MBC 경영진 8명 전원의 사퇴서 중에서 4명의 사표는 반려하고, 4명의 사표는 수리했다. 엄 사장과 김종국 기획조정실장, 문장환 기술본부장, 한귀현 감사는 살아남았지만 김세영 부사장 겸 편성본부장, 이재갑 TV제작본부장, 송재종 보도본부장, 박성희 경영본부장은 교체됐다.

사표가 반려된 이와 수리된 이를 보면 방문진의 의도가 무엇인지 명확하다. 보도·제작·편성·경영이라는 핵심 분야 이사들은 이번에 모두 경질됐다. 방문진은 그동안 업무보고와 이사회 등을 통해 〈뉴스데스크〉의 경쟁력 약화를 지적하고 〈PD수첩〉 광우병 보도를 문제 삼으며 재조사를 요구해 왔다. 이번 임원 교체는 향후 MBC의 보도·제작·편성 등에 큰 변화가 올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 과정에서 엄기영 사장이 보여준 행보다. 시민사회진영에선 왜 엄기영 사장이 사퇴서를 냈는지 의혹을 제기한다. 초기엔 엄 사장이 본부장들만을 내칠 수 없어 책임지는 차원에서 사표를 제출했다는 해석이 많았지만, 엄 사장이 유임 보장과 관련해 긍정적인 답변을 듣고 사퇴서를 낸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른바 ‘김우룡-엄기영 사전교감설’이다.

‘사전교감설’은 방문진이 엄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대신 보도·제작·편성·경영 등 핵심 임원들을 퇴진시키는 선에서 이번 사태를 마무리할거라는 게 요지다. 사실 ‘임기가 보장된 공영방송 사장의 강제퇴진’에 반대하며 방문진의 MBC 경영진 압박을 비판해왔던 MBC노조와 시민사회진영 입장에서 ‘사전교감설’은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사전교감설’이 단순히 설에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됐다. MBC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표파동’은 MBC 구성원과 국민에 대한 엄 사장의 배신이자, 방문진과 MB정부에 대한 사실상의 백기투항”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사실 임기가 남은 공영방송 사장의 강제퇴진은 MB정부와 방문진 모두 부담스러운 선택이었다. 방송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엄 사장을 강제 사퇴시킬 경우 국민적 저항은 물론이고 여론전에서도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MB정부와 방문진 입장에서 ‘최상의 카드’는 엄 사장을 유임시키면서 주요 이사 및 간부교체를 통한 ‘MBC 길들이기’였다. 그것이 여론의 부담을 덜면서 MBC를 ‘친여방송’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엄 사장이 세간의 의혹대로 백기투항을 했다면 MB정부로 하여금 여론의 저항을 피하면서 ‘MBC 길들이기’에 보다 속도를 낼 수 있게 길을 터 준 셈이다. 엄 사장 본인도 방문진의 결정을 전해 듣고 매우 당황했다고 하지만 이 말을 믿는 내부 구성원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연임을 대가로 MBC의 정치적 독립을 훼손했다는 점에서 향후 엄기영 사장에 대한 평가는 지금과는 궤를 달리할 것”이라는 게 시민사회진영의 대략적인 분위기다.

이제 세간의 관심은 향후 MBC가 어떻게 될 것인가로 모아진다. 방문진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더 커질 거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새롭게 선임될 이사진을 통해 보도와 제작부문을 강하게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엄 사장의 권한은 대폭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방문진 이사회 직후 차기환 이사가 언급한 내용도 이런 예상을 가능케 한다. 차 이사는 “엄기영 사장과 김우룡 이사장, 정수장학회 이사가 모여 후임 인사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앞으로 방문진 입김이 상당히 거세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물론 이사진 선임 권한은 사장에게 있지만 4명의 핵심 이사들을 교체하는 대가로 ‘유임’을 얻은 엄 사장 입장에선 방문진의 의중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15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선임될 것으로 보이는 새 이사진의 면면을 보면 ‘2기 엄기영호’의 대략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보도와 시사프로그램에 대한 대대적 개편 역시 새 이사진 선임 이후 가시화될 전망이다. 이사들이 국장․부장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1차적으로 인적쇄신을 통한 간부 교체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간부 교체 이후에는 프로그램 통폐합이나 ‘사전검열’을 통한 방송 전반에 대한 압박도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MBC 안팎에서는 <뉴스데스크>는 물론 <PD수첩>과 같은 시사프로그램을 ‘개편 대상 1순위’로 꼽고 있다.

MBC 노사관계가 긴장관계를 넘어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MB정부와 방문진의 압박에 노사가 큰 틀에서 ‘공동전선’을 구축해 왔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전개될 거라는 걸 의미한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이근행, MBC노조)는 이미 “엄기영 사장을 인정할 수 없다”며 ‘불신임’을 선언했고, 김우룡 이사장 퇴진투쟁과 새 이사진들에 대한 출근거부 투쟁까지 밝힌 상태다.

문제는 MBC노조의 투쟁 동력이 얼마나 가동될 수 있느냐다. MBC노조는 김우룡 이사장 퇴진 투쟁을 진행하면서 엄기영 사장과도 대척점에 서야 하는 부담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시민사회진영의 MBC에 대한 시선이 달갑지 않은 것도 부담이다. 엄 사장이 정권의 ‘MBC 장악’ 의도에 맞서 정면으로 맞섰다면 ‘연대투쟁’에 나서겠지만 스스로 사표를 던진 상황에서 MBC를 지켜줄만한 명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YTN은 물론 KBS와 SBS까지 이미 방송계가 대부분 ‘친여적’으로 재편된 상황이란 점도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MBC노조의 투쟁이 그만큼 고립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MB특보 출신 김인규 사장 반대를 위한 KBS 노동조합(위원장 강동구)의 총파업 투표 부결은 MBC노조 입장에선 악재 중의 악재다. 지난 언론노조 총파업 당시 주축세력 중의 하나였던 전국언론노조 SBS본부(SBS노조)는 차기 위원장 선출을 두고 재공고를 낼 정도로 내부 기반이 약화돼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KBS YTN에 이어 MBC까지 ‘친여성향’으로 재편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MBC노조가 처한 ‘딜레마’를 어떻게 풀 것인가. 이는 MBC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사회진영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다.

사진 (위)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 / (아래) 엄기영 MBC사장 <사진제공=PD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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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

이 글은 시사IN 110호에 실린 글입니다.

보수진영도 적잖이 놀란 것 같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과 조선·중앙일보의 비판이 이를 방증한다. 김제동의 KBS 〈스타골든벨〉 하차는 보수진영에 약이 아니라 독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하나. 인지도와 호감도, 영향력 면에서 김제동은 ‘좌우’ 상관없이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김제동이라는 인물을 보며 ‘정치’를 연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거의 없다.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때 서울시청 앞에서 노제 사회를 보고, 이런저런 사회적 발언을 해오긴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김제동을 대중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방송인으로 기억한다. KBS 일부 간부들의 ‘정치적 판단’은 존중해 줄 필요가 있지만, 그들은 대중의 정서를 읽는 데는 실패한 것 같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과 조선·동아의 KBS 비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보수진영은 대중의 정서에 더 민감한 법이다.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에 대한 인지도와 호감도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손석희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웬만한 연예인과 정치인을 능가한다. 무엇보다 그는 영향력 면에서 다른 누구보다 압도적 우위를 자랑한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손석희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수년 째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시사 프로그램에서 그는 경쟁력 1위의 언론인이다.

이런 두 사람을 프로그램에서 하차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프로그램에 특별한 하자가 없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병순 KBS 사장과 엄기영 MBC 사장은 그런 결정을 내렸다. 이유가 뭘까.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상투적이다. 김제동과 손석희를 적으로 돌리는 건 MB정부 입장에서도 득이 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뭘까.

뚜렷한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권력에 대한 언론의 자발적 충성으로 보는 게 타당한 것 같다. 이병순 사장은 오는 11월 임기가 끝난다. 연임을 노리는 이 사장 입장에선 사활을 걸어야 한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압박을 받고 있는 엄기영 사장도 사정은 비슷하다. 뉴라이트 성격이 짙은 방문진의 시선에 어긋나지 않으려면 ‘MBC 보수화’라는 카드를 어떤 식으로든 관철시켜야 한다. 김제동과 손석희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자가 아닐까.

이들의 선택, 성공할까.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중에 대한 호감도와 영향력 면에서 이병순·엄기영 사장보다 김제동·손석희가 더 크기 때문이다. 차라리 뉴스의 보수화나 시사프로그램 연성화 쪽에만 집중했다면 오히려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싶다. 허나 그들은 시청률 잘 나오는 연예 프로그램 진행자를 ‘정치적인’ 이유로 끌어내렸고, 인지도와 영향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언론인을 교체하는 방식을 택했다. 보수진영에서조차 무리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김제동·손석희 교체 논란은 한국 보수진영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우석훈 씨가 지적한 것처럼 과거 유신 정권은 대중문화인들을 탄압했지만 이유라도 밝혔다. 하지만 지금은 이유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를 찾아볼 수가 없다. 과거와 달리 권력이 아닌 언론 스스로에 의해 ‘칼질’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그런 점에서 “웃음에는 좌우가 없는데 그것을 웃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좌우를 만드는 것일 뿐”이라는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의 비판은 한국 보수가 아직은 희망적이라는 걸 보여준다. 조선·중앙일보가 지지하지 않는 김제동 교체,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마저 비판한 손석희 교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어렵다. 이병순·엄기영 사장의 이번 결정은 스스로에게 자충수이고, 결국 부메랑이 될 확률이 높다. ‘김제동과 손석희 vs 이병순과 엄기영’의 최종 승자는 결국 김제동과 손석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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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

이 글은 <시사IN> 100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구본홍 YTN 사장의 사퇴는 언론계에 몇 가지 고민을 던졌다. 향후 전개될 정권과 언론과의 싸움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것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본홍 카드’ 실패를 경험한 MB정권은 어떤 방식의 변화를 꾀할까.

단정은 이르지만 민영화 가능성을 빼놓을 수 없다. 우선 YTN 민영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화 될 경우 YTN노조를 무력화 시킬 수 있고, 보도PP채널에 관심 있는 후보군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다목적 카드인 건 분명하다. 1년 동안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을 벌여온 YTN노조 입장에선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

MBC 민영화도 있다. 방송공사법 제정과 민영미디어렙 도입은 MBC 민영화의 틀을 규정짓게 된다. 친여성향의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방만경영’을 문제 삼아 민영화 논의에 불을 지피면 MBC로선 이 문제를 피해 가기 어렵다. 더구나 민영미디어렙은 서울과 지역MBC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아킬레스건이다. ‘선택의 지점’에서 MBC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민영화가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국영화’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방송공사법이 그대로 통과되면 KBS의 ‘국영방송화’는 시간문제다. MBC·YTN의 민영화와 KBS의 ‘국영방송화’가 전제된 상태에서 종합편성 채널과 보도PP가 들어선다고 가정해 보자. 그야말로 방송판 자체가 ‘조중동 방송’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방송법 날치기 논란과 관련해 헌법재판소가 정부·여당의 손을 들어준다면? 여권의 방송계 재편을 막는 건 더욱 힘들어진다.

‘여권발 방송계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지만, 민주당과 방송사들의 풍경은 지리멸렬하다. 민주당이 100일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전면전 양상은 아니다. 솔직히 민주당의 장외투쟁이라기보다는 일부 의원들의 결사항전으로 보는 게 정확할 듯싶다. 9월 정기국회 복귀설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방송사 내부풍경은 더 가관이다. ‘조중동 방송’ 출현을 경계하기 전에 방송의 ‘조중동스러운’ 행태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표면적으로는 정부․여당을 견제․비판하면서도 자사 이익 확보를 위한 ‘주판알 튕기기’가 복잡하게 진행되는 방송사 내부 상황이 한 몫을 하고 있다. 언론노조 총파업 동력이 예전 같지 않고 ‘보도투쟁’ 지침이 하부단위에서 무력화되고 있는 이유다.

가장 큰 문제는 방송사들의 보도행태다. ‘조중동 방송’과 방송의 ‘조중동스러운’ 보도행태가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방문진 구성에 따른 방송장악 논란은 거의 보도가 되지 않았고, 미디어법 날치기 논란 역시 철저히 정치공방 수준에 머물렀다. 

쌍용자동차 보도는 가장 압권이다. 진압과정에서 쓰러진 노조원을 경찰이 곤봉과 발로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경찰 진압방식을 비판하는 리포트는 거의 없었다. 사태의 본질을 파헤치는 보도는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찰 강경․폭력진압’이라는 단어가 방송뉴스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시민단체 일각에서 ‘왜 우리들이 이런 지상파 기득권자들을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인가’라는 회의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앞으로 언론노조와 시민단체는 ‘조중동 방송’을 만들려는 정부․여당과 ‘조중동화 되려는’ 방송사들, 이 두 개의 골리앗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조중동 방송’ 출현 저지를 논하기 전에 왜 ‘우리들’이 기존 방송사를 지켜야 하는 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사진설명>:  ‘언론악법 원천무효와 언론장악 저지를 위한 100일 행동’이 지난 7일 오전 10시 30분 방통위 사옥 앞에서 ‘이명박 정권의 일방적 방문진 이사 선임 반대 기자회견’을 가졌다. ⓒPD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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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도리